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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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상 "궁모란도"

새샘 2017. 8. 22. 23:43

<꽃의 왕, 부귀영화의 상징 '모란牧丹'>

작가 미상, 궁모란도, 8폭 병풍, 19세기 말, 각 204×66㎝, 비단에 채색, 국립고궁박물관(사진 출처-출처자료)

 

진한 홍색과 연한 홍색, 연한 청색과 진한 청색. 울긋불긋 화려하면서 풍성한 꽃 병풍이다.

8폭 병풍의 소담한 꽃송이들은 같은 구도를 보여준다.

땅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활짝 핀 자태를 뽐내며 위로 상승하듯 배치된 것이다.

고귀한 의미를 간직하여 궁중 행사나 잔치에 진설陳된(연회나 의식에서 필요한 여러가지 제구를 잘 차려놓은) 모란 병풍, 바로 <궁모란도宮牧丹圖>이다.

 

모란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갈잎떨기나무(낙엽관목)으로 5월이면 화려하고 커다란 붉은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모란보다 조금 늦게 피지만 꽃 모양, 크기, 색깔이 거의 비슷한 식물이 작약이다. 

차이점은 모란은 나무로서 겨울에도 땅 위에 줄기가 있는 반면, 작약은 여러해살이 으로 겨울에 되면 땅 위 줄기가 죽어 없어졌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땅속뿌리에서 싹이 난다.

또 다른 차이점은 모란잎은 끝이 갈라져 있는 반면, 작약 잎은 잎끝이 갈라지지 않는다.

 

모란은 커다란 꽃송이에 소담한 꽃잎, 화려한 색상 덕에 예부터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화왕花이라 불려왔다.

'꽃의 왕'은 탐스러운 자태만큼이나 다양한 일화와 별호를 간직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부터 향기와 빛깔이 다른 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서 '천향국색千香國色'이라 불렸다.

당 현종도 사랑하는 여인 양귀비와 함께 모란을 자주 즐겼다.

하루는 두 사람이 침향정에서 모란을 감상하면서 중국 최고의 시인이자 시선詩仙으로 추앙받은 이백李白(701~762)을 불러 시를 청했다.

이백은 "유명한 꽃과 경국지색 모두 기쁨을 선사해서, 군왕이 언제나 미소 띠고 바라본다네"라고 노래했다.

모란과 양귀비의 미색을 동시에 읊은 유명한 시다.

또한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1017~1073)는 국화를 꽃 중의 은자隱, 모란을 꽃 중의 부귀자富貴者, 연꽃을 꽃 중의 군자君로 비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란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가 삼국유사에 실린 선덕왕의 모란 고사일 것이다.

당 태종은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모란도와 씨앗을 신라 왕실에 선물로 보냈다.

선덕왕은 모란 병풍을 감상한 뒤, "무릇 여자가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인데, 이 꽃은 무척 아름다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단언하면서 당 황실이 배우자가 없는 자신을 희롱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선덕왕의 모란 고사만큼 유명한 우화가 바로 설총(655?~?)의 화왕계花王戒이다.

이야기 속에서 모란은 꽃의 왕이며, 장미는 모란에게 아양 떠는 여인이다.  

장미의 아첨과 매력에 끌려드는 화왕 앞에 나타난 할미꽃은 군자의 도리로서 사치와 허영을 물리쳐야 한다고 충언한다.

이때 모란은 할미꽃의 지혜로운 교훈을 받아들여 장미의 유혹을 물리친다.

선덕왕의 모란 고사와 설총의 화왕계는 모란이 이미 7세기에 유입되어 귀한 꽃으로 사랑받았음을 알려주는 일화이다.

또한 모란은 길조와 부귀를 암시하는 상서로운 물건 즉 서상물瑞祥物로 여겨졌다.

고려의 왕족과 귀족은 공작새, 앵무새와 더불어 고가의 모란을 송나라 상인에게서 구입하여 정원을 가꾸었다.

모란꽃 진상을 요구하는 중국 황실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몇몇 사찰에서는 모란을 전문적으로 재배하기도 했다.

 

모란에 대한 사랑은 갖가지 공예품, 장신구, 복식의 문양에서 발견된다.

특히 고려시대에 유통된 고급 청자에는 다채로운 모란 무늬가 그려졌다.

꽃꽂이 화병으로 사용된 참외 모양 병의 여덟 면에는 모란과 국화가 번갈아 상감 기법으로 묘사되었다.

