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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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국내

2013. 7/4 경주 양동마을

새샘 2013. 7. 13. 10:44

전체 경주 탐방로: (7/3)호텔현대경주-신라밀레니엄파크-(7/4)경주동부사적지[대릉-첨성대-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 둘러보기: 향단-주거가옥-연지-서백당-대성헌-무첨당-관가정

 

경주 양동良洞마을한국 최대규모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동성(손孫과 이李) 취락으로서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녁한 110여 호의 초가草家로 이루어져 있다. 1984년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마을 진입로 초입에 서 있는 '世界遺産 韓國의 歷史마을 良洞' 화강암 표지석

 

마을진입로

 

마을입구에서 바라본 양동마을 전경과 도로 오른편에 서 있는 오동나무

 

마을로 들어가는 길

 

향단香壇(보물 제412호)-조선 중종 때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경상감사로 부임할 때 병환중인 어머니를 돌볼 수 있도록 중종이 지어준 집으로 여주 이씨 향단파의 종가가 되었다. 향단이란 이름은 이언적의 집을 돌보던 후손의 호인 향단공에서 따 왔다. 두 곳에 뜰을 두고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붙여 전체가 '흥興'자 모양의 독특한 평면형태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사가私家로서 보기드물게 건물 전체에 둥근기둥을 사용하여 상류층 주택의 격식을 갖추었다. 원래 99칸이었다고 전하나 일부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 56칸이 보존되고 있다. 이 건물은 마을 전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위치와 높이에 서 있다. 조선중기에 지어진 살림집의 전형이라기보다는 집주인의 개성을 반영한 독특함과 화려함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물 앞에 향나무가 서 있다. 아쉽게도 문에 빗장이 걸려 있고 담도 높아 밖에서 문과 담만 구경할 수 밖에.....

 

경주양동마을 홈페이지에서 찾은 향단 전경

 

향단 오른쪽에 위치한 기와집(와가) 2채와 초가 1채가 있는 주거가옥

 

향단 아랫편에 있는 연지蓮池

 

양동마을의 또 다른 자랑은 경주개 동경이 사육마을이란 것. 동경이는 외형적으로 꼬리가 짧거나 없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토종개이다. 삼국사기(660년)와 동경잡기(1669년)에서 기록이 있을 뿐만아니라 5~6세기의 신라시대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우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양동마을길의 우물

 

서백당西百堂(중요민속자료 제23호)-조선 성종 때인 1454년에 지은 월성 손씨 종가로서 우리나라의 종가집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대가옥. 서백당이란 뜻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다. '一'자형의 문간채 안에 'ㅁ'자형의 안채가 있고 대청 6칸, 안방 3칸, 부엌 2칸이다. 높은 돌기단 위에 있는 사랑대청은 마루 둘레에 난간을 돌린 누마루. 정원 위쪽에는 사당이 있다.

 

서백당 올라가는 길의 표지석

 

길에서 본 서백당

 

서백당 문간채와 사랑채, 마당

 

서백당 마당의 수백년 묵은 가이즈카 향나무-나사백이라고도 부른다

 

서백당 마당 화단의 백합

 

서백당의 사당

 

양동마을에서 보이는 경주시 안강읍 시가지

 

대성헌對聖軒(경북 민속자료 제34호)-조선 영조 때인 1732년에 건립된 집이며, 경관이 빼어난 산봉우리인 안대眼對로서 성주봉과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대성이란 이름이 붙었다. 사랑채의 두칸 대청 앞쪽에 여덟짝의 문을 달아 4짝씩 접어올리게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무첨당無(보물 제411호)-1460년 경에 지은 이언적 선생의 종가별채 건물. 이언적 후손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상류층 사랑채의 연장건물로서 제사, 손님접대, 휴식, 책읽기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별당의 기능을 중요시한 간결하고 세련된 구조의 가옥이다. 대청 오른쪽 벽에 걸린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은 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죽필竹筆로서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란 의미이다.

 

무첨당 마당 화단의 해당화의 꽃과 열매

 

무첨당 올라가는 길가의 탱자나무

 

관가정觀稼亭(보물 제442호)-조선 중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우재 손중돈(1463~1529)이 대사간 재직시에 여러 번 올린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하여 '곡식이 자라는 기쁨을 보는 것처럼 자손과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514년 지은 집이다. 특이한 건물 구조는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으며 대청이 매우 넓다는 점.

 

관가정 마당의 가이즈카 향나무(왼)와 배롱나무(오른)

 

관가정 마당 대문 옆에 서 있는 향나무

 

마을입구의 버드나무와 자귀나무

 

2013. 7.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