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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겸재 정선 "만폭동도"

새샘 2012. 3. 5. 17:59

천 개의 바위 다투어 빼어나고, 만 줄기 계곡물 뒤질세라 내닫는데

정선, 만폭동도, 조선 18세기 중반, 비단에 수묵담채, 33.2x22cm, 서울대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

 

걸작 <만폭동도萬瀑洞圖>를 바라보노라면 영락없이 귓전을 울려오는 소리가 있다.

바로 판소리 '수중가' 중의 중중모리 '고고천변皐皐天邊'인데, 자라가 뭍에 올라 난생 처음 명산구경을 하는 대목이다.

 

"예 구부러진 늙은 장송 광풍을 못이겨 우줄우줄 춤을 출 제

 원산은 암암暗暗 근산은 중중重重 기암은 층층 매산每山이 울어 천 리

 시내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쭈루룩 저 골 물이 콸콸

 열의 열두 골 물이 한데 합수쳐 천방저 지방저 월특저 방울저 방울이 버큼저

 건너 병풍석에다 마주 꽝꽝 때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그렇다. 만폭동도는 음악이다.

넓은 계곡을 휩쓰는 골바람이 온 산을 한 무리 악사로 여겨 한결같은 장단으로 흔들어대면, 탄력 넘치는 붓질로 신명나게 뽑아올린 노송 줄기는 굵었다 가늘었다 흥겨운 가락을 타며 자연의 춤사위를 보였다

그러자 콸콸 쏟아져 내리는 여울물이 이리 돌고 저리 곤두박질치다가 깊은 못에 이르러 제멋에 겨워 빙빙 도니, 그림 속에는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다.

신령한 산 기운이 연달아 찍어 내린 바위 결 사이 뽀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화제 글씨도 날아갈 듯하다.

 

"천 개의 바윗돌 다투어 빼어나고     (천암경수 千巖競秀)

 만 줄기 계곡물 뒤질세라 내닫는데   (만학쟁류 萬壑爭流)

 초목이 그 위를 덮고 우거지니       (초목몽롱상 艸木蒙籠上)

 구름이 일고 아지랑이 자욱하네      (약운흥하울 若雲興霞蔚)"

 

이 말은 본래 중국의 명산을 읊었던 고개지顧愷之(344~405?)의 절창絶唱이나, 이곳에 더 걸맞다.

그것은 작품이 사선 위주 구성으로 속도감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오른편 아래 앞뒷산의 가파른 윤곽선이 너럭바위 주변 비스듬한 송림으로 여러 번 반복되며 메아리치고, 대소 향로봉은 이와 어긋나게 왼쪽 위로 불끈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교차하는 이 두 흐름이 칼날 같은 좌선암에 함께 반영되었으니, 아래로 흐르는 듯하다가 직각으로 꺾여 멈춰 섰다.

 

하지만 화폭이 온통 대각선 운동으로 둘썩거리면 역동적이기는 해도 안정감을 잃기 쉽다.

그래서 정선은 유람객 뒤에 오인봉을 화폭 중앙에 똑바로 세웠고, 너럭바위를 에둘러 물과 아지랑이로 적당한 여백을 주었다.

특히 왼쪽 아래 구석에 유난히 짙고 강인한 붓질로 금강대를 우뚝 심어 의지를 삼았으며, 위로는 아득하게 중향성을 줄지어 세워 유원한 공간감을 확보했다.

"봉래풍악蓬萊楓嶽 원화동천元化洞天", 너럭바위에 새겨진 천고 명필 양사언楊士彦(1517~1584)의 글씨다.

아무렴, 이곳은 인간세상이 아니니, '신선 사는 금강산, 조물주의 별천지'다.

 

●정선鄭敾(1676~1759)은 영조 때의 화원으로 활약하면서 조선시대 화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자는 원백元伯, 호는 난곡蘭谷, 겸재謙齋. 우리나라 회화사에 있어 가장 큰 업적은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완성하고 성행시켰다는 것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따랐던 일군의 화가를 정선파라고 부른다.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등이 대표 작품이다.

 

이 글은 고故 외우畏友 오주석 지은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 월간미술)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2. 3. 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