주둥이가 작고 어깨가 튼실한 매병에는 뜰에 심긴 모란나무가 산화동의 진사채辰砂彩 기법(구리로 착색한 붉은 진사안료를 사용하여 용의 눈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을 강조하거나 꽃봉오리와 같이 호화로움을 더하는 표현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참외 모양 병의 모란이 도안화된 디자인이라면 매병의 모란은 붓을 휘둘러 자연스럽게 그린 회화이다.

 

모란은 여인들의 규방 생활과 밀접한 나전 칠기의 표면도 장식했다.

네모 반듯한 상자에 문인의 표상인 국화, 매화, 대나무와 함께 모란을 표현한 것이다.

매화의 가지나 대나무 잎사위는 상자 옆면에 일부 표현된 반면, 활짝 핀 국화와 탐스러운 모란은 윗면에서 넝쿨을 이룬 채 자태를 뽐냈다.

능화菱花(마름꽃: 연못 바닥에 뿌리를 박고 줄기가 길게 자라 특징적인 세모꼴 잎이 물 위로 나오는 수생식물로서, 여름이면 잎 겨드랑이에서 나온 짧은 꽃자루 끝에 4장의 꽃잎을 가진 흰꽃이 핀다) 모양의 쟁반에는 모란의 줄기가 섬세하면서도 오묘하게 얽혀 있다.

이렇듯 꽃의 왕으로 불린 모란은 상서로운 의미를 간직한 채 왕실과 귀족의 치장으로, 규방의 장식으로 사랑받았다.

 

조선 왕실은 왕권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궁궐 안팎을 의도적으로 장엄하게 장식했다.

특히 집무와 주거를 담당한 실내 공간은 용도와 기능에 어울리는 궁화宮畵로 치장하여 화려함을 더했다.

궁궐이라는 공간의 기능성, 내부의 장식성, 왕권의 상징성을 갖춘 궁화는 주로 병풍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 병풍을 성스러운 장소에 설치하여 궁궐의 장엄미를 더하고 신성함이 돋보이도록 꾸몄다.

왕실에서 제작한 대표적 병풍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로, 어좌 뒤에 특별히 설치된 궁화이다.

(일월오봉도에 대한 글은 2009년 1월 13일 이 블로그의 '글과 그림' 카테고리에 <조선 국왕의 상징 '일월오봉병'>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궁모란도>는 주로 궁중의 내전이나 침전에 놓였고 가례, 종묘 제례 등 왕실의 중요한 의식에 사용되었다.

왕실의 모란 병풍은 오로지 탐스러운 꽃송이만 그린 모란도와 괴석을 함께 배치한 석모란도로 구분된다.

혼례식장을 장식한 모란 병풍에는 꽃송이 아래 괴석에 남녀를 상징한 암수(자웅雌雄)가 표시되었다.

 

궁화의 모란은 두꺼운 장지나 비단에 석채를 쌓아 올린 진채眞彩(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로 완성되었다.

활짝 핀 꽃송이는 평면적이면서도 장식적이다.

대지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른 소담한 꽃송이가 아닌 부귀영화, 천보天保(오래 살기를 축수함), 천명天命, 태평성대의 기원을 담은 상징물이다.

한 왕조의 번영과 안녕을 염원하는 간절한 바램이 <일월오봉도>와 더불어 장식적인 원색의 모란 병풍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왕실의 모란도는 사대부와 백성들에게 확산되면서 십장생도十長生圖, 수노인도壽老人圖와 함께 새해 축하용 세화歲(조선시대에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대궐에서 만들어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 주던 그림)로 그려졌다.

액운을 막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길상벽사吉祥邪의 염원이 반영되어 민간에 치레와 장엄용으로 유통된 것이다.

이러한 민간의 모란도는 궁모란도와 솜씨가 다르다.

만개한 꽃송이와 막 피기 시작한 꽃망울이 동시에 표현되었고, 원색과 중간색이 함께 채색되었다.

2폭 가리개의 민간 모란도는 궁화보다 수수하지만 보다 많은 백성에게 든든한 믿음과 소망을 안겨준 또 다른 서상물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모란도를 감상하면서 만사형통하기를 기원해봄 직하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을 모란 병풍으로 치장하면서 '올해는 다 잘될 것이다'라고 주문을 걸어보면 어떨지!!!

 

※ 이 글은 송희경 지음, '아름다운 우리 그림 산책 (2013, 태학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였으며, 새샘이 첨가한 내용도 일부 있다. 

 

2017. 8. 2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