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전傳 학림정 이경윤 "고사탁족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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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 학림정 이경윤 "고사탁족도"

새샘 2017. 8. 3. 15:49

 <그 차디찬 얼음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속세에서 묻어온 때는 더위보다 먼저 씻길 것이다>

傳 이경윤,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16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27.9×19.4㎝, 국립중앙박물관

 

무더운 여름날 산 속의 정겨운 피서 풍경이다.

아스라한 산세 아래 개울물이 흐른다.

선비가 더위를 잊고자 산속 개울가를 찾았다.

나무 그늘 암반에 앉아 옷섶을 풀어헤친 채 개울물에 발을 담근다.

그런데 물이 너무 차가운 모양이다.

두 발을 서로 꼬며 어쩔 줄을 모른다.

옆에 서 있던 시동은 주인의 심정을 아는 듯 시원한 청주라도 부어줄 태세이다.

무더운 여름날 산속의 정겨운 피서 장면!

 

학림정鶴林正 이경윤李慶胤(1545~1611)은 왕족이다.

그의 증조부가 성종과 후궁 숙의 홍씨 사이에서 4남으로 태어난 익양군 이회이다.

조선 왕실 가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익양군은 자손이 번성했고, 장수를 누렸다.

이경윤의 부친 이걸도 3남 1녀를 두었는데, 후손들이 환갑을 넘어서도 살아 있었다고 한다.

이경윤은 처음에 학림수鶴林에 제수되고, 그 뒤 학림정鶴林正이 되었다.

 

이경윤도 명필가로 이름을 날린 장남 양정 이숙과 화원으로 당대에 유명했던 허주 이징李澄을 비롯하여 5남 2녀를 두었다.

그 중 유일한 서자 이징은 아버지의 화필을 물려받아 궁중의 화사를 주관했을 뿐만 아니라 사대부 주문 그림을 제작하는 등, 아흔 가까이 장수하면서 17세기 조선 화단의 모든 화풍과 화목을 섭렵했다.

이징은 감색 물을 들인 비단에 금으로 산세를 묘사한 니금泥金산수도를 많이 남겼다.

 

이경윤은 종실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중국 사행을 두 차례나 다녀왔고, 젊은 시절부터 팔도강산을 누비며 풍류를 즐겼다.

20대 후반에는 관동 지방을 여행했고, 30대 초반에는 당시 화명을 떨치던 양송당 김시(1524~ 1593)와 금강산 기행에 동행했다.

김시는 산수, 인물, 화조, 영모 등 모든 갈래의 그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인 문인 집안 출신의 화가이다.

이경윤은 김시처럼 솜씨 좋은 선배와 친분을 쌓으며 화가로서의 안목과 기량을 키웠다.

 

후대 비평가들은 이경윤에 대해 주목했다.

종실 화가의 역량과 회화사적 위치를 알려주는 증거이다.

 

"나는 학림정을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 속에 자신과 비슷한 인물을 그려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최립, <시주詩酒> 발문,《산수인물화첩》호림박물관-

 

"학림정의 그림은 강하고 견고하며 고상하고 깨끗하여 좁은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윤두서,《기졸記拙》-

 

"학림정 이경윤과 이징 부자는 소순과 소식 부자와 같다. (------) 학림정 이경윤과 죽림수 이영윤 형제는 그 재주의 차이가 동파 형제와 같다. 학림정의 그림은 메마르고 담백함 속에 정취가 있고 고아하고 예스러우며 감각이 단련되었으니, 최고의 경지라 할 것이다."

   -남태응,《청죽화사廳竹畵史》-

 

"종실 학림정의 그림은 품격이 고상하고 깔끔했다."

   -이긍익,《연려실기술》권14-

 

이경윤은 고사와 산수를 함께 구성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간략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인물상이 배치된 그림을 '소경인물화'라고 한다.

그림의 주인공이 야외에 머물고 있음을 알려주는 인물화의 한 형식으로, '대경산수인물화'와 구별된다.

대경산수인물화에서 산봉우리와 넓은 대지가 화폭 중심에 위치하고 사람이 부수적 기능을 한다면, 소경인물화에서는 인물상이 주요 소재이고 자연경관은 소략하게 표현된다.

화면 구성에서 중심 소재가 어떻게 부각되느냐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지는 셈이다.

 

소경인물화의 소재는 개울가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 달을 감상하는 관월觀月, 거문고를 연구하는 탄금彈琴, 폭포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관폭觀瀑, 지친 당나귀를 타고 길을 가는 기려騎驢, 낮잠 자는 오수午睡 등이다.

이 화제들은 현실의 문인들이 속세의 번뇌를 잊기 위해 자연에서 수행한 행동 양식들이다.

특히 조선중기에는 유독 소경인물화 형식의 고사인물화가 많이 그려졌다.

당색과 왜침 때문에 혼란스러운 세상을 피하고 싶은 욕망과 강호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낙도樂道의 심정이 이러한 소재의 소경인물화를 양산한 것이다.

 

이경윤이 그린 소경인물화의 주인공은 학식과 덕을 쌓은 선비답게 고운 얼굴과 담홍색 심의를 갖추었다.

그러나 얼굴이 섬세하고 고운 담필로 묘사된 반면, 선비가 입은 화사한 심의는 힘찬 농묵으로 표현되었다.

옷 주름을 표현한 필선은 정두서미묘釘頭鼠尾描라고 부른다.

필선의 시작은 못대가리처럼 점을 찍었고, 마무리는 쥐꼬리처럼 날카롭고 뾰족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두서미묘는 조선중기 소경인물 형식의 고사인물화에서 자주 사용된 선묘법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들은 공통된 소망을 지녔다.

친한 벗과 그윽한 숲속을 찾아 일과 공부를 잊고 청정한 계곡물에 탁족을 한다면, 그리고 솜씨 좋은 다동茶의 차를 마시면서 서늘한 솔향기를 음미한다면 그곳이 낙원 아닐까?

이경윤의 마음도 그랬을까.

그림 속 고사가 마냥 부러울 뿐이다.

 

※ 이 글은 송희경 지음, '아름다운 우리 그림 산책 (2013, 태학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2017. 8. 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