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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동제각화 마지막 대결6-마무리글 본문

글과 그림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동제각화 마지막 대결6-마무리글

새샘 2008. 1. 14. 20:11

두 점의 그림을 앞에 둔 화인과 계원들은 보이지 않는 전쟁과도 같은 격렬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계원들의 감상평은 최고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식안을 과시하는 방편이었다.

대결은 이미 두 화인의 것만이 아니었다. 계원과 계원끼리 의견에 따라 합종하고 연횡하며 불꽃튀는 설전이 벌어졌다. 탁월한 평설과 냉정한 지적, 예리한 관찰과 놀라운 발견이 이어졌다.

두 화인이 혼을 다해 그린 그림들은 그들의 안목으로 인해 더욱 깊이를 얻게 되었다. 홍도와 윤복은 그림을 그리면서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뜻을 가려내는 계원들의 감식안에 내심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대결은 점점 종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두 점의 그림 중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이번 화사대결의 종착점이었다. 그것은 홍도와 윤복의 승부이기도 했지만 홍도와 김조년의 승부이기도 했다. 부원군이 마른 입가를 손바닥으로 쓰윽 닦으며 말의 물꼬를 텄다.

“과연 평생 있을까 말까 한 진귀한 격돌이었다. 전체적인 구도와 주제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으나 그것을 표현해낸 방식은 극과 극을 달리듯 다르니 그 변화무쌍한 대결이 자못 흥미롭다. 그러나 대결의 궁극에는 반드시 승부가 있어야 하는 법, 이기고 짐이 없는 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부원군의 말소리가 대청마루에 울렸다. 지금껏 그림을 보며 탄복하고 감탄하던 계원들의 눈동자가 차갑게 반짝였다. 그들은 이제 냉정한 평가를 내릴 심사관이 될 것이었다.

 

“두 그림은 화인들 각자의 특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극단의 기법을 보여줍니다. 두 점 모두 爭鬪라는 화제를 빼어난 방식으로 형상화하였으며, 대결에 나선 두 사람을 중심으로 주변에 구경꾼들을 배치하는 방식에 있어 같습니다. 그러나 단원이 사내들의 겨루기를 그렸다면 혜원은 여인들을 그려 서로 다른 화풍을 극명하게 드러냈지요. 화면이 약동하며 힘이 넘치는 남성적인 단원의 그림과 달리 혜원의 그림은 靜中動을 묘파했고 여성적이면서도 강렬한 시각적 긴장감을 주고 있습니다.”

한 계원이 두 그림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듣고 있던 다른 계원이 보충하듯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극명한 차이는 색감입니다. 단원의 그림이 황색을 주조로 한 단색 계열임에 비하여 혜원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로 약동감을 살려냈습니다. 그러므로 두 그림의 우열은 단순한 먹선과 화려한 색감의 대결이라 할 것입니다.”

 

“두 점 모두 민가의 풍속을 그린 속된 그림이나 굳이 우열을 가린다면 저는 단원에게 무게를 싣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문인화의 시각으로 볼 때 거침없이 뻗쳐내린 힘있는 필법과 고졸(古拙)하면서도(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는)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순한 색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 쇳소리가 섞인 다른 목소리가 바로 이어진다.

“두 화인의 그림은 모두 기존의 그림방식을 벗어난 새로운 기법을 뛰어나게 펼쳤습니다. 그럼에도 혜원의 그림은 기존의 도화서 그림이나 문인화를 훌쩍 넘어선 새로운 경지를 보여줍니다. 주변색을 엷은 옥빛과 흰색 계열로 처리하고 두 여인에게 강렬한 색으로 약동하는 운동감을 준 것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뛰어난 기법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 화인처럼 색채의 배합과 그 구현에 뛰어난 채색화의 달인은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백 년이나 이백 년 이후에나 나올 그림을 앞서서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마다 홍도의 그림이나 윤복의 그림을 취해 손을 들어주려는 사람들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못한 몇몇은 두 점의 그림을 번갈아 살피며 곤혹스러워했다. 정적을 깬 것은 낭랑한 부원군의 목소리였다.

