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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사회보장제를 도입한 철혈 보수주의자 비스마르크

새샘 2020. 6. 2. 23:31

비스마르크가 시행한 사회보장법은 독일 노동자 전부를 포함할 만큼 적용 범위가 광범위했다. 또 보험제도에 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보험을 국가가 직접 관리했고, 나중에는 이를 담당하는 전문기구를 설립하기도 했다. 비스마르크가 시행한 복지제도, 특히 세계 최초로 시행한 노동자의 양로금이나 건강·의료 보험제도는 독일 제국의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사회적 대립·갈등을 상당 부분 완화해주었다.(출처-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zero53&logNo=221188152502)

 

독일을 통일하여 독일 제국을 건설한 프로이센의 외교관이자 정치인 비스마르크 Bismarck-Schönhausen(1815~1898)는 8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그는 사회정책을 실시해 독일을 복지국가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비스마르크는 사회보장에 관한 포괄적인 계획을 고안한 유럽 최초의 정치가였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수상으로 임명되고 1862년 의회 예산위원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당면 문제들을 오직 철 iron(독일어 Eisen)[무기]과 피 blood(독일어 Blut][전쟁]에 의해서만 해결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철혈재상鐵血宰相 the iron chancellor'이란 별명을 얻었다.

 

1871년 통일 직후 독일제국은 한동안 호황을 누렸지만, 1873년부터 시작된 수년간의 경제 불황으로 주가의 대폭락, 수많은 기업의 도산, 노동자들의 대량실업을 겪었다.

급속한 공업화의 결과 1871년 인구의 20%에 달하던 노동자 수는 1880년대 초 인구의 25%로 늘어났다.

노동자들은 장기 불황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고, 이는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세력이 급증하는 요인이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1878년 10월 새로이 구성된 제국의회에서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을 통과시켜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단체들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은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1890년까지 12년 동안이나 갱신·유지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높아가기만 했다.

이런 현실에서 비스마르크는 법을 통한 강압이 사회주의에 대한 완벽한 대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가가 적절한 사회정책을 펼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한다면 노동자들을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로부터 격리시킬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1881년 11월 비스마르크는 제국의회에서 사회입법의 취지를 담은 황제교서를 낭독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호 및 부양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그 후 약 10년간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다.

'위험한'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는 한편 '선량한' 노동자들을 포섭함으로써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권위주의적 사회정책이었다.

이른바 '사탕과 회초리' 정책이다.

 

물론 이런 권위주의적인 정책으로 참다운 국민 통합이 이뤄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위대한 전환'이었고, 그 후 유럽 각국 사회보험제도의 본보기가 되었다.

1884년 오스트리아에 이어 1893년 이탈리아, 1901년 스웨덴·네델란드 등지에 이와 유사한 제도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글은 박상익 지음, <나의 서양사 편력 2>(푸른역사,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20. 5. 1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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