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화와 항노화 본문
1. 들어가는 말
노화(노령화, 나이먹음) aging(ageing)란 국어사전에 '질병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체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의학용어사전에서는 '성장이 완료·정지되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과정'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생물학적으로는 '생물체가 나이를 먹게 되면서 생기는 기능 저하 time-dependent functional decline'로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항노화 anti-aging는 노화의 반대말로서, 노화 진행을 억제하거나 늦추는 것이다.
노화가 현대 생명과학의 핵심 주제로 떠오른 것은 1983년 보통 개체보다 훨씬 오래사는 장수 예쁜꼬마선충 long-lived namatode Caenorhabditis elegans이란 무척추동물을 찾아냈다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부터다.
2013년 6월 국제 저명 생명과학학술지 '셀[세포] Cell'에 실린 '노화의 특징 The Hallmarks of Aging'이란 논문을 통해 노화로 인해 우리 몸에 생기는 분자, 세포 및 조직 수준에서 나타나는 손상 특징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됨으로써, 노화라는 질병의 발병을 늦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노화는 생명과 질병에 관한 분자생물학 및 세포학 지식이 날로 확장되면서 정밀한 과학 탐구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는 노화가 완치는 되지 않더라도 발병을 늦출 수 있는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노화의 9대 특징
노화는 정상 생리 기능이 점차 상실되면서 악화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생리 기능의 악화는 인간의 주요 질병인 암, 당뇨병, 심혈관 장애, 신경변성 질환의 1차 위험 요인이다.
노화 연구는 최근 몇 년 동안 전례 없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는데, 노화에 관련된 유전 및 생화학 경로가 알려지면서 노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노화와 관련된 유전 및 생화학 경로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위 그림에 나타난 유전체 불안정, 끝분절 마모, 후성 변형, 단백질 항상성 상실, 영양소 감지 조절 실패,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세포 노화, 줄기세포 고갈, 세포사이 신호전달 변형 등 9가지다.
이 9가지 노화 특징은 모두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 나타났으며, 노화 특징을 강화시킨 동물실험에서 노화가 촉진되어 수명이 단축된 반면, 반대로 노화 특징을 약화시킨 동물실험에서는 노화가 지연되면서 수명을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들 9개 특징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자.
1) 유전체 불안정 Genomic instability
생물에게 생기는 손상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은 유전체 손상이다.
사람을 비롯한 세포생물 유전체인 DNA는 외부 요인 즉 물리·화학·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그리고 내부 요인 즉 DNA 복제 오류, 가수분해반응, 활성산소 등에 의해 돌연변이, 염색체 손상, 끝분절 마모와 같은 손상이 생기므로 부분적으로 불안정한 유전체로 바뀌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와 같은 DNA 손상에 따른 인체의 대응 방안은 손상 입은 불안정한 유전체를 교정 proof-reading하여 정상 유전체로 복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DNA 교정 기능을 강화시킨다면 유전체 불안정을 완화시켜 노화를 늦출 수 있을 것이다.
2) 끝분절 마모 Telomere attrition
끝분절(말단소체, 텔로미어) telomere이란 염색체 양쪽 끝 부분에 있는 짧은 길이의 DNA-단백질 복합체로서 염색체 DNA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이 끝분절은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마모되어 길이가 점차 짧아지기 때문에 나이가 많을수록 끝분절의 길이는 상대적으로 짧다.
이 끝분절의 길이가 짧아지거나 길어지도록 조작한 쥐의 수명이 각각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3) 후성 변형 Epigenetic alterations
후성 변형이란 유전체의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발현되는 단백질이 정상과는 다른 변형 단백질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변형 단백질의 종류와 양이 점차 증가함으로써 노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후성 변형을 억제하는 약물을 주사하면 노화가 지연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4) 단백질 항상성 상실 Loss of proteostasis
생명체가 고유한 구조와 기능을 갖는 것은 유전체에 담긴 유전정보가 발현하여 만들어진 산물인 단백질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요인에 의해 정상 단백질의 구조가 바뀌거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정상 단백질의 항상성 homeostasis[환경요인이 변화되어도 생물체 기능이 항상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는 기능]이 상실되어 노화가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항상성이 상실된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치매의 원인으로 확인되었다.
단백질 항상성이 상실되어 근육 퇴행증을 앓고 쥐에게 단백질 항상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 약물을 투여한 결과 질병 진행이 지연되면서 근육 기능이 오래 보존되었다.
5) 영양소 감지 조절 실패 Deregulated nutrient-sensing
세포가 분열하고 정상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영양소 섭취로 공급된다.
따라서 에너지원인 영양소를 감지하는 조절 시스템이 생명체의 성장 growth과 생식 reproduction에 중요하며, 에너지를 성장과 생식에 분배하는 문제가 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생식 기능을 적절한 시점에 없애버리면 노화가 지연되고 생명체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도 입증되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영양소 감지를 최소화시킨 동물실험에서 수명이 증가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세포의 성장과 대사를 최소화함으로써 세포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과다한 영양소가 노화를 촉진하는 것은 분명하며, 영양소 결핍 또한 노화를 촉진시킨다.
이렇게 적절한 영양소 감지 조절에 실패하면 노화가 촉진되는 것이다.
부작용 없는 식이 제한 dietary restriction 즉 칼로리 제한으로 생물체의 수명과 건강수명 모두 늘릴 수 있으며, 약물 투여로 인체가 낮은 영양소 상태인 것으로 모방할 경우 노화가 지연되어 수명이 연장된다는 동물실험 결과도 있다.
