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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백자달항아리

새샘 2020. 8. 17. 06:10

<백자달항아리, 국보 제310호, 높이 43.8㎝, 몸통지름 44㎝ -사진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3100000,11&pageNo=1_1_1_1>

한국미술사에서 조선후기 새로운 변화의 조형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술 작품은 바로 18세기 <백자달항아리>다.

현재 높이가 50㎝를 넘는 백자달항아리들은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미술시장에서는 보존 상태와 생김새에 따라 수억 내지 수십억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백자달항아리들은 앞으로 한국 고미술품 가운데 수백억~천억 원의 값어치를 할 으뜸이 아닐까 싶다.

 

백자달항아리는 조선시대 궁궐이나 대갓집에서 장을 담던 그릇이다.

이런 용도와 관련해 삼성미술관 리움의 소장품 가운데 유명한 백자가 있다.

항아리 표면에 그럴듯한 추상화 무늬처럼 장 얼룩이 아름답게 배어 나왔기 때문이다.

 

비단 이 자기뿐 아니라 백자달항아리들은 당시 왕실이나 상류사회의 미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도공의 창조적 아이디어와 솜씨를 자랑할 만한 유물이다.

우리나라 문화재 중 가장 한국적이고 또 조선적인 대표작을 꼽는다면,

아마 미술사학자나 미술문화 관련자 대부분이 백자달항아리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외국의 미술사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백자달항아리는 한국미를 잘 대변한다.

그 형태 그대로 '조선'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백자달항아리>의 형태를 찬찬히 살펴보면 어느 시점에서나 좌우가 살짝 일그러져 보인다.

바로 이게 매력포인트!

좌우 비대칭의 균형 asymmetrical balance의 아름다움이 적절히 담겨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하면, 유교 내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예의·절제·검박儉朴(검소하고 소박함)·청백리 등의 키워드가 떠오르지만, 이렇게 단정한 격식의 유교 이념이 경제적 성장으로 돈의 힘에 밀리기 시작한 것일까?

백자달항아리는 엄정하고 완벽한 대칭이 아닌 살짝 주저앉거나 일그러진 미를 허용하였다.

사람의 감정, 욕구, 개성 등이 열리는 조선후기의 시대정서를 반영한 자연스런 형태미를 딱 맞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라이벌의 다름마저도 통합하고 포용할 원만한 형태미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이태호 지음, <한국미술사의 라이벌>(세창출판사, 2014)에 실린 글을 발췌한 것이다.

 

2020. 8. 17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