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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된 민족

새샘 2020. 11. 13. 13:08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섬(출처-나무위키(https://namu.wiki/w/%ED%83%9C%EC%A6%88%EB%A9%94%EC%9D%B4%EB%8B%88%EC%95%84)>

드물지만 한 민족의 존재에 대한 기억이 통째로 잊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지금으로부터 1만 년도 더 전에,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원주민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Tasmania에 살고 있었다.

1642년, 네델란드인 아벌 타스만 Abel Tasman이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 남쪽에 위치한 이 섬에 발을 디뎠다.

뒤이어 1772년에는 프랑스인 마리옹 뒤프렌 Marion du Fresne이,

1773년에는 영국인 제임스 쿡 James Cook이 이곳에 상륙했다.

 

1803년 태즈메이니아 남쪽 해안에 영국에서 온 죄수들을 수용하는 감옥이 세워졌고,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 온 간수들이 도착했다.

한때 범죄자였던 사람들이 농사꾼으로 변신해 땅을 일구자 섬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영국 본토에서 이곳으로 보내 처리하는 죄인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은 경작 가능한 땅에서 쫓겨나 점점 사막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1803년부터 1883년 사이에 알코올 중독과 매독이 유행하자 5천 명이었던 원주민 인구는 3백 명으로 줄어들었다.

영국 본토에서는 이들이 지은 죄가 있어 이런 가혹한 운명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

생존자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하지만 급격한 인구 감소를 막을 수는 없었다.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죽음은 단순히 죽음이 아닌 멸종될 종의 '운명 運命 destiny'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죽음은 인종주의와 더불어

식민 정책과 집단학살[제노사이드 genocide: 고의적 또는 제도적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제거하는 학살의 한 형태]로 인한 '절멸絶滅 extinction'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트루가니니(출처-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Truganini)>

우리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마지막 태즈메이니아인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아이도 더 이상 낳지 않게 되었다.

1876년, 최후의 태즈메이니아인으로 여겨지는 한 여성이 인류학자들의 손에 이끌려 주도인 호바트 Hobart에 도착한다.

트루가니니 Truganini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을 돌보던 의사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저들이 나를 토막 내지 못하게 해요.”

 

이후 태즈메이니아 박물관 및 미술관(Tasmanian Museum and Art Gallery)에 전시됐던 그녀의 시신은

1976년에 와서야 박물관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장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록 그룹인 미드나이트 오일 Midnight Oil은 <트루가니니 Truganini>라는 제목의 노래를

그녀에게 헌정했다.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문명에 대해 남아 있는 기억은 록 음악 한 곡이 전부인 셈이다.

 

※출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기억 2'(열린책들, 2020).

2. 장예나, '영국의 인간유해 수집에서 반환까지: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사례', Homo Migrans Vol.17 (Nov. 2017): 31-61. 

 

2020. 11. 1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