 

“그림 속 대결의 팽팽한 만큼이나 화사의 승부 또한 팽팽하니 과연 쟁투라는 화제가 걸맞다. 계원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나 또한 우열을 짐작할 길이 없으니 다시 화인에게 묻는다. 지금껏 계원들이 보지 못한 특징과 기법이 그림에 있다면 말하라.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면 승리를 인정하겠다. 화원이 숨긴 뜻을 알아보지 못하고서야 조선 최고의 도화계란 세평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부원군의 말은 곧 두 화인과 여섯 명 계원들의 우열을 가리겠다는 선언이었다. 계원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두 그림의 우열마저 가릴 수 없는 지금 화인들의 풀이를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

홍도가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히고 일어섰다. 계원들이 초조한 눈빛이 홍도에게 쏠렸다.

<씨름, 종이에 담채, 27×22.7㎝, 국립중앙박물관>

 

 “계원들께서는 뛰어난 그림 완상가(玩賞家: 즐겨 구경하는 사람)들이시니 위 그림에서 반듯한 균형감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없이 그려진 듯하지만 긴장과 균형의 조화를 꾀해보았습니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그림이라 하나 화폭 안에서 그 정연함이 한 치도 어긋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도청에서는 구장산술(九章算術: 현재 남아있는 중국의 고대 수학서 중 하나)을 가르치고 방진[方陳=마방진(魔方陳): 자연수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나열하여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배열된 각각의 수의 합이 전부 같아지게 만든 것]과 도형을 배우는 것입니다. 모든 그림에는 도형과 산술이 숨어 있지요.”

“이 그림의 균형과 조화의 비밀을 눈에 보이는 해법으로 명백하게 논증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부원군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이 그림을 잘 보십시오.”

홍도가 들고 있던 부채로 그림 정중앙에 가로세포로 반듯한 선을 그었다. 부채가 지난 자리를 기준으로 화면이 네 장의 정사각형으로 분리되었고, 열십자 모양의 두 선은 정확히 두 씨름꾼이 있는 화면 한가운데에서 만났다.

“화면의 가로세로를 정확하게 나누는 열십자의 선을 그으면 화면은 네 개의 면으로 나뉘어집니다. 각각의 면에 위치한 사람들의 수를 헤아려 봅시다. 오른쪽 위에는 다섯 명, 왼쪽 위에는 여덟 명, 오른쪽 아래에는 두 명, 왼쪽 아래는 다섯 명, 그리고 가운데에 두 명이 있게 됩니다.”

홍도는 앞쪽 탁자에 놓인 종이 위에 먹을 찍은 붓으로 무언가를 쓱쓱 그려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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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

 

2

 

계원들은 두 눈을 부릅떴다. 네 영역으로 나누어진 그림 속의 인물들의 수와 아홉 개로 나누어진 사각형 안의 숫자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홍도는 계속 말을 이었다.

“사각형 안에서 대각선의 숫자를 더해보지요. 여덟에서 둘을 더하고 또 둘을 더하면 열둘이 됩니다. 반대편 대각선의 다섯에서 둘을 더하고 다섯을 더해도 합은 열둘이지요. 또한 왼쪽 위의 여덟을 두고 보면 양면에 같은 숫자인 다섯이 있고 합이 십삼이 됩니다. 오른쪽 아래의 이를 기준으로 보아도 양옆에 같은 숫자인 오가 위치하고 그 합은 칠이 되지요.”

계원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알 듯 모를 듯한 숫자들의 조화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림 속에 숨은 숫자와 도형의 비밀을 펼쳐보이는 홍도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원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별뜻없이 보이는 이 그림이 이토록 완벽한 균형 속에서 조화를 이룬 이유를 알겠다.”

