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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11 충주 탄금대1-충혼탑, 위령탑, 탄금정, 열두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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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11 충주 탄금대1-충혼탑, 위령탑, 탄금정, 열두대

새샘 2020. 3. 10. 18:01

 

탄금대공원 안내도

 

탄금대彈琴臺는 충주시 탄금대안길(칠금동)의 해발 108m의 야트막한 대문산大門山[또는 견문산犬門山]에 

위치하며,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 즉 합수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명승 제42호로서 

탄금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가야금伽倻琴을 만들고 곡을 지은 樂聖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 

바로 탄금대인데, 삼국사기에는 산상대석山相臺石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고 기록되어 있다.

 

탄금대의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지금 남한강가에 세워져 있는 정자인 탄금정彈琴亭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탄금정 주위에는 우륵선생비도 있다.

우륵은 거문고를 만든 고구려 왕산악王山岳과 궁정음악[아악雅樂]을 정비한 조선 박연朴堧과 더불어 한국의 3대 악성樂聖으로 불린다.

 

또한 탄금대는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패전하자 투신한 곳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탄금대는 북쪽으로 남한강이 절벽을 따라 휘감아 돌고 울창한 솔숲이 우거져 있어

탄금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과 강 가운데 섬 즉 하중도河中島인 용섬 주변 경관은 정말 멋지다.

탄금대공원 주차장 안쪽에 충주문화원이 있고,

왼쪽에 갈참나무, 오른쪽에 전나무가 높이 서 있어 문화원을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충주문화원 왼쪽에 서 있는 갈참나무

 

충주문화원 오른쪽의 전나무

 

주차장 남쪽에 세원진 임진왜란 충신 백기장군白旗將軍 조웅趙熊 기적비紀跡碑[공적을 적은 비].

백기장군 조웅(?~?)은 임진왜란 때 충주에서 활동했던 의병장으로서,

자신이 이끄는 의병의 깃발은 모두 흰색으로 만들어 백기장군으로 불리웠으며, 호도 백기당白旗堂이다.

임진왜란 때 봉기한 8도 의병장 가운데 호서 백기장군과 영남 홍의장군(곽재우)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주차장 북쪽에 조성된 야외음악당 잔디밭

 

충주문화원 맞은 편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탄금대공원을 둘러볼 것이다.

 

산책로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탄금대 사연 노래가 서 있다.

충주 애향가愛鄕歌 '탄금대 사연'은 1968년 신인여가수 백진주가 처음 부른 이후 

주현미 등 몇몇 가수가 리메이크했던 트로트이며, 가사에 탄금정, 신립장군, 가야금, 우륵, 대문산 등이 들어 있다.

 

탄금대공원 탐방안내소

 

탐방안내소부터 산책로 주변 여기저기에 조각작품이 있어 방문자들의 눈길을 끈다.

탄금대공원은 많은 수는 아니지만 공원 곳곳에 조각작품이 놓여 있는 야외조각공원!

'흔적'

 

'하늘로'

 

산책로가 왼쪽으로 꺾이기 전 오른쪽으로 충혼탑이 보인다.

높이 8.5m 화강암 충혼탑은 광복 이후 전사한 충주 및 중원 지역의 장병, 경찰관, 군무원, 군노무자

2,838 위의 넋을 추모하려고 1955년 처음 세워졌으며, 2004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忠魂塔' 휘호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친필.

충혼탑 왼쪽에 보이는 탑은 신립장군과 팔천고혼 위령탑이다.

 

충혼탑 왼쪽 바로 뒤에 서 있는 '팔천고혼 위령탑'

이 위령탑은 임진왜란 때인 1592년 음력 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申砬(1546~1592)이 군사 8천을 이끌고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 끝에 장렬하게 전사한 전적지임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탑 위쪽에 형상화된 혼불은 조국을 지키는 수호신인 영령들의 상징이며,

 아래쪽에는 신립 장군과 4인의 장졸이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불굴의 충정을 나타낸 것이다.

 

위령탑을 떠받치고 있는 원반 받침대는 탄금대를 싸고 도는 남한강과 달천의 물결 모양을 조각한 것.

 

위령탑 앞에도 조각 작품이 있다.

 

조각 작품 '율일적律一積'

'律一積'이란 제목이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一積'이란 말은 천부경天符經에 나오는 용어로서 '하늘이 쌓여서'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에 법 '율律'이 붙었으니 '律一積'은 '하늘이 쌓여서 생긴 법'이란 말로 해석되는데,

이 해석이 맞다고 해도 조각 작품이 과연 의미하는 바는????

 

탄금대공원에는 리기다소나무가 많은 편이다.

위령탑 앞 산책로에 있는 정자 쉼터 부근에서 바라본 크게 자란 리기다소나무와 위령탑.

 

산책로와 정자 사이에 솟대 모양의 조각품 '학'이 있다. 그럼 솟대 위 새들은 모두 학이겠지..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 높이 자란 리기다소나무 뒤로 보이는 조각 작품 '학'

 

남한강 절벽 위 탄금정으로 향하는 산책로의 리기다소나무 숲길.

계단 오른쪽 둔덕 지역은 탄금대 토이라고 한다.

이 토성은 4세기 중후반 열국시대 철을 생산하는 백제 세력이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는 남한강변 북쪽 절벽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산책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남한강과 강 가운데 있는 용섬 선착장

 

계단을 오른 뒤부터 산책로는 리기다소나무가 아닌 껍질이 붉은 소나무가 심어진 솔길이며,

솔길 끝자락에 보이는 정자가 탄금정이 이리라!

 

탄금정 직전 산책로 오른쪽에 서 있는 탄금대에 관한 기록을 적은 비석인 탄금대기비彈琴臺記碑.

높이 183㎝, 폭 66㎝, 두께 34㎝의 화강석 탄금대기에 적힌 내용은 

충주의 역사·지리·인물·자연환경에 대한 예찬이며 글은 최남선이 짓고, 글씨는 김충현이 썼다는 것이다.

 

대문산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남한강 절벽에 서 있는 탄금정彈琴亭.

탄금대란 이름으로 보아 지금의 정자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을까 싶다.

 

탄금정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탄금정 오른쪽으로 난 계단은 절벽 위 열두대 가는길

 

계단 중간에 '신립장군이 순국한 터'를 뜻하는 '신립장군 순국지지' 비가 있다.

장군은 여기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한다.

 

탄금정 오른쪽 아래 남한강변 낭떠러지 위에 있는 바위 열두대十二臺는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왜병과의 전투 중 열기에 달아 오른 활 시위를 강물에 식히려고 

이 낭떠러지(臺)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 오며, 

이와는 달리 가야금이 12현 즉 열두 줄이라서 붙은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파노라마.

 

왼쪽 아치교가 달천 최하류의 탄금대교, 그 오른쪽의 긴 다리가 남한강의 우륵대교이다.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섬이 남한강 가운데 형성된 하중도 용섬이다.남한강은 용섬 오른쪽(동쪽)의 상류에서 왼쪽(서쪽) 하류로 흐른다.

 

용섬 동쪽의 남한강 상류 모습

 

열두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남한강 하중도 용龍섬

 

용섬 서쪽의 남한강, 그리고 탄금대교와 우륵대교 

 

열두대에서 탄금정으로 다시 올라와 산책로를 따라 서쪽으로 내려간다.

 

산책로에 서 있는 우륵선생추모비

2020. 3. 1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