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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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호생관 최북 "공산무인도"

새샘 2012. 2. 18. 20:11

사람 손은 쓸 데 없다

 

 

비 오면 꽃 피고 바람 불면 꽃 진다.

피고 짐이 비바람에 달렸다.

물은 누굴 위해 흐르는가.

낙화落花와 유수流水에 교감이 있을 턱 없지만 시인은 기여코 사연을 만든다.

 

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에 안기건만

흐르는 물은 무정타, 그 꽃잎 흘러보내네

 

조선후기를 소란스레 살다간 미치광이 화가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12~1786?)의 적막한 그림 한 점이 있다.

이름 붙이기를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다.

아무도 없는 텅빈 모정茅亭과 꽃망울 맺힌 키 큰 나무 두 그루, 그리고 수풀 사이로 흘러내리는 계곡물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등성이가 그림의 전부다.

붓질은 거칠고 서툴다. 꾸밈이 없이 적막하다

눈길을 붙잡는 것은 화면 속에 휘갈긴 한 토막의 시다.

 

빈 산에 사람 없어도    공산무인空山無人

물 흐르고 꽃 피네       수류화개水流花開

 

소동파의 글을 옮겨온 최북의 속은 깊다.

산속에 사람 흔적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래도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단다.

물과 꽃은 저들끼리 말 맞추지 않는다.

인간사에 두담두지(애착을  가지고 돌보다) 않은 채 흐르고 핀다.

 

꽃 피고 물 흐르는 풍경은 유정하거나 무정하지 않다.

시 짓고 그림 그리는 이 저 혼자 겨워할 따름이다.

스스로 그러해서 '자연自然'이다.

저 빈산, 무엇이 아쉬워 사람 손길을 기다리겠는가.

 

※이 글은 손철주 지음,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2011, 현암사)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최북<공산무인도>에 대한 글은 2011. 3. 31에 고연희가 지은  '그림, 문학에 취하다(2011, 아트북스)'의  글을 이 블로그에 올린 바 있다.

두 글을 비교해서 읽으면 사람마다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여러가지임을 알 수 있다.

 

2012. 2. 1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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