“그림이란 그린 사람의 생각과 뜻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풀어내는 재주입니다. 그 기법에는 독특한 필법으로 그린 선과 형태, 재질감과 색채감 등이 포함되지요. 그 모든 기법은 막무가내가 아니라 누구에게든 설명가능한 보편타당한 논증으로 구현되어야 합니다. 그 정밀함은 선 하나만 다르게 그려도 전체의 조화가 어긋나고, 필법의 세기를 조금만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해도 전체의 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네 혼자만의 이론인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걸작에 공통되는 이야기인가?”

“모든 뛰어난 그림은 수적인 논증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혜원의 쌍검대무 속에도 그와 같은 산학과 도형의 원리가 숨어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쌍검대무 속에도 씨름도와 같은 정교한 수와 도형의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홍도는 윤복의 그림 쪽으로 옮겨가 부채를 들고 같은 방식으로 화면을 가로질러 분할했다. 부채는 먼저 그림을 가로로 크게 삼등분한 후 세로로 절반을 잘랐다. 그림은 모두 여섯 개의 면으로 잘려졌다. 홍도는 같은 방법으로 탁자 위의 종이에다 도표를 만들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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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4

3

 

“맨 위쪽의 수를 합하면 칠이고 맨 아래쪽 수를 합하면 역시 칠입니다. 화면의 상단과 하단에 각각 같은 수의 인물을 배치하고 가운데에 두 명의 여인을 배치함으로써 완벽한 균형미를 구현했습니다. 거기에다 이 그림의 백미는 가운데에 있는 두 여인의 몸짓에서 보이는 회전운동입니다. 지루한 정방형의 구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역동적인 원운동을 통해 화면 전체의 역동감을 살려내었죠. 이같은 원운동의 형세는 수와 도형을 통해서도 논증할 수 있습니다.”

홍도는 화면 가운데의 두 1자 위에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둥근 원을 그리고 화살표를 그려넣어 방향성을 주었다. 따분하던 정방형 구도가 순식간에 방향성을 얻고 운동감이 살아났다. 홍도는 말을 이었다.

“오른쪽 위에서부터 원운동 방향으로 2-3-4-5의 형태로 숫자들이 점차 늘어가며 화면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찮은 환쟁이들의 그림나부랭이에 심오한 숫자의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계원들은 난생처음 들었다. 그러나 정연한 설명으로 눈앞에 드러난 숫자의 조화를 본 이상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저들은 그림 그리는 화인이기 전에 수와 도형을 다루는 격물의 달인들이라 하겠다. 내 저들의 재능을 너무도 얕보았음을 알겠다. 한낱 알량한 감식안을 뽐내며 화인들에게 구태여 싸움을 시킨 것도 그러하거니와 얄팍한 지식으로 그들의 그림을 평가하려 한 것 또한 불찰이 아닐 수 없다.”

부원군이 탄식하듯 내뱉었다. 김조년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나서며 말했다.

 

“어떻든 대결은 대결입니다. 어렵게 성사된 화사대결이니 우열을 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중 누가 두 화인의 우열을 가릴 것인가? 나인가, 자네인가? 두 화인의 우열을 가릴 사람은 두 화인밖에 없도다. 그러나 그들에게 우열을 가리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일일 터.”

부원군의 말에 김조년의 두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당혹감이 그의 얼굴을 거미줄처럼 끈적끈적하게 덮어씌웠다.

김조년은 이 대결이 김홍도와 자신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화인과 화인의 대결, 화인들과 계원들의 대결은 종국에는 김홍도와 자신의 대결로 좁혀지고 있었다. 그것은 결국 이 대결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승부를 가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승부를 가리지 못할 것인가 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면 김조년은 지게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승부가 없는 대결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김조년은 헛기침을 내뱉은 후 입을 열었다.

“그 기법의 뛰어남이 까마득한 경지에 있으니 둘 중 누가 높고 낮은지 가리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김조년의 태연자약한 말에 한 계원이 나서면 물었다.

