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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조선의 천재화가 '3원3재'의 초상을 이야기하다

새샘 2020. 5. 27. 12:04

 

소설가 박상하가 지은 '조선의 3원3재 이야기'란 책이 2011년 출간되었다.

미술평론가가 아닌 소설가가 쓴 책이라 이야기로 이어지는 내용이어서 흥미로웠다.

 

읽는 도중 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을 블로그에 올리고 싶어졌다.

 

가장 먼저 '들어가는 글'부터 살펴 보자.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으나 사람들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천재화가로 흔히 '3원3재三園三齋' 여섯 분을 손꼽고 있다.

3원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을, 3재는 겸재謙齋 정선鄭敾·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또는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등을 일컬어 부른다.

 

물론 세간의 평가에 준한 것이라고는 하나, 이런 식의 구분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선시대의 회화를 꼭이 '3원3재'로 한정시켜 강제로 가늠하고 만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 달리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만은 않다.

이들을 건너뛰고서 정녕 조선시대의 회화사를 따로 설명할 길이란 없을 뿐더러, 사실상 이들이야말로 조선시대의 회화를 가장 넓게 깊이 절약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세평에 준한 그런 상징성을 결코 무시할 수만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천재화가의 상징으로 애당초부터 '3원3재'라고 불렸던 건 아닌 것 같다.

1928년 오세창吳世昌이 간행한 ≪근대서화징近代書畵徵≫을 보면 '세칭사인명화삼재世稱士人名畵三齋라고 했다'는 기록을 접할 수 있는데, 이로 미뤄 그같이 부르기에 앞서 겸재·공재(또는 관아재)·현재를 일컫는 '3재'가 먼저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3재'는 자신을 뒤따라오게 될 '3원'인 단원·혜원·오원과는 달리 저마다 당대의 명문 사대부 출신이었다.

더욱이 이들 '3재'는 오랫동안 답습되어 내려오던 중국 화풍을 과감히 청산하면서, 일찍이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여 비로소 우리 회화의 변별력을 제시해냈다.

 

그리하여 이들 '3재'에 의해 새로이 구축된 우리 회화는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져 정조시대 이후에는 우리 회화의 보편적 경향으로 확산되면서, 다시금 '3원'이라는 비길 데 없는 예술세계를 낳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이들 '3원'은 이미 선대 '3재'가 이룩해 놓은 우리 회화의 변별력 위에 보다 외연을 뚜렷이 확장시켜 더욱 그 빛을 발했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설명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천재화가 '3인3재' 가운데 관아재 조영석보다는 굳이 공재 윤두서를 대신 들고 나온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먼저 세간의 평가에 준하여 흔히 '3원3재'를 언급할 때 혹자는 관아재를 손꼽기도 하나, 또 혹자는 공재를 그 자리에 대신 손꼽기도 한다.

더욱이 겸재와 관아재는 스승과 애제자 사이였다.

두 분 모두 같은 화풍에 근거한 진경산수화를 남기면서 겹치는 부분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그에 반해 공재는 이들과 전연 색다른 화가의 길을 전개해 나가면서, 겸재나 관아재의 예술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펼쳐보였다.

그가 그려 남긴 <동국여지지도>와 같은 지도 그림은 물론이거니와, <유하백마도>와 <나물 캐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처음으로 풍속화다운 풍속화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공재의 <자화상>과 같은 초상화는 우리 나라 회화 사상 최초의 자화상이면서, 초상화 가운데 단연 최고의 걸작이라는 점이 그만 나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적어도 그의 이런 예술세계를 또 다시 만나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관아재보다는 대신 공재를 선뜻 들고 나올 수 밖에 없었음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또한 본문에 들어가서 '3원'보다 '3재'를 먼저 배치 기술한 문를 두고 한참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음도 아울러 고백한다.

이 문제는 그들이 남긴 어떤 예술적 평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앞서 화가의 삶을 살았던 시대 순에 따른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여기에 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천재화가 '칠칠이' 최북崔北을 '3원3재'에 이어 덧대어 붙이기로 결정했다.

위대한 예술이란 저주받고 추방당한 가난한 영혼에서 창조되어진다는,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화가의 독특한 영혼을 그들과 함께 결합시키고 싶었.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천재화가는 '3원3재'가 아니라 마땅히 '3원3재1칠칠이'여야 한다는 나의 오래된 생각을 한사코 옮겨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짜장 어떻게 자신의 운명과 조우하는 맨 처음의 질문을 던지게 되었으며, 또 그렇게 화가가 되어 무엇을 그렸고,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나갔는지를 나름 들여다보고자 한다.

 

자, 그럼 어서 조선의 천재화가 '3원3재'와 더불어 '1칠칠이'를 반갑게 만나보기로 하자.

 

※이 글은 박상하 지음, '조선의 3원3재 이야기'(2011, 일송북)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20. 5. 2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