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호생관 최북 "계류도" 본문
흐르는 물을 시켜 속세의 시끄러움을 막는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절반씩 나누어 한쪽은 짙게 뒤덮힌 안개로 온통 흰 여백을,
나머지 한쪽은 그 짙은 안개 너머로 아스라히 펼쳐지는 도린결 자드락의 실경을 담고 있는,
매우 과감하게 단순화시켜 부각한 산수화.
화폭 속으로 좀더 더듬어 들어가,
화면의 한복판을 마치 경계선처럼 대각선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시내의 근원을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화면의 왼쪽은 숫제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더 이상 풍경이 보이질 않는다.
화면의 오른쪽 상단의 원경 또한 차츰 안개 속으로 스러져가며 시원한 여백으로 처리되어 있어
도린결 자드락의 깊은 산속처럼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반면 대각선의 반대쪽 하단 화면에도 역시 시내와 언덕의 경계선 아래쪽은 완전히 흰 여백으로만 남아 있어,
시구詩句와 함께 붉은 낙관의 자리가 자연스럽게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화면 복판에 안개 속을 뚫고 드러난 계곡 둔덕에는
일찍이 당대에 평가받은 그대로 예의 '의장을 훌쩍 뛰어넘은 창울한' 풍경이 생명으로 살아 넘쳐난다.
절묘한 먹빛의 구사로 부드러운 묵조墨調의 자드락 비탈을,
그 위에는 보다 짙은 윤묵潤墨으로 제법 굵직굵직한 바위너설과 함께 다시금 낮은 수직의 필선을 가하여
계곡에 수많이 돋아난 갖가지 들풀들을 바람 속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 바위 틈새로 부서져 내려오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시냇물이
엷고 투명한 물빛으로 채색되어 있어 신선하기 그지없다.
'흐르는 물을 시켜 속세의 시끄러움을 막는다'는
최치원의 시를 화면의 왼쪽 여백에 채워 넣은 화제 또한 일품이었다.
반행의 흘림체가 남다른 생명력으로 도드라진,
마치 그의 호방한 기개가 작품 안에서 살아 꿈틀거리듯 거침이 없고 시원스럽기조차 하다.
<계류도溪流圖>는 이렇듯 참으로 만나보기 어려운 빼어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정서의 깊은 개입으로 화면의 완성도는 물론,
과연 3백여 년 전에 그린 그림이라곤 차마 믿기 어려울 만큼
지금 보아도 대담하면서도 모던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실로 거장다운 면모가 물씬 풍겨나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여태까지 보아온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의 걸작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기라성 같은 조선의 다른 화가들의 작품이 박물관 안에 즐비했으나
모두가 이미 거둔 자신들의 명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최북의 <계류도>는 딱히 흙속에 묻혀 있는 보석처럼 눈부신 광채를 화면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다음은 그림의 화제 내용이다.
'각공시비성도이 却恐是非聲到耳 세상 다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고교유수진롱산 故敎流水盡籠山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막았네'
○최북崔北(1712~?): 조선 숙종, 영조 때 화가, 자는 칠칠七七[자신의 이름 북北을 반으로 쪼개서 지음]로서 사람들은 흔히 '칠칠이'나 '칠칠거사'라고 불렀음. 호는 붓 하나로 먹고 산다는 뜻의 호생관毫生館.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지만 기이한 행동과 괴팍한 성질은 유명하다. 한 세도가가 그의 붓솜씨를 트집 잡자 분을 못 참아 자기 손으로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고 남공철이 지은 <최칠칠전>에 기록. 최북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그림은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
※이 글은 박상하 지음, '조선의 3원3재 이야기'(일송북, 2011)에 실린 글을 발췌하여 옮긴 것이다.
그리고 맨 아래에 쓴 그림의 화제는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usoipal&logNo=130173293384&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의 글을,
최북 이력은 위키백과를 인용했다.
2020. 5. 19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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