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양송당 김시 "한림제설도" 본문
김시金禔(1524~1593)의 자字는 계수季綏이고, 호는 양송당養松堂이다.
이 화가가 소위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아주 화격畵格(그림의 품격)이 높다.
김시의 대표작은 일본 오사카 근처에 있던 사람이 가지고 있다가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The Cleveland Museum of Art에 팔려간 <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인데, 1584년에 그린 작품이다.
작품이 아주 좋다.
이 그림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오지 않고 미국에 갔는지 아주 분한 감이 든다.
왼쪽으로 초기 절파풍의 조그만 언덕이라고 할까 산이라고 할까 하는 것이 보이고, 아래에 나무와 집이 있고, 오른쪽으로 다리와 배가 있고, 그 다음에 먼 산이 보이는데 아주 격이 높다.
이만한 그림이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일급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리블랜드 사람이들이 이것을 빼간 것을 보면 안목이 있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나라에는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새샘 블로그 2010. 6. 21 "양송당 김시 '동자견려도'" 참조)란 그림이 호암미술관에 있는데, 이 작품도 역시 좋다.
이 그림에는 초기 절파풍의 언덕이 있고 그 다음에 소나무와 당나귀 한 마리를 끄는 어린아이가 배치되어 있는데 좋은 그림이다.
이 그림 두 점만 보고도 결국 김시라는 사람이 중기를 대표하는 대가가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 사람의 그림 솜씨에 대해서는 다들 칭찬하고 있지만, 이 사람의 생애는 기구하다.
아버지가 김안로라고 하는 유명한 간신이었다가 권력을 남용하여 두어 번 귀양도 가고, 나중에는 사약을 받아 죽는다.
이 사람이 사약을 받아 잡혀가던 날이 김시가 14살 때인데 그가 장가가던 날이었다.
장가가던 날에 자기 아버지가 잡혀가고 곧 죽게 되니까, 그것은 말이 아닌 형편이었다.
둘째 형이 공주의 부마였지만 아무튼 집안이 엉망이 되어서, 결국은 과거도 보러가지 않고 일생을 그림 등에 몰두해서 살다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 심사가 비통했던 모양이다.
김안로는 자신이 쓴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라는 글에 고려 그림이나 기타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 집안에 아마 명적名蹟(유명한 예술작품집) 고화固畵(옛그림)도 많았던 것 같다.
집안의 명적 고화를 많이 보아서 그런지 김시의 그림은 격이 대단히 높다.
김시 그림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한림제설도>와 <동자견려도>의 두 작품이 기준작이자 대표작이다.
김시에 대해서는 그동안 생몰년이 명확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밝혀졌다.
전남대 이태호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524년에 태어나 1593년에 죽었다.
<한림제설도>는 임진왜란 몇 년 전에 그린 것인데 아마도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가보면 영모翎毛[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등 김시 그림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이 사람이 각 체體(글씨나 그림 그리는 일정한 방식이나 격식)에 다 능했기 때문에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떤 것은 확실치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에서는 김시의 그림이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
※출처: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021. 1. 2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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