6)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Mitochondrial dysfunction
세포생물의 에너지인 ATP를 합성하는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이상이 노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ATP 합성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활성산소 oxygen radicals가 노화에 미치는 많은 연구에서 활성산소가 세포를 손상시키는 기능과 더불어 수명 연장 기능도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즉 활성산소는 특정 상황에서 세포 성장과 생존을 촉진하는 신호이며, 노화가 진행될수록 증가되는 세포의 스트레스와 손상에 대응하는 방어기전으로서 활성산소 발생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장애가 노화를 촉진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발생되는 활성산소가 노화를 촉진시킨다는 기존 이론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현재 활성산소를 이용한 노화 방지와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조절하는 약물로서 노화를 방지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7) 세포 노화 Cellular senescence
세포 노화(노쇠)란 특정 조건에서 세포가 분열하지 않고 세포 주기가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노화세포가 늘어나기 때문에 생물체가 늙는다는 판단은 부분적으로만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은 손상된 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면역반응의 하나로서 세포 노화를 통해 손상세포를 제거함으로써 노화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화된 세포를 제거한 다음 다시 필요한 만큼의 세포 수를 재생시키는 과정이 원활해야 노화가 억제된다.
최근 노화 세포가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진 독특한 종류의 분비체 secretome가 노화에 기여할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8) 줄기세포 고갈 Stem cell exhaustion
조직의 재생 능력이 감소하는 것은 노화의 가장 명백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나이가 들면서 조혈모세포와 같은 줄기세포가 줄어들거나 활성이 약해지면서 혈액 생성량이 감소하는 것이 대표적이며, 그 결과 적응면역(후천면역)이 감소하는 면역 노쇠가 생기면서 빈혈, 골수종양의 확률이 증가한다.
어린 쥐 줄기세포를 조로증 쥐에 이식하였을 때 수명 증가와 재생 능력이 일부 회복되었다.
그리고 줄기세포 고갈은 세포사이에서 일어나는 신호를 조절하여 막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약물 투여로 줄기세포 기능을 개선하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9) 세포사이 신호전달 변형 Altered intercellular communication
노화에 동반되는 염증이 세포사이의 신호전달 체계에 일으키는 변화를 염증노화(인플라메이징) infammaging[염증 inflammation+노화 aging]라고 한다.
즉 염증이 세포 사이의 신호전달을 변형시켜 노화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세포 사이의 신호전달을 변형시키는 인자는 염증 외에도 몇 가지가 알려져 있다.
항염증약물, 식이 제한, 마이크로바이옴 microbiome[미생물체: 인체에 서식하고 있는 미생물 전체] 등이 변형된 세포사이 신호전달을 개선시키는 물질로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노화의 9대 특징을 기능에 따라 위 그림에서와 같이 1차 특징 primary hallmarks, 대항 특징 antagonistic hallmarks, 통합 특징 integrative hallmarks의 세 무리로 묶을 수 있으며,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차 특징으로 분류된 유전체 불안정, 끝분절 마모, 후성 변형, 단백질 항상성 상실 등 네 특징은 모두 세포를 손상시키는 직접 원인으로서 모두 노화를 유발한다.
1차 특징과는 달리 대항 특징으로 분류된 영양소 감지 조절 실패[과다한 영양소는 질병과 노화 유발하지만 낮은 수준의 영양소는 노화를 지연시켜 수명 연장],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과다한 활성산소는 세포를 손상시키지만 적당한 활성산소는 노화 방지], 세포 노화[과다하면 노화를 촉진하지만 손상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세포 노화는 세포 재생이나 암세포 방지에 필수] 등의 세 특징은 그 강도에 따라 노화를 억제하기도 유발하기도 한다.
즉 강도가 낮을 때는 노화를 억제하며 강도가 높을 때만 노화가 촉진되는 것이다.
통합 특징에 해당하는 줄기세포 고갈과 세포사이 신호전달 변형의 두 특징은 노화를 유발하는 1차 특징과 이에 대응하여 나타나는 2차 특징에 의해 축적된 손상 결과가 세포와 조직의 항상성을 파괴했을 때 나타난다.
3. 항노화
노화를 지연시키고 억제하여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요법을 알아보자.
1) 약물
-노화세포제거제 senolytics: 노화세포를 파괴하거나 분해시키는 약물
-라파마이신 rapamycin: 토양방선균 스트렙토마이세스 균종 Streptomyces hygroscopicus가 생성하는 항생물질로서 항노화 기능이 알려진 면역억제제
-메트포르민 metformin: 인슐린 비의존 당뇨병인 2형 당뇨병 치료제로서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조절하는 항노화기능이 알려짐
2) 재생의학
-줄기세포 치료: 태반 줄기세포 등
-장기 재생: 인체 장기, 인공 장기 등
3) 식이 제한
-칼로리 제한이라고도 하는 이 요법은 노화를 억제하는 적정 칼로리에 해당하는 적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소식小食 요법
4) 건강보조식품
-NAD[nicotinamide adenine dinucleotide]; 핵산 구성분자이며 전자전달체의 한 종류
-비타민 B3[니아신 niacin]
5) 젊은 혈장 수혈
-젊은 쥐의 혈장 plasma[혈액에서 혈구를 제거한 액체 성분]을 늙은 쥐에 수혈한 실험에서 늙은 쥐의 뇌와 근육 조직이 개선
※출처-1. Lopez-Otin, C. et al., 'The Hallmarks of Aging', Cell. 2013 June 6; 153(6): 1194-1217.
2. 성상현, '노화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이해와 응용 동향', BRIC View 동향리포트 2019-T17.
3. 김치구, '노화의 미래는?',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No.31 BioINglobal 2019. 1.
2020. 6. 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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