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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불화 설충 "관경십육관변상도" 본문

글과 그림

고려 불화 설충 "관경십육관변상도"

새샘 2020. 11. 8. 17:05

<설충·이□, 관경십육관변상도,1323년, 비단에 채색, 224.2×139.1㎝, 일본 지온인(사진 출처-출처 자료 2)>
<관경십육관변상도 중 가운데 부분(사진 출처-출처 자료 2)>
<관경십육관변상도 중 가운데 부분 아래 아미타불(사진 출처-출처 자료 2)>

 

<관경십육관변상도 중 아랫부분(사진 출처-출처 자료 2)>
<관경십육관변상도 중 윗부분(사진 출처-출처 자료 2)>
<관경십육관변상도 중 맨 아랫부분(사진 출처-출처 자료 2)>

고려시대 그림 중에 남아 있는 것은, 불화佛畵를 빼면 거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불화가 백 이십여 점 되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대부분은 일본에 있고, 근래 일본, 미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그림도 몇 개 있고, 미국에 몇 점, 프랑스에 몇 점 있는 형편이다.

 

불화라고 하면 부처 그림이라고 하지만 그 모양새를 보면 탱화幀畵[탱: 부처, 보살, 성현 등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가 대부분이고 그 외에는 우리나라 부석사 벽화처럼 벽화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작은 병풍인 소병小屛 하나, 사경寫經[후세에 전하거나 축복을 받기 위해 경문을 베끼는 일 또는 베낀 경전]의 변상變相[경전의 내용이나 교리, 부처의 생애 따위를 형상화한 그림]으로 되어 있는 것 등이 있으니 우리가 감상을 위주로 얘기한다면 주로 탱화가 그 대상이 된다.

 

그런데 부처님 그림, 불화라고 하는 것은 본래는 장면화이다.

절의 법당 같은 곳에 걸었던 것이다.

걸려 있던 그림이라는 사실만이 문제가 아니고 그 법당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시설, 장엄 같은 것과 조화되어 의미를 갖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단지 그림 하나로서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불화라는 것은 원래 예배의 대상이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예배하는 대상으로 쓰던 그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감상화로서 논한다는 것은 사실 불화의 성격에 어긋나는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120여 점의 고려불화 중 기년紀年[제작년도]이 있는 것은 21점으로, 이를 세분햐여 간지干支로써 표지한 것이 9점, 연호가 있어서 절대 연도를 알 수 있는 것이 12점이다.

이들의 연대로 보면 대부분이 13세기 말 가까운 때부터 14세기 중엽에 이르는, 고려시대 후반의 그림들로 알려져 있다.

아마 거란의 침입, 몽고의 대란 등으로 그 이전의 그림들은 불화든, 일반 그림이든 거의 다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불화의 내용은 이렇다.

문헌에 따르면 고려 때는 거란의 침입이나 몽고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기 위해서 제석도帝釋圖[십이천의 하나이며,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임금으로 사천왕과 삼십이천을 통솔하면서 불법 및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하는 역할을 하는 제석 그림], 나한도羅漢圖[생사를 이미 초월하여 배울 만한 법도가 없게 된 경지에 이른 부처인 나한 그림], 마리지천도摩利支天圖[인도의 일반 백성들이 신앙하던 천신으로 형체를 숨기고 액을 벗어나게 해 주는 삼전신三戰神(마리지천, 대흑천大黑天, 비사문천毘沙門天)의 하나인 마리지천 그림] 같은 불화를 많이 그렸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런 외적을 물리치기 위한 그림보다는 개인의 극락왕생이나 집안의 수복壽福[오래 살고 복을 누리는 일]을 비는 내용으로 비교적 제한되어 있다.

말하자면 현세의 이익과 장래 극락에서 왕생한다는 것을 목표로 한 아주 제한된 의미의 내용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림도 아미타불과 같은 부처를 그린 부처도, 중생의 구세자인 관음보살·지장보살 같은 보살을 그린 보살도, 그리고 수행자인 나한을 그린 나한도 대부분이다.

다만 하나 고려 때는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불화 제작에는 일급의 화공들이 많이 동원되었을 것이므로 불화에 보이는 고려 화공의 솜씨가 고려 때 그림의 수준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토교淨土敎[아미타불의 구원을 믿으며 한마음으로 염불을 외면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종교적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대승불교사상의 일파]의 기본 경전아미타경阿彌陀經,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의 세 경을 하나로 묶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다.

관무량수경은 시각적 매체를 통해 심상에 집중하고 마음을 다스려 통일시킴으로써 극락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경전으로서, 극락왕생을 위한 삼복三復, 아미타불과 극락세계를 관상[수행의  가지로서 마음을 오로지 일정한 대상에 기울여 상념을 일으키게 하여 번뇌를 없애는 일]하기 위한 열 세 가지 방법, 극락에 태어나기 위한 아홉 가지 조건, 칭명염불[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일]을 담고 있다.

