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한스라는 이름의 말 본문
1904년 세계 과학계를 들뜨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침내 <인간과 똑같은 지능을 가진 동물>을 찾아냈다고 믿게 만든 사건이었다.
문제의 그 동물은 오스트리아의 학자 폰 오스텐이 훈련시킨 여덟 살배기 말이었다.
한스 Hans라는 그 말을 보러 온 사람들은 그 말이 근대 수학을 완전히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한스는 방정식의 답을 척척 알아맞혔다.
뿐만 아니라, 시계를 정확하게 볼 줄 알았고 며칠 전에 본 사람들을 사진에서 찾아냈으며 논리학 문제를 풀기도 했다.
한스는 굽 끝으로 물건을 가리켰고, 바닥을 두드려 수를 표시했다.
독일어 낱말을 전달하고자 할 때도 굽으로 바닥을 두드려 글자들을 하나하나 나타냈다.
a는 한 번 두드리고, b는 두 번, c는 세 번하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한스를 상대로 갖가지 실험을 했다.
한스는 어떤 실험에서도 자기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말과 주인만이 아는 모종의 암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인을 입회시키지 않고 실험을 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동물학자에 이어 생물학자와 물리학자, 나중에는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까지 세계 전역에서 한스를 보러 왔다.
그들은 의심을 품고 왔다가 어안이 벙벙해져서 돌아갔다.
그들은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는 깨닫지 못했지만, 한스가 <비범한 동물>아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04년 9월 12일, 13명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한 집단이 한스가 보여 주는 능력이 사기일 가능성을 일체 배제하는 보고서를 펴냈다.
당시에 그것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과학계는 한스가 사람들과 똑같은 지능을 지녔다는 생각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던 중 마침내 한스 사건의 비밀을 밝혀 낸 사람이 나타났다.
폰 오스텐의 조수 가운데 하나였던 오스카 푼크스트가 그 사람이었다.
그는 한스가 어떤 경우에 틀린 답을 내놓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스는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이 답을 모르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오답을 내놓았다.
또, 자기 혼자서 사진이나 숫자나 문장을 대하고 있을 때는 대답이 제멋대로였다.
마찬가지로, 입회한 사람들을 보지 못하도록 눈가리개로 씌우고 실험을 했더니, 한스는 예외 없이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결국, 한스의 능력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은 수준의 주의력에 있다는 것이 유일한 설명이었다.
한스는 굽으로 바닥을 두드리면서 입회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태도의 변화를 감지했던 거였다.
그리고 그렇게 주의력을 집중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한 것은 먹이라는 보상이었다.
비밀이 드러나자, 학계의 태도는 표변豹變[마음, 행동 따위가 갑작스럽게 달라짐]하였다.
학자들은 그렇게 쉽게 속아넘어간 것을 후회하면서 그 때부터는 동물의 지능과 관련된 일체의 실험에 으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한스의 사례를 속임수의 희화적인 본보기로 가르치고 있다.
하짐나, 가련한 한스에게는 사람만큼 똑똑하다는 영광도 속임수에 능하다는 오명도 걸맞지 않다.
한스는 그저 사람들의 태도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한때 사람과 대등한 동물로 오해를 받았을 뿐이다.
어쩌면 한스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 진짜 이유는 더 깊숙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들킨다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이 글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열린책들, 2011)에서 옮긴 것이다.
2020. 8. 1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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