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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생관 최북 "공산무인"

새샘 2017. 8. 12. 23:32

빈산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최북, 공산무인, 18세기, 종이에 담채, 31×36.1㎝, 삼성미술관 리움>

 

 

숨어 사는 은자隱者의 첫째 조건은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는 '절연緣'에 있다고 했다. 반면 은자가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은 '유오산수遊娛山水' 즉 자연을 깨닫고 자연 속에서 노니는 것이다. 이런 은자를 표현한 대표적인 우리 그림 한국화가 바로 18세기 화가 호생관館 최북(1712~1786)이 그린 <공산무인空山無人>이다.

 

이 제목은 그림 속 시구詩句 '공산무인空山無人 수류화개水流花開'에서 따 왔다. "빈 산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옆에 구릉이 하나 보이고, 조그마한 계곡에 물이 흘러가고, 짙푸른 초목이 조금 보인다. 정자가 있고, 키 큰 나무들이 있다. 이 정자에 사람은 없다. 비어 있는 것이다. 잘 짜인 밀도 높은 산수화라기보다는 대충 그려놓은 듯 거친 느낌이다. 최북이라는 화가의 성정性情이 그러했다.

 

그림에 '崔北'이라고 낙관을 찍어놓고, 그 밑에 '七七'이라고 또 찍었다. 이 사람의 자가 칠칠인 것이다. 칠칠맞다고 할 때의 그 칠칠이다. 최북의 북 자가 북녘 북北 자인데, 이 북 자를 반으로 뚝 잘라서, 일곱 칠七 자 두 개가 모였으니 자기의 자를 칠칠이라고 한 것.

 

최북의 호는 호생관이다. '붓끝에서 만물이 되살아난다.' 화가의 호로서 얼마나 멋진가! 내가 붓을 갖다대기만 하면 만물이 종이에서 다 살아난다는 좋은 뜻의 호를 자기가 지어놓고, 그게 뭔말인지 묻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붓[털 호毫] 자루로 먹고사는[살 생生] 사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설명해준다.

 

최북은 양반 출신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는 것은 많은데 태어나기는 천출이다 보니 양반사회에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저항하면서 조선 최고의 삐딱이 화가가 되었다. 조선의 3대 미치광이 화가[광화사狂畵師] 중 한 명이다(나머지 2명은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과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이런 화가가 그림을 대충 그려 놓고 '공산무인 수류화개'라고 썼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역시 같은 문장을 써서 '공산무인'을 그렸다. 그럼 두 화가 중 누구의 '공산무인'이 더 비싼 그림인가 하면  최북의 '공산무인'이 김홍도의 '공산무인'보다 가격이 훨씬 높다. 물론 그림의 가치가 잘 그렸다는 것만으로 매겨지는 것은 아니지만....최북의 '공산무인'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2014년 리움미술관이 거금을 들여 인수했다.

 

'공산무인 수류화개'를 화제로 그린 많은 유명 화가의 작품 중에서도 최북의 그림이 제일 낫다는 애긴데, 왜 그럴까? 그것은 '공산무인'의 의미에 가장 근접한 방식의 조형적 성과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인상에 남게 하려는 그런 다듬은 손길이 보지 않는다. 내버려뒤서 황량하되 그것대로의 섭리에 따라가는 듯한 장면이 어쩌면 최북다운 방일放逸함[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방탕하고 놈]함이 아닐까?

 

자, 이제 '공산무인'이 무슨 뜻인지 한번 알아보자. '공산무인 수류화개'는 말 자체가 너무 쉬운 뜻이다. 그러니 "아니, 뭐 그렇게 대단한 글자라고"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공산무인 수류화개'는 미술 하는 사람들이나 한시 하는 사람들도 "이 말이 어디에서 먼저 나왔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많았다.

 

당나라 때도 이미 '공산무인 수류화개'라는 여덟 글자 중에서 한두자만 다르게 쓴 시구들이 많이 있었다. 가령, 공산이라고 쓰지 않고 공곡空이라고 쓰면 어떨까? 계곡이라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 "빈 계곡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이 역시 아무 상관이 없다. 명나라의 문인화가 심주沈周(1427~1509)도 '공산무인 수류화사謝'라고 쓰고 그림을 그렸다. "물 흐르고 꽃은 지네." 필 개開를 쓰지 않고, 떨어진다는 뜻의 사謝 자를 쓴 것이다. '꽃 피네'를 '꽃은 지네'로 바꾼 것이다. <수류화사水流花謝>(일명 낙화시의도落花詩意), 심주의 손 꼽히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이 여덟 글자, '공산무인 수류화개'를 최초로 쓴 사람, 그러니까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송나라의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이다. 당나라 때는 '공산무인 수류화개'의 뜻은 담았지만 글자가 조금씩 다르게 쓰였고, 송나라 때에 와서 '공산무인'과 '수류화개'를 쓰되 따로따로 많이 썼다. 그런 중에 비로소 소동파가 '공산무인 수류화개'라고 붙여서 처음 썼던 것이다.

 

소동파가 열여덟 나한의 뛰어난 깨달음을 칭송하는 게송偈頌 <십팔대아라한송十八大阿羅漢頌>을 지었다. 그 중 제9존자를 칭송하는 시에서 마지막 구절이 바로 '공산무인 수류화개'인 것. 그 아홉 번째 존자의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식사 이미 마쳤으니 바리때 엎고 앉으셨네 / 동자가 차 봉양하려고 대롱에 바람 불어 불 붙이네 / 내가 불사佛事를 짓노니 깊고도 미묘하구나 / 빈산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이것을 "빈산에 사람은 없는데,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라고 풀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자. 이렇게 되면 앞부분이 조건절이 된다. "빈산에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의 해석은 앞 네 글자가 조건절이 되면 안된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이 사람이 있고 없음에 구애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은 인간의 도움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자연의 이치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될뿐더러, 개입한다 한들 달라질 것이 없다. 그래서 빈산에 사람이 없어도 물을 저절로 흘러가고 꽃은 저절로 피어나는 것. 사람의 손길이 닿아서도 아니고, 사람이 거기서 조장하는 것도 아닌데, 자연은 저 스스로 그렇게 한다. 자연은 문자 그대로, 스스로[자自] 그러한[연然] 존재인 것이다.

 

※이 글은 손철주 지음, '흥興-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그림 강의'(2016, 김영사)'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그리고 최북의 <공산무인>에 대한 글은 이 블로그의 '글과 그림'에서 3번 째이다. 첫 번째가 2011. 3. 31에 올린 고연희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2011, 아트북스)'이고, 두 번째는 2012. 2. 18에 올린  손철주 지음,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2011, 현암사)이다. 이 글과 두 번째 글은 같은 저자이니 비슷한 내용일 것 같지만 세 번째인 이 글의 내용이 훨씬 자세하고 풍부하다. 이 블로그에 같은 제목으로 실린 3개의 글을 비교해서 읽어본다면 최북의 <공산무인>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7. 8. 1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