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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2 충주 미륵대원터(중원 미륵리사지) 본문

여행기-국내

2013. 6/2 충주 미륵대원터(중원 미륵리사지)

새샘 2013. 6. 29. 23:34

탐방로: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공원지킴터-하늘재 역사자연관찰로-충주 미륵대원터(중원 미륵리사지)-미륵리주차장

 

계립령로 하늘재 끝자락에서부터 충주 미륵대원터(彌勒大院址=중원 미륵리사지)가 시작된다. 미륵대원터는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의 평균 해발 378m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 초기의 석굴사원터로서 사적 제3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사원은 석굴의 주실이 북향인 특이한 배치로서 주실 중앙에 독립된 미륵불입상이 북쪽의 월악산을 바라보고 있다. 미륵불입상과 석등, 오층석탑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단탑식 가람배치다. 주실 앞에 전실이 있고, 전실 동쪽애 큰 회랑지가 있으며, 회랑지에는 건물지 유구가 남아 있다.

 

석굴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쌓아올린 뒤 목조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 석굴의 돔형 지붕과는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석굴암 석굴을 모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석굴에는 본존불로 모셨던 석불입상이 있고, 석굴벽에는 본존불을 장엄하기 위해 조각한 여래좌상, 삼불좌상 등이 남아 있다.

 

대원터에서 발굴된 유물 중 '彌勒堂', '彌勒堂草', '院主'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조각과 이곳의 지명이 미륵리로 되어 있는 것 등으로 미루어 석굴사원의 이름이 미륵대원彌勒大院일 것으로 추되는 것이다.

 

미륵대원에 얽힌 전설은 신라 마지막 임금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아들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입산하러 가던 길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 덕주산을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마의태자는 이곳에 석굴을 창건하고 불상을 북쪽으로 두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는 것이다.

 

미륵대원터의 모습

 

미륵대원터 남쪽입구에 턱하니 자리잡고 있는 귀부龜趺-약간 좌측으로 비켜서서 북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길이 6m, 높이 1.8m) 거북모양 비석받침돌이다. 거북 등의 껍질 모양이 없는 귀부의 등에는 비석자리가 있기는 하지만 비석을 꽂을 수 있을 정도로 크지는 않아 실제로 비석이 존재했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여러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도 비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귀부 위에 비석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거북 등에는 아주 작은 새끼거북 2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귀부 뒤에 한단 높은 곳 정중앙에 보물 제95호 미륵리 오층석탑이 서 있다. 높이는 6m, 단층기단, 5층 탑신, 상륜부로 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 꼭대기에 쇠붙이로 된 원기둥 모양의 중심기둥인 찰주擦柱는 우리나라 석탑에서 쉽게 볼 수 없다.

 

미륵대원터에는 2개의 석등이 남아 있다. 그 중 1개는 오층석탑 왼편에 있으며, 오층석탑 뒤에 있는 석등과 구별하기 위해 지대석인 4각형이어서 미륵리 사각석등이라고 부른다. 이 석등의 특징은 간주석에 화염모양의 안상眼象이 새겨진 것과 원주형 화사석 4개를 세워 만든 화창이다. 즉 전형적인 고려 석등양식에서 벗어난 화사석 양식은 고려수도인 개경일대의 일부 석등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개경에서 상당한 거리의 이 지역까지 수도의 문화가 전파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팔각석등과 고려시대의 사각석등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도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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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 바로 뒤 한단 높은 곳에는 또 다른 석등인 미륵리 석등이 자리잡고 있다. 석굴안 석불입상과 오층석탑 사이에 있으며 오층석탑-석등-석불입상이 일직선상으로 서 있다. 전체적으로 8각을 이루는 석등 양식은 통일신라시대이지만 건립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연화대석, 8각형 간주석, 상대석, 4면에 창이 나 있는 8각형 화사석, 8각형 옥개석, 상륜부 받침, 연꽃모양 보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석등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다.

 

미륵대원의 주존불 보물 제96호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은 맨 뒤 석굴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향을 하고 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석굴의 목조 건물은 불타 없어져 버리고 석축만 남아 있다. 높이이 10.6m로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거불의 하나로 화강암 5매를 이어만든 거대한 불상이며, 보통 석불입상이라 부른다. 석불의 표정이나 신체의 조각솜씨는 아주 소박한 편으로서 불상과 절터, 석굴의 웅장한 규모와 대비된다. 불상의 다른 부분에 비해 유난히 하얗게 표현된 얼굴에서 신비감이 느껴진다. 거대한 원통형 몸체, 소박한 조각솜씨, 두터운 입술, 초승달 눈썹, 머리에 쓰고 있는 갓(보개), 엉성한 옷주름 등에서 고려초기 충청도 지방의 토속적인 불상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미륵리 석조보살의상石造菩薩倚像②-석굴 왼편 벽에 쌓은 직사각형의 돌 표면에 새긴 사각형 의자에 앉아 있는 보살상

 

석굴을 쌓은 바위, 바위 표면의 조각상들, 그리고 석불입상 주변의 조각물

 

석불입상 앞에서 바라본 월악산

 

석등의 창 사이로 보이는 석불입상

 

석굴 앞 미륵대원터 바위들

 

미륵대원터의 불두화

 

미륵대원터 오른편 개울 건너에 있는 절 미륵세계사의 대웅전과 안심당

 

미륵대원터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미륵리주차장까지 걸어서 간다.

이팝나무 가로수

 

붓꽃

 

사과나무

 

단풍나무 열매

 

송림

 

길에서 바라본 월악산

 

주차장에서 바라본 월악산

 

개울가에 위치한 음식점

 

2013. 6. 29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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