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오바마 부친과 화해한 미 백인, 동족끼리도 '소통' 안 되는 한국 본문
미국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 Brack Obama의 자서전《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Dreams from My Father≫에는 오바마의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케냐 출신인 오바마 시니어는 1960년대 초 하와이대학에 유학을 했다.
하루는 오랜 시간 꼼짝도 않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난 뒤, 백인인 그의 장인(오바마 대통령의 외할아버지)과 친구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와이키키 바'라는 동네 술집에 가서 합석했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기타 연주를 들으며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백인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바텐더를 향해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깜둥이 옆에서는 좋은 술을 마실 수 없어!"라고 말했다.
갑자기 술집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오바마 시니어를 바라봤다.
한판 싸움이 벌어지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오바마 시니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텐더에게 항의한 그 백인에게 다가가서 미소를 짓고는,
그에게 편견의 어리석음과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인간이 가진 보편적 권리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백인은 미안했던지 주머니에서 돈을 100달러나 꺼내 오바마 시니어에게 줬다.
그 돈으로 그날 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공짜로 술을 먹었고,
남은 돈으로 오바마 시니어는 그 달치 집세를 냈다.
오바마는 10대 소년 시절 외할아버지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외할아버지 이야기가 과연 사실일까 의심하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옆으로 밀쳐놓았다.
필경 근거가 빈약한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난 뒤에 청년 오바마의 신문 인터뷰 기사를 읽은 한 일본계 미국인이 오바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60년대에 하와이대를 다녔던 그는 신문에 실린 오바마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이름이 겹치는 오바마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갑자기 밀물처럼 밀려왔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전화를 하던 중 그는 오래 전 술집에서 백인 남자가 오바마 시니어에게 잘못을 사과하며 돈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린 시절 오바마의 외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가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와이대 졸업 후 장학생으로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한 오바마 시니어는 신생 독립국 케냐에서 촉망 받는 수재였다.
웅변가이기도 했던 그는 마치 자석과도 같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성격이었다고 했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니 자신을 경멸한 백인을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시니어 개인의 탁월한 능력만으로 이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아무리 옳은 말도 '싸가지 없게'하면 용납하지 않으려는 감정과잉 사회,
합리적 설명을 들어도 '패거리의 이익'에 어긋나면 한사코 귀를 틀어막는 소통불능의 우리 풍토에서는,
오히려 '흑인이 하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잘못을 사과했던 '그른 말을 한 백인'이야말로
오바마 시니어 못지않게 대단한 인물로 보인다.
합리성·도덕성을 내면화한 '근대적 개인'은 우리에겐 아직 요원하가보다.
※이 글은 박상익 지음, <나의 서양사 편력 2>(푸른역사, 2014)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2020. 8. 1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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