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공재 윤두서 "동국여지지도" 본문

글과 그림

공재 윤두서 "동국여지지도"

새샘 2020. 6. 8. 19:43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한 폭 그림에 모두 담으리라>

 

윤두서, 동국여지지도東國輿地之圖 축척 약 1/1,000,000, 112x72.5㎝, 장지壯紙(우리나라에서 만든 두껍고 질기며 질이 좋은 종이의 하나)에 그린 채색 필사본, 보물 제481호, 윤씨종가(해남)(출처-해남윤씨중앙종친회 홈페이지 http://www.haenamyun.com/hy5/1412)

 

방안은 널따랗고 차 향기로 그윽했다.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라곤 없어 차분하기만 했다.

조촐하게 놓여 있는 목가구들마저 깔끔하게 닦여 있어 윤기가 반지르르 했다.

 

그 방안의 한복판에 우두커니 가부좌한 선비가 아무 말 없이 홀로 앉아 있었다.

무슨 결연한 생각에 잠겨있는지 팔짱을 꾹 낀 채였다.

 

하지만 그의 인상은 너무도 또렷하기만 했다.

꼿꼿한 자세에 늠름하고 진중한 기상은 다시 보아도 오만한 의지가 짙게 묻어나는 선비의 인상 그대로였다.

두 눈을 절반쯤 내려 깐 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두 눈빛이 놀랍도록 맑았다.

 

선비의 그런 눈길은 정물처럼 가지런히 놓여있는 문방사우에 꽂혀 있었다.

아니 종이, 붓, 묵, 벼루 말고도 양홍洋紅, 주사朱砂, 서홍曙紅, 등황藤黃, 화청花靑, 석청石靑, 석록石綠, 백분白粉과 같은안료 물감을 함께 아우르고 있었다.

 

그림을 그려 넣을 커다란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선비는 벌써 며칠 째 그렇게 앉아 있는지 모른다.

그가 다름 아닌 한국 회화 사상 최초의 자화상이자, 우리나라 초상화 가운데 가장 위대한 걸작을 남긴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였다.

 

"공재, 이번에는 또 어떤 작심을 하였기에 그림 종이가 이다지도 크단 말인가?"

그때 문득 방안으로 성큼 들어서던 친구 식산 이만부는 잠시 몸을 세운 채 주춤거렸다.

그림을 그려 넣을 종이가 방안 가득 펼쳐져 있어 그 크기에 놀랐던 것이다.

"우리 땅을 그려보려고 하는 걸세."

 

"우리 땅이라면, 자네가 지도라도 그리겠다 말인가?"

"물론 우리 땅을 그린 전도全圖를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그려왔다고는 하나,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생각해서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이 한 폭에 담아보려고 하네."

 

"하지만 그게 어디 간단한 노릇인가?"

"하기는 내가 전국 팔도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실측을 할 수는 없는 일.

대신 기왕에 나와 있는 우리 목판본을 정성껏 탐구하여 내 나름대로 그려볼걸세."

 

"그렇더라도 지도는 자네가 처음으로 그려보는 건데....."

"그렇긴 하네만 언제인가는 꼭 한 번 그려보리라,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오던 일이었네."

 

"하면 어떻게 그릴 작정인가?"

"예전부터 내려온 방식대로 땅의 이치를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땅의 이치라면?"

"자네도 익히 알잖은가. 우리 땅에는 음양과 오행의 이치가 있고, 그 이치에 따라 땅이 살아있으며, 그 가운데 산과 강은 뼈와 혈관으로 그 맥을 이룬다고 하는, 곧 그대로 그릴 걸세."

 

"그렇긴 하더라도 진경산수화를 그리는 이는 혹여 지도와 닮지 않을까, 또한 지도를 그리는 이는 혹여 진경산수화와 닮지나 않을까 매번 서로 걱정하지 않던가? 공재, 자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강산을 이 한 폭의 그림에 담고자 처음 마음을 품었을 때부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번민했던 게 바로 그 점이었다네."

 

"그래 그 번민이 끝났는가?"

윤두서는 잠시 고갤 끄덕여 보였다.

"하면 내게 들려주어도 좋겠는가?"

 

"물론이네, 이미 세 가지 정도는 생각해두고 있다네.

하나는 일반 진경산수화에서 구사되던 반半 부감적인 전개 구도에서 벗어나는 것.

또 하나 마치 활짝 핀 꽃이 바깥쪽으로 꽃잎을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개화식開花式 구도를 탈피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꽃망울이 오므라들 때처럼 안쪽으로 모여든 모습을 하고 있는 폐화식閉花式을 따르지 않을 참이네.

물론 이 세 가지를 모두 다 그리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네만."

그러면서도 윤두서는 선비로서의 법도를 결코 잃지 않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조선 팔도를 직접 돌며 몸으로 체득하고 그것으로 증명하는 '실득實得'이 아니라 할지라도, 공재 자네가 공을 들여 그린다면 어디 명나라 왕반王泮의 여지도輿地圖(동아시아 지도)에 비하겠는가."

 

왕반이라는 말에 윤두서는 잠시 소리 내어 웃었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족집게처럼 알아차리고만 친구 이만부의 신통함에 조금쯤은 허탈해하는 듯한 얼굴 표정이었다.

"식산, 자네도 왕반의 여지도 지문識文을 읽어본 게로군."

 

비로소 윤두서는 자신이 조선의 팔도 지도를 그리고자 하는 까닭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

비록 목판본으로 볼 수 있긴 하였으나, 명나라 왕반의 여지도가 순전히 중국 중심으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지도를 좀 더 실증적으로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키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윤두서는 친구 이만부가 말하고 있는 명나라 왕반의 여지도는 지금 그 실물이 전하고 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왕반이 여지도를 그리면서 1594년에 쓴 지문만이 전하고 있을 따름인데, 그 지문은 다음과 같다.

 

'···················· 이 지도는 양도兩都와 13성省, 도와 성이 거느리고 있는 152부府, 240개의 주州, 1,107개의 현縣, 493개의 위衛, 2,854개의 소所, 그리고 선위宣慰, 선무宣撫, 초토招討, 안무安撫, 장관長官의 여러 관청 218개를 기재하였다.

그리고 밖으로는 조공을 바치는 나라, 예컨대 조선과 안남(지금의 베트남) 등 56개 나라, 속온하速溫河 등 58개 섬, 노아간奴兒干과 오사장烏思藏 등 도사都司가 관할하는 238구區를 판각하여 나열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치 별을 뿌려놓은 듯하다."

 

"그렇다하더라도 전도를 그린다는 게 어디 간단한 노릇인가 말일세."

친구 이만부는 몇 해가 걸릴지도 모른다며 다시 한 번 윤두서의 무모함을 일깨워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식산, 자네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는 비록 조선 팔도를 직접 돌며 몸으로 체득하고 이를 증명하는 '실득'은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대륙의 문법이 아닌 우리의 문법으로 우리의 강산을 직접 그려 보고 싶다는 뜻을 오래전부터 해왔다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어 며칠째 이렇게 그림 종이를 펼쳐놓고서 앉아 있는 것이니, 식산 자네도 이 전도 제작에 뜻을 함께 해주길 바라네."

 

윤두서는 좀처럼 붓을 들기가 어렵다고 했다.

처음으로 그려보게 되는 우리 강산의 전도가 그만 무겁게 그를 가위 눌러 도대체 무엇부터 헤치고서 지도 그림 속으로 들어가야 할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는 중이라고 고백했다.

 

※동국여지지도를 제외한 이 글은 박상하 지음, '조선의 3원3재 이야기'(2011, 일송북)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20. 6.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