 

<관무량수경십육관변상도觀無量壽經十六觀變相圖>, <관경십육관변상도>, <관경변상도> 등으로 불리는 이 그림은 아미타불[또는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광불無量光佛]이 계신 서쪽 극락세계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은 관상을 통해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왕생하는 방법인 십육관을 묘사하고 있는데, 십육관十六觀기본적으로 정선定善이라고 하는 열세 가지의 극락세계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하는 정선십삼관定善十三觀과, 죽어서 왕생할 때 행적에 따라 삼배三輩[상上배, 중中배, 하下배]로 나타나 구품왕생九品往生하는 모습인 산선삼배관散善三輩觀을 말한다.

 

지는 해[일몰日沒], 물, 나무, 연지蓮池와 같은 자연물에서 극락이라는 공간, 그 공간을 장엄하는 요소들, 극락을 다스리는 부처와 보좌하는 보살들,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인물들을 떠올린다.

현실의 경물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티프 motif[작품을 표현하는 동기가  작가의 중심 사상]의 시각 훈련은 점차 한 번도 보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존재에 대한 시각 훈련으로 전개된다.

관무량수경에서 묘사한 정토를 <관무량수경도>라는 불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시각화함으로써 관상의 보편화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경십육관변상도>는 현재 2점에 남아 있는데 둘 다 작품이 우수하며, 모두 일본 사찰이 소장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이 글에 소개하는 일본 지온인[지은원知恩院] 소장의 <관경십육관변상도>이며, 다른 하나는 일본 사이후쿠지[서복사西福寺]가 소장한 <관경십육관변상도>이다.

 

일본 지온인 소장의 <관경십육관변상도>는 제작 연대가 있다.

이 그림은 원나라의 지치至治 3년이니까 1323년, 즉 고려 충숙왕 10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크기는 세로 224.2㎝, 가로 139㎝로 상당히 크다.

또한 그린 화공의 이름도 나와 있는데, 한 사람은 설충薛沖, 또 한 사람은 이李□라는 두 사람이 그린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림을 한번 살펴보자.

부처의 몸에 해당하는 진신관眞身觀이 그려진 중앙부는 12관 장면이다.

아미타불과 두 협시夾侍보살[가운데 있는 본존불을 모시는 보살]인 관음觀音과 세지勢至,  그 다음에 좌우 16구 나한들, 아래는 좌우에 각기 10명씩의 보살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중앙부 12관의 그림은 얼굴과 머리를 비교적 하얗게 칠했기 때문에 중앙부가 확 눈에 띈다.

그래서 대단한 그림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미타불 앞에 놓인 공양 탁자 옆에는 각각 2명의 여인과 승려가 자리하고 있다.

공양 탁자 주변에서 합장을 하거나 공수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두 여인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려 귀족 여인 옷을 차려입은 단아한 자태를 보여주며 아미타불을 등지고 앉아 있어 앞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승려들은 뒷모습을 주로 보여 신분상의 차이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중앙부 위와 아래에도 각각 삼중불들이 그려졌다.

 

관무량수경의 12관은 실제로 자신이 극락정토에 왕생했다고 생각하는 관이다.

이 작품 이전의 관경변상도의 12관에 표현된 왕생자는 어떤 인물인지 특정할 수 없는 형상이었던 것 비하면 이 그림에서는 현실감 있는 인물로 표현된 것이다.

이 형상을 통해 볼 때 이 불화 조성을 발원한 사람들이 왕생자의 형상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능성은 화기畵記[그림 설명]를 통해 확인된다.

불화의 시주자 겸 발원자들은 3명의 승려와 관직을 가진 사람들, 선종 승려 중 가장 높은 지위의 대선사, 그리고 정업원의 주지이자 승통이었던 승려였다.

정업원은 고려후기 왕실 여인들의 출가처로서, 왕의 후궁과 왕실 여인들의 거취와 예우 등의 문제가 생기면서 궁궐에서 가까운 도성 안에 집을 궁으로 삼아 이들을 옮겨 살도록 한데서 유래한 왕실여인들의 사찰이었다.

정업원 소속의 승려들은 높은 신분과 경제력을 바탕을로 적극적으로 불사에 참여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그림에는 좀 더 긍정적인 여성 성불관이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온인 소장의 이 <관경변상도>는 중앙부가 돌출되어 있고 복잡하지 않게 그려졌으면서, 성불의 아이콘으로 여성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불화대전'(2010)

3. 금강신문 2016. 04. 26, '불화로 배우는 불교 6. 관경16관변상도.

 

2020. 11. 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