“기법의 탁월함과 그림의 세련미를 떠나 화인의 자질을 평가할 어떤 방법이 있단 말이요?”

 

“저와 같은 범부의 눈에는 그 뛰어남을 가리는 것보다 그 모자람을 가리는 편이 훨씬 쉽겠지요. 누가 더 잘 그리느냐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오히려 누가 실수를 덜 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아닐까 합니다.”

“두 화인의 그림에 실수가 있다는 말인가?”

부원군의 물음에 김조년은 여유로운 미소를 떠올렸다.

“두 화인이 아니라 그 중 한 화인의 그림이지요.”

“누구의 그림인가?”

단원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오류는 오른쪽 아래 구경꾼의 입니다. 씨름꾼이 자기를 덮칠까봐 놀라서 뒤로 손을 내짚은 사내의 왼손과 오른손이 바뀐 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원군은 찬찬히 오른아래쪽의 구경꾼을 보았다. 김조년의 말대로 구경꾼의 양손의 분명 좌우가 바뀌어져 있었다. 오른손은 왼손으로, 왼손은 오른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역시 김행수답다. 예리한 안목으로 천재의 실수를 찾아내었구나. 두 화인의 뛰어남을 견줄 수 없으니 작은 실수라도 승부에는 치명적이라 할 것인즉.....”

홍도의 눈빛이 초조하게 흔들렸다.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에 어리고 있었다. 온 세상을 물들인 노을은 붉은빛을 더해갔다. 홍도는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수를 인정하오나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다시 한 번만 저의 그림에 집중해주십시오.”

“오후 내내 들여다보고 평했던 그림이네. 더 이상 집중해서 볼 무엇이 남았다는 것인가?”

한 계원이 심드렁하게 말하며 홍도를 흘기던 눈을 그림으로 향했다. 잠시 표정을 바꾸지 않던 그의 얼굴이 천천히 놀라움으로 굳어갔다. 그림에 나타난 강렬한 변화 때문이었다.

타는 듯한 노을의 붉은빛을 정면으로 받은 그림은 타오르듯 붉은빛을 발했다. 황토빛 일색의 화면은 노을의 붉은빛을 그대로 빨아들여 강렬하게 되뿜어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변화에 계원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그림은 지금껏 오후 내내 보아왔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강렬함이 살아 있다. 붉은 태양빛으로 인해 두 씨름꾼과 구경꾼들의 긴장과 역동성이 더욱 강렬해졌어. 반대로 윤복의 화려하던 색깔은 강렬한 태양빛에 가려 약해지고 말았다.”

부원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다른 계원들은 시시각각 강렬함을 더해가는 그림을 바라보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홍도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같은 그림이라 해도 어떤 빛 아래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그림이 됩니다. 화면 전체에 주황색을 쓴 것은 단조롭게 보일 수 있으나, 같은 계열의 강렬한 노을빛을 빨아들여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려 함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림이 가장 강렬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시점이지요.”

 

그림을 보는 가장 좋은 태양광까지 생각하는 용의주도함이라니...... 역시 하늘이 낸 재능이라 할 만하다. 그 앞에 사소한 실수가 무슨 흠이 될 것인가!”

부원군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가장 빠르게 지나갔다. 붉게 타오르던 노을은 거뭇거뭇 어둠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사위어가는 강렬함을 못내 아쉽게 바라보던 부원군이 계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화사대결은 끝났다. 얕은 안목으로 이들을 시험하려 했으나 화사는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부원군의 나직한 목소리가 어둠이 다가드는 마당 위로 나직하게 퍼져나갔다. 그 자리에 모인 누구도 부원군의 말에 반대할 수 없었다.

홍도와 윤복은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숙여 예를 표한 후 어둠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마당을 가로질러 중문을 나섰다. 이틀치의 피곤이 어둠처럼 온몸을 감싸고 옥죄었다.

 

2008. 1. 1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