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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희원 이한철 "최북 초상"

새샘 2017. 11. 17. 22:39

괴짜 화가, 최북

지본설채紙本設彩 란  종이에 먹으로 바탕을 그린 다음 색을 칠한 그림을 말한다.(사진 출처-출처자료)

 

조선 말기의 화원으로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과 같은 인물을 많이 그렸던 희원希園 이한철李漢喆(1808~?)이 그린 18세기 괴짜 화가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20?~ 1768?)의 초상은 얼굴에 주안점이 있는 초상이다. 상반신의 초상 중에 윗도리의 옷 주름이나 구체적인 색감은 몇 개의 선으로 극도로 생략되었다. 탕건을 쓴 갸름하고 긴 얼굴과 길고 무성한 수염을 늘어뜨린 하관은 팔초하다(얼굴이 좁고 아래턱이 뾰족하다).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늙은 뒤에는 돋보기안경을 한쪽만 꼈다. 나이 마흔아홉에 죽으니 사람들은 그의 별호인 칠칠七七의 讒(요사스러움)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콧수염과 구레나룻과 턱수염에 가린 입술은 유독 붉어 최북의 정신적 열기랄까 결기를 가늠케 한다.

 

보다시피 오른쪽 눈은 애꾸눈이다. 어느 날 지체 높은 양반이 최북에게 그림을 청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겁박을 했던 모양이다. 이에 굴할 최북이 아니었다. 그는 "남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나를 저버리는구나!"라며 송곳으로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버렸다. 그가 찌른 것은 자신의 한쪽 눈이었지만 실상은 당대의 권위적이고 몰상식한 일부 편벽한 양반의 심장과 권위를 동시에 찌른 것이었다.

 

이현환의 문집에 보인 최북의 우뚝하지만 쓸쓸한 결기가 유언처럼 보인다.

 

"세상에는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무네. 참으로 그대 말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나를 떠올릴 수 있으리. 뒷날 날 알아줄 사람을 기다리고 싶네."

 

자기 그림이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은 당대의 찬사가 있건 없건 언제나 오롯한(모자람이 없이 온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자기 작품 세계에 대한 올바른 눈, 즉 심미안審美眼(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은 작가의 생명이다. 그것은 현세에 아무리 하찮은 대접을 받는 것이라도 화가의 목숨 이상으로 지켜야 할 본령인 것이다.

 

박지원이 우연히 눈을 뜨게 된 장님에 대해 쓴 글은 이런 작가적 자부심과 심미안에 대한 비유로 적절하지 않을까. 내용은 이렇다. 오래 장님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장님이었을 때 잘만 찾아가던 자기 집조차 찾지 못하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박지원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고 일갈했다.

 

애꾸눈 최북의 오른쪽 눈은 두 눈을 번연히 뜨고도 참된 자기만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대내외적인 경고와 자경自警의 초상으로 읽힌다. 참된 아름다움이나 진실이 아닌 것이라면 그것에 기댈 필요가 있겠는가. 비록 가난과 기행과 궁핍의 나날을 살지언정 그 마음을 오롯이 지켜줄 만한 믿음의 진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글은 유종인 지음, '시인 유종인과 함께하는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2017, 나남)'에 실린 사진과 글을 옮긴 것이다.

 

2017. 11. 1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