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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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흥선 대원군 "지란도"

새샘 2012. 4. 20. 17:25

난초가 어물전에 간다면

<이하응, 지란도芝蘭圖, 19세기, 종이에 수묵, 44.5×33.5㎝, 개인소장>

 

소동파 蘇東坡(1037~1101, 북송시대의 시인, 이름은 식 軾, 동파는 호)가 어느 날 난초 그림을 보았다. 蘭은 가슴 설레도록 아름다웠다. 시심에 겨워 그는 시 한 수를 지었다.

 

 춘란은 미인과 같아서                                    춘란여미인 春蘭如美人

 캐지 않으면 스스로 바치길 부끄러워하지        불채수자헌 不採羞自獻

 바람에 건듯 향기를 풍기긴 하지만                  시문풍로향 時聞風露香

 쑥대가 깊어 보이지 않는다네                         봉애탐불견 蓬艾深不見

                   -양차공의 춘란에 쓰다 제양차공춘란 題楊次公春蘭-

 

제발로 찾아오는 미인은 없다. 향기를 좇아가도 웬걸, 쑥대 삼대가 가로막아 만나기 힘들다. 미인과 난초는 콧대가 높다. 난초 그리기도 미인의 환심을 사기만큼 어렵다. 난 잎의 시작은 못대가리처럼, 끝은 쥐꼬리처럼, 가운데는 사마귀배처럼 그린다. 잎이 교차하는 곳은 봉황의 눈을 닮아야 하고 잎이 뻗어나갈 때는 세 번의 붓꺾임이 있어야 한다. 이럴지니 그림 속의 난향인들 쉽사리 풍기겠는가.

 

흥선대원군 興宣大院君 이하응 李昰應(1820~1898, 고종 아버지)의 난초는 홑잎이다. 봉긋하게 솟은 난 잎의 자락이 요염한데, 봉우리가 뱀대가리마냥 혀를 날름거린다. 매우 고혹적인 병치다. 아래쪽 고개를 쳐든 풀은 지초 芝草. 난초와 지초가 나란히 있으니 이른바 '지란지교 芝蘭之交'다. 벗과 벗의 도타운 사귐은 난초와 지초의 어울림과 같다. 그것도 모자라 대원군은 맨아래에 공자의 말씀을 덧붙인다.

 

'착한 사람과 지내는 것은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여선인거 與善人居  여입지란지실 如入芝蘭之室'

 

난초는 미인이자 선인善人이다. 요즘 착한 사람은 인기가 없다. 예나 오늘이나 남자는 예쁜 여자를 찾는데, 지금 여자는 나쁜 남자를 좋아한단다. 예쁜 여자와 나쁜 남자의 만남을 어찌 일컬을지 모르겠다. 다만 공자의 이어지는 말은 이렇다.

 

'나쁜 사람과 지내는 것은 어물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여불선인니 與不善人居  여입포어지사 如入鮑魚之肆

오래되면 냄새를 못 맡고 비린내에 젖는다.

구이불문기취 久而不聞其臭  역여지화의 亦與之化矣'

 

이 글은 손철주 지음,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2011, 현암사)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2. 4. 2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