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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동제각화 마지막 대결6-둘째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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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동제각화 마지막 대결6-둘째글

새샘 2008. 1. 8. 15:17

이제 계원들의 눈길은 윤복의 그림으로 향했다. 홍도의 눈길은 아까부터 윤복의 그림에 빠져있었다.

 

그림은 양반가의 별당 마당에서 벌어진 검무 풍경이었다. 화면 가운데에서 양손에 칼을 쥔 두 기생이 옷깃과 치맛자락을 날리며 겨루고 있었다. 쌍검대무(雙劍對舞)였다.

상석에는 겨루기를 주선한 양반이 한 기생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두 명의 늙고 젊은 양반과 두 명의 기생이 앉아 있었다. 오른쪽에는 떠꺼머리 상노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림 아래쪽에는 북, 장고, 나발 등 갖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악공들의 음악소리와 두 여인의 칼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홍도의 그림이 동심원 구조로 이루어진 반면 이 그림은 3단 구도로군요. 화면을 가로로 삼등분하고 위에 일곱 명, 아래에 일곱 명을 배치한 후 가운데에 두 검녀를 배치한 것은 절묘한 분할이라 할 만합니다. 동심원구도보다는 산만하나 가운데에 두 검녀를 배치하여 보는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켜 구도의 단점을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한 계원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계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계원이 나섰다.

“주제를 해석하는 방식 또한 탁월합니다. 검무란 원래 기녀들이 추는 춤이라 대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이 그림에서 표현된 검무는 한낱 춤이 아니라 칼싸움보다 훨씬 더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아녀자들의 춤에서 치열한 쟁투(爭鬪)의 본질을 뽑아낸 것은 화제 해석의 탁월함과 표현력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 말에 나머지 계원들은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의 성찬이라 할 두 화원의 빼어난 그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행복에 겨운 표정들이었다. 부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도화서의 엄격한 양식이 품을 수 없는 경지로다. 모든 양반을 그림의 변두리로 밀쳐내고 한가운데를 차지한 것이 천한 여인이라니...... 게다가 주변으로 밀려난 양반들은 하나같이 움직임조차 없이 왜소하고 볼품없는데다 여인들만 홀로 당당하게 약동하니....”

거기까지 말하자 계원들은 하나같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부원군은 입가의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과연 도화서를 쫓겨날 만한 파격의 화인이다. 이 그림 또한 도화서 화원이나 생각없는 양반의 눈에는 불순하고 도발적이며 속되기만 한 난삽한 그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늘과 땅의 법도가 반상과 남녀의 귀천으로 구현되거늘, 이 그림은 그 건곤의 법을 정면으로 뒤집어놓지 않았느냐. 허허허.”

부원군의 웃음은 그림의 탁월함에 대한 감탄과 그림이 담고 있는 도발에 대한 불편을 아우르는 웃음이었다.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한 계원이 입을 열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분과 표정 또한 다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늙고 젊은 양반가의 사람들이 있고, 두 기녀가 있고, 떠꺼머리 상노가 있고, 차면선을 내외하는 몰락양반이 있고, 준수한 외양과 몸집의 악공들이 있습니다. 특히 화면 아래쪽에 있는 악공들은 흡사 실제로 그림 속 검무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듯 현실감을 주고 있습니다. 모두 여섯 명인데 왼쪽부터 해금을 켜는 자, 나발을 부는 자 둘, 젓대를 부는 자, 장고를 치는 자, 그리고 북을 치는 고수의 순이지요.”

그러나 이 말은 다른 계원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것은 감식안이라거나 그림의 숨은 뜻을 찾아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설명하는데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계원들 중 가장 젊은데다 그림을 대한 연조도 짧은 그의 한계였다. 듣고 있는 다른 계원이 나섰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질이자 생명은 검무를 추는 두 여인에게 있습니다. 특히 두 여인의 복장이 보여주고 있는 약동성과 그 색채의 현란함입니다. 두 여인은 군복에 전립을 쓰고 양손에 칼을 들고 있지요. 왼쪽 여인은 옥색 전립에 노란 저고리, 붉은 치마를 입었고 오른쪽 여인은 검은 전립과 옅은 녹색 저고리, 옥색 치마를 입었습니다. 두 여인 모두 치마저고리 위에 주황색의 전복을 걸치고 있어 약동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팽팽한 긴장감과 힘, 그리고 속도는 두 여인의 복장을 통해 표현되고 있습니다. 휘날리는 전모의 붉은 깃과 치맛자락의 움직임이 두 여인의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원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림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현란한 색채의 잔치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뒷줄에 앉아 있던 한 계원이 김조년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그림 역시 쟁투의 장면을 그렸으니 승부가 있을 것입니다. 화원은 분명 승부를 그림에 담았을 것이니 어느 편이 이겼는지를 유추하는 것은 우리들의 일이겠지요.”

 

삽시간에 대청마루 위에는 정적이 흘렸다. 윤복이 낸 문제 또한 그들은 비켜갈 수 없었다.

누군가는 왼쪽 여인의 두 발이 균형을 잃은 듯 하다 하여 오른쪽 여인의 승리를 점치기도 했고, 어떤 누군가는 왼쪽 여인이 화면 변두리로 밀려났다고 하여 화면 중앙을 장악한 여인의 승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자신의 주장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대지는 못하였다.

한참동안의 설왕설래가 잠시 잦아들자 계원들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었다. 김조년은 그들의 초조한 눈빛이 구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검무대결에서 이긴 쪽은 화면 가운데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으로 보입니다.”

계원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김조년의 담담한 말투에 주눅이 들었다. 부원군이 계원들을 대신해 물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오른쪽 여인의 전모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 여인은 지금 궁극의 일합을 끝낸 직후입니다. 두 여인의 몸동작을 세심하게 살펴보십시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있는 붉은 치마 여인은 치맛살의 각으로 보아 회전의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모의 깃털 또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날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즉 몸과 머리가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푸른 치마를 입은 여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급하게 몸을 회전하고 있음을 휘날리는 군복자락과 치맛자락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모의 깃털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습니다. 몸과 얼굴의 회전방향이 다른 것이지요. 몸의 중심과 머리의 중심이 완전히 흐트러져 있는 오른쪽의 푸른 치마 입은 여인이 진 것입니다.”

모든 계원들의 눈길이 윤복에게로 쏠렸다. 부원군이 역시 모두를 대신해 물었다.

“과연 그러한가?”

윤복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하옵니다.”

또 다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그림에 대한 탄성이기도 했지만,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김조년의 탁월한 안목에 대한 감탄이기도 했다.

 

2008. 1.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