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스트라다무스 본문
프랑스의 천문학자, 의사, 예언가였던 미셸 드 노스트르담 Michel de Nostredame, 일명 노스트라다무스 Nostradamus(1503~1566)는 프랑스 남부의 생레미 드 프로방스 Saint-Rémy-de-Provence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원래 가소내 Carcassonne라는 성을 가진 유대인이었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에 성을 바꿨다.
어린 시절 노스트라다무스는 수학과 화학과 점성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몽펠리에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에 프로방스 지방에서 창궐하고 있던 페스트에 맞서 싸웠다.
그가 개인적으로 개발한 치료법은 당시에 널리 행해지던 의술과 사뭇 달랐다.
그는 사혈瀉血 bloodletting[주사기나 침을 찔러 피를 빼는 요법]을 실시하지 않았고, 청결과 위생을 강조했다.
코에 원뿔 모양의 덮개를 씌워서 독기가 몸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고, 장미꽃으로 만든 사탕인 드롭스 drops를 혀 밑에 넣은 예방법을 생각해 내기도 했다.
한편으로 잼의 조리법에 관한 논문을 쓰는가 하면 백단향白檀香 Indian sandalwood, Santalum album 과 삼杉나무 Japanese red-cedar, Cryptomeria japonica를 주원료로 한 향수를 발명하기도 했다.
1534년 그의 첫 아내와 자식들이 페스트에 걸려 죽었다.
그는 당시에 유럽에서 가장 유능한 임상 의사 가운데 하나였지만, 전염병을 퇴치하려다가 오히려 가족을 잃은 것이다.
그는 한동안 우울증을 겪은 뒤에 영적인 능력을 계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시칠리아에서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을 만나 접신接神에 입문했고, 육두구肉荳蔲 fragrant nutmeg, Myristica fragrans 열매를 먹음으로써 의식의 장벽을 넘어서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런 방법을 써서 명상을 하다가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그는 촛불을 켜놓고 쿠푸 Khufu 왕의 피라미드를 닮은 받침대에 물이 담긴 구리 대야를 올려놓은 상태에서 명상을 했는데, 촛불의 오라 속에서 또는 구리 대야의 물에서 인류의 미래가 펼쳐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 접신 상태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그 뒤에 그는 예언의 내용이 담긴 4행시들을 썼고, 그것들을 백 편씩 묶은 유명한 저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 Les Prophéties de Nostradamus》를 출간했다.
그의 시들은 때로 매우 난해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들을 해석하여 거기에 역사적인 사건들에 관한 예언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의 즉위, 나치 독일의 등장,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집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등에 대한 예언이 맞어떨어졌다는 것이다.
1956년에 진 딕슨 Jeane Dixon이란 미국 점성술사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근거하여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닥칠 것을 경고했다.
어떤 해석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노스트라다무스는 서기 2000년 경에 정치적인 대격변이 시작되고 이상 기후가 나타날 것을 예언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중동에서 밀려오는 위험에 맞서 손을 잡으리라는 것과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들에게 지구가 토네이도나 지진 같은 재난으로 분노를 드러내리라는 것을 예언하기도 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프랑스 왕 앙리 2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2250년에 인류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리라고 썼다.
또한 3797년에는 기온이 엄청나게 상승할 뿐만 아니라 수성이 파괴되면서 생긴 거대한 별똥들이 떨어져 해일이 일고 지구의 모든 표면이 물에 잠기리라고 했다.
하지만 이 무렵이면 인간은 다른 행성에서 새로운 문명을 재창조하기 위해 이미 지구를 떠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혹자의 해석에 따르면 노스트라다무스는 서기 6천 년까지 일어날 사건들을 예언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 궁정에서는 노스트라다무스를 환대했다.
특히 앙리 3세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그를 대단히 좋아했다.
1566년 6월, 그는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조수이자 친구인 샤비니를 불러 자기가 이틀날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마지막 예언은 실현되었다.
그는 자기가 원했던 대로 살롱 드 프로방스의 예배당에 수직 자세로 묻혔다.
<어떤 바보도 내 무덤을 밟지 못하게 해달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사진을 제외한 이 글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열린책들, 2011)에서 옮긴 것이며, 일부 내용은 위키백과와 Wikipedia를 참고하여 보완하였다.
2020. 6. 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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