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혜원 신윤복 "미인도" 본문
함초롬한 고운 여인, 마음자락에 스며들 듯
<신윤복, 미인도, 조선 19세기 초반, 비단에 채색, 114.2×45.7㎝, 간송미술관>
함초롬한 여인이 다소곳이 섰다. 손을 대면 부서질 듯 고운 아낙. 초승달 눈썹과 촉촉한 눈매가 꿈꾸는 듯하고, 반듯한 이마와 넓은 인당印堂이 시원해 마음 설렌다. 단정한 코에 앵도 같은 입술, 갸름한 얼굴은 애처로운 빛을 띠고, 동백기름 먹여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칼이 더없이 정갈하다. 몇 가닥 살쩍이 가늘고 흰 목 위에서 하늘거리며, 여인은 상아빛 손으로 노리개를 붙들고 가만히 옷고름을 풀어 내린다. 깃과 고름, 곁바대는 진자줏빛이고 소매 끝등만 치마와 어울리게 옥색선을 댔으니, 저고리 은은한 연황색 바탕이 삼회장 자줏빛과 보색 대비를 이루었다.
여인은 하얀 허리띠 위로 연지빛 속고름을 길레 드리웠다. 남정네 애간장이 남김없이 졸아버리겠다. 옥색 치마는 촘촘하게 잔주름을 넣었으나 점차 벌어져 풍성하니, 밑에 여러 층 겹쳐 입은 무지기 속치마가 허리 아래를 푸하게 버틴 것이다. 하후상박의 전체 매무새는 머리에 쓴 커다란 트레머리로 절묘한 균형을 되찾았다. 반지르르하게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칼과 그 옆에 나부끼는 자줏빛 댕기가 그림 속 여인을 살아 숨쉬게 한다. 그리고 치마 밑으로 살그머니 내민 외짝 버선발. 상큼하게 들린 버선코가 보는 이 마음자락을 비집고 스며들 듯하다.
이 여인은 누구일까? 그 어떤 이를 위해서 옷고름을 푸는 걸까? 아니, 저 앞에 애당초 사람은 있는 것일까? 조선 시대엔 여염집 여인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니 주인공은 기생이리라. 하지만 얕잡아 볼 일은 아니니, 저 음전한 자태를 눈여겨보라. 기생 하면 요즘은 술 따르고 몸 파는 여자를 떠올리겠지만 옛 기생의 격조란 사람따라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랐다. 시문, 서화, 가무에서 예술의 절정에 오른 이가 있었는가 하면, 경전을 줄줄 외고 마상에서 활을 당겨 먼 과녁을 꿰뚫는 여장부가 있었다. 또 양반 아낙의 뺨을 칠 만한 굳은 절개를 간직한 기녀도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선비 김려(1766~1822)는 기녀를 위해, 대학자에게나 마땅한 언행록言行錄까지 지었을까? 나 역시 이 작품에서 연연하게 다가오는 여인의 향을 느끼지만, '길가의 버들, 담 아래 꽃' 식의 만만한 노류장화路柳墻花 풍류는 우정 애를 써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신윤복은
"가슴 속에 서리고 서린 봄볕 같은 정 盤薄胸中萬化春
붓끝으로 어떻게 마음까지 전했을꼬 筆端能與物傳神" 하고 화제를 달았다.
얼마나 흡족했으면 자화자찬의 화제를 지었으랴! 아마도 화가는 여인을 가슴에 품을 길이 없었나 보다. 그래서 상상으로 홀로 잠자리에 드는 모습을 화폭 속에 그렸으리라. 그림으로 여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옮겼노라 스스로를 달래면서......
아서라! 아름다움은 흔하고 덕스러움은 드물레라.
이 글은 고故 외우畏友 오주석이 지은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2009, 월간미술)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2. 5. 1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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