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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 삼국지" 바로 읽기 1 - 편찬 과정 및 전반적 평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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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 삼국지" 바로 읽기 1 - 편찬 과정 및 전반적 평가

새샘 2017. 1. 8. 21:22

사진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4632

 

'삼국지三國志'는 대하전쟁역사소설이다. 중국인은 통상 '삼국연의三國演義, 중국어 발음으론 싼꿔이엔이)라고 부른다. 연의란 '널리 전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와 사적을 찾아내 그 의미를 확대해서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삼국지'는 후한 할 농민들의 민중봉기가 일어난 서기 184년부터 100여 년간, 여러 영웅이 중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이야기로서 진나라의 사마염에 의해 통일된 280년에 막을 내린다. 우리나라의 고구려 고국천왕(179~197), 산상왕, 동천왕, 중천왕, 서천왕(270~292) 시절에 해당한다.

 

'삼국지'의 무대인 한漢나라는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나라 이전에 진시황이 통일한 진秦나라가 최초의 통일왕조이기는 하지만 이 진나라는 20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을 뿐아니라 낮은 문화수준과 엄격한 법 진행 등의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한인漢人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아마도 한인들은 진나라를 반쯤은 잔인무도한 오랑캐로 여긴 것 같고, 실상도 북방의 유목민과 더 가까운 나라였다.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劉邦이 진나라 수도를 점령한 후 "가혹한 진나라 법률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진나라의 법은 없습니다. 법은 단 세 조 정도면 충분합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만 벌하겠습니다."가 내용인 그 유명한 법삼장法三章을 국민들에게 천명하였다.

 

한나라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통일왕조이다. 무려 400여 년동안 통일과 안정을 이룩하고 찬란한 중국 문화를 꽃피웠다. 지역별로 다양하게 발전해온 문화들을 융합하여 중국의 고전문화를 완성한 왕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인은 한나라가 중화中華의 뿌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인을 한족, 중국어를 한어, 중국 문자를 한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나라가 이후 전체 중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물론 한나라도 전한(서한)과 후한(동한)이 서로 다른 창업자에 의해 건국되었지만 후한은 전한을 계승했다는 강한 국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한과 후한을 합쳐서 한나라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삼국지는 명나라 때 나관중이 편찬한 것을 청나라 때 모종강이 다시 읽기 쉽게 재편집한 것이다. 삼국지의 모태가 된 것은 진수陳壽(233~297)가 쓴 삼국지로서 정사 삼국지이다. 나관중의 삼국지가 등장하기까지 많은 종류의 해설과 구전 삼국지들이 있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인 삼국지 시대가 끝난 후 이어진 대혼란기인 남북조시대의 송宋(420~478;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송나라가 아님)의 문제 때 배송지라는 사람이 황명을 받들어 진수의 삼국지에 원문보다도 더 많은 방대한 양의 해설을 달았다. 그러나 원나라 때 등장한 희곡 삼국지가 나관중의 삼국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에 나관중이 그동안 나온 삼국지를 집대성한 '연의삼국지'를 편찬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관중 삼국지는 순수한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이야기를 정사 삼국지를 기준으로 재정리한 것으로 보면 된다. 이외에도 1400년대 후반 명나라 때 내용이 엇비슷한 수십 종의 삼국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명나라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삼국지는 복잡해서 읽기가 불편했기 때문에 청나라 때 모종강이 일반인이 읽기 쉽도록 다시 엮게 된다. 즉,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형태로 마치 재미있는 TV 드라마를 보듯이 해놓은 것이 바로 나관중 삼국지인 것이다.

 

송을 건국한 유유劉裕는 북방의 유목민으로부터 침략을 저지한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받았는데, 후에 군권을 장악하면서 진나라 황제를 독살하고 왕조를 새로 세움으로써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그 결과 유유가 죽은 후 송나라에는 극심한 정변이 일어났으며 이를 타개한 사람이 바로 유유의 아들 문제이다. 문제는 땅에 떨어진 왕조의 권위를 세우고자 정치를 개혁하고 문물을 정비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책을 대대적으로 시행하였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는 정통 한 왕실을 계승한 사람이고, 유유는 그의 후손이며, 유비가 위대한 만큼 유비를 계승하는 송왕조야말로 정통성을 가진 유일정부라는 국민들에게 알리기 해 방대한 양의 진수의 삼국지 해설을 만들게 한 것이었다.

 

남북조시대로부터 6, 7백년이 지난 후 포청천에 자주 등장하는 송태조 조광윤의  송나라가 건국된다. 송나라는 군사력을 경시하고 철저히 문화를 통한 정치를 표방하면서 북방 유목민이 강성해져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게 된다. 중국인들은 현실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 주자(1130~1200)를 중심으로 삼국지에 대한 철저한 재평가 작업을 하면서 유비가 건국한 촉이 중국의 정통 왕조라고 주장하게 된다.

 

북방유목민이 세운 원나라는 자신이 정통 왕조라고 선언하면서 끝까지 저항하는 중국인을 탄압한다. 이것이 결국 대규모 농민반란을 유발하게 되어 그 우두머리인 주원장(1328~1398)이 명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주원장은 '오랑캐의 무리를 몰아내고 중화를 회복하자'라는 민족주의(한족주의, 중화주의) 기치를 내걸게 되는데, 그동안 하도 유목민의 지배를 받아서인지 이상적인 모델로 삼을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천년도 더 먼 나라인 한나라를 선택한 것이다. 민족부흥을 해야 하는 과제를 지니고 있던 명나라로서는 이미 1300여년 전에 사라진 한나라를 명나라와 연결해 줄 고리가 필요했고, 이 연결고리로서 삼국지가 선택된 것이다.

 

삼국지가 가장 위험한 것은 이런 배경 즉 중화주의 및 한족주의 건설을 위해 작성된 소설을 우리가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읽으면서 그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더 위험한 것은 삼국지에 매료되면 될수록 우리 자신을 더없이 초라하게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삼국지 주인공의 나라에 대해서 끝없는 애정을 가지면서 우리의 영웅은 천하게 보고 중국만을 신비하게 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다의 왕으로 자처하는 고래는 물고기에게 자신의 입술은 달콤하고 이빨은 아름답고 뱃속은 포근하다고 말하지 않을까? 이 말을 진실로 알고 고래의 뱃속에 들어간 물고기의 운명은????

 

훌륭한 외국소설에 매료되는 것이 물론 나쁜 일만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소설작품이 주변에 있는 다른 나라를 비하하면서 오직 제 나라만이 천하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전파하는 첨병이라는 점이다. 삼국지는 바로 이런 생각을 전파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갈량은 중국인의 지배를 왕화王化라고 하면서, 왕화가 안 되는 민족을 일러 가장 저질이고 야만적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중국인에게 있어 그저 오랑캐에 예의바른 조공국 정도로 비치는 것은 아닐까?

 

최근 중국 정부는 동북프로젝트(동북공정)를 진행하며 고구려사나 발해사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 이데올로기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면서도 설마 한국 정도가 어찌하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것도 『삼국지』적인 이데올로기의 하나가 아닐까??? 왜냐면 한국은 그동안 왕화에 가장 충실한 동방예의지국이었으니까...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삼국지 바로 읽기는 더욱 필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이 글은 김운회 지음 '삼국지 바로 읽기(2011, 도서출판 삼인)'의 머릿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2016. 1.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