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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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이렇게 생겨났다

새샘 2012. 6. 30. 11:00

죽음은 7억 년 전에 출현했다. 40억 년 전부터 그때에 이르기까지 생명은 단세포에 한정되어 있었다. 단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분열을 통하여 똑 같은 형태로 무한히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산호초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단세포 체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모든 생명이 죽음을 모르고 살아가던 어느 날, 두 세포가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서로 도우며 함께 생명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내공생). 그에 따라 다세포의 생명 형태가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죽음도 생겨났다. 다세포 생물의 출현과 죽음의 시작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두 세포가 결합하자면 서로 간의 소통이 불가피하고, 그 소통의 결과 두 세포는 더욱 효율적인 생명활동을 위하여 자기들의 일을 분담하게 된다. 예를 들어, 두 세포가 다 음식물을 소화하는 작용을 하기보다는 한 세포는 소화를 맡고 다른 세포는 음식물을 찾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후로, 세포들은 점점 더 큰 규모로 결합하게 되었고 각 세포의 전문화가 더욱 진전되었다. 세포들의 전문화가 진전될수록 각각의 세포는 더욱 허약해졌다. 그 허약성이 갈수록 심화되어 마침내 세포는 본래의 불멸성을 잃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죽음이 생겨났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동물들의 대부분은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세포들의 결합체이다. 그 세포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함께 작용한다.

 

우리 눈의 세포들은 간의 세포들과 아주 다르다. 눈의 세포들은 어떤 따끈따끈한 음식을 발견하게 되면 서둘러 그 사실을 간의 세포들에게 알려 준다 그러면 간의 세포들은 음식물이 입안에 들어오기도 전에 즉시 담즙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모두가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서로 소통한다. 그리고 그 세포들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다.

 

죽음의 필요성은 다른 관점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 죽음은 종들 간의 균형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만일 영원히 죽지 않는 다세포 종이 존재하게 된다면 그 종의 세포들은 전문화를 계속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고, 생명활동이 너무나 효율적인 나머지 다른 모든 생명 형태의 존속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암세포가 활동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분열 능력이 큰 암세포는 다른 세포들이 말리거나 말거나 막무가내로 분열을 계속한다. 암세포는 태초의 불멸성을 되찾으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암세포가 전체를 죽이게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암세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언제나 혼자서만 지껄이는 사람들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암세포는 자폐증에 걸린 위험한 세포이다. 그것은 다른 세포들을 고려하지 않고 불멸성을 헛되이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증식하다가 마침내는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죽여 버린다. 주위에 더 이상 죽일 것이 없게 되었을 때 암세포도 죽게 될 것이지만....

 

이 글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짓고 이세욱과 임호경이 같이 옮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열린책들, 2011)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12. 6. 3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