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노화의 종말 3 - 노화의 주 원인은 유전체가 아닌 후성유전체다 본문
후성유전체 epigenome란 세포핵 안에 든 염색질 chromatin을 구성하는 유전체(DNA)를 말한다.
염색질은 세포에서 복제된 이중나선 DNA 가닥들이 작은 크기의 세포핵 안에서 히스톤 histone이란 실을 감아 두는 작은 도구인 실패 역할을 하는 단백질[실패 단백질]에 감기고 또 감겨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포핵 안에 든 염색체 chromosome의 원형에 해당하는 구조가 바로 염색질이다.
즉 세포분열이 일어날 때 자손세포에 들어갈 DNA를 만드는 과정에서 염색질이 변형된 유전물질이 바로 염색체다.
염색체는 염색질이 분열되기 쉽게 더 큰 규모로 감기고 또 감김으로써 형성되는 변형된 후성유전체인 것이다(위 그림 참조).
장수유전자 서투인(SIRT)이 만든 서투인(SIRT) 단백질의 기능은 어떤 유전자에 대해서는 OFF 상태로 계속 잠자고 있게 만드는 반면, 또 어떤 유전자는 ON 상태로 켜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즉 서투인 단백질의 작용으로 후성유전체가 어느 유전자를 켜고 어느 유전자를 잠재우라고 세포에게 알리면서 세포 내 구조를 총괄하는 것이다.
싱클레어 박사는 우리 몸의 유전체와 후성유전체를 그랜드피아노와 이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에 비유한다.
피아노의 건반에 해당하는 것이 유전체로서, 건반 하나하나가 유전체에 든 하나하나의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온갖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이처럼 후성유전체는 우리 DNA를 노출시키거나 단백질로 꽉 묶어서 포장하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유전자에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우리 삶이라는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유전체가 중요한 것은 후성유전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나비 애벌레는 결코 사람은 될 수는 없지만 탈바꿈 때 생기는 후성유전적 표현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나비가 될 수 있다.
사람의 경우 일란성 쌍둥이라도 늙는 속도가 서로 다른 것은 바로 후성유전적 차이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인 일란성 쌍둥이는 흡연자가 눈 밑이 더 처지고 양쪽 빰이 더 늘어지고 눈가와 입가에 주름이 더 많이 생기는데, 이런 현상은 흡연자가 더 빨리 늙는다는 실질적 증거다.
일란성 쌍둥이 연구 결과 유전자가 장수에 미치는 영향은 놀라울 만큼 낮은 비율인 10~25퍼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DNA 즉 유전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운명 즉 노화는 유전체보다는 오히려 '후성유전적 잡음 epigenetic nosie'과 같은 '후성유전체의 변화 epigenomic change'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노화의 원인이 되는 후성유전적 잡음은 대체로 DNA가 끊기는 것과 같은 세포에 심한 손상이 일어남으로써 생긴다.
이런 현상은 생식 능력을 잃은 늙은 효모세포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혼란이다.
노화의 정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늙는 이유가 바로 후성유전적 잡음이라는 것이다.
머리가 세는 이유고, 피부에 주름이 생기는 이유며, 관절이 아프기 시작하는 이유다.
나아가 줄기세포 소진과 세포 노쇠에서부터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과 끝분절(텔로미어)의 빠른 마모에 이르기까지 노화의 아홉 가지 징표 대부분이 나타나는 이유로 보고 있다.
후성유전체의 변화가 노화의 주된 이유임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는 실험실에서 제작한 늙은 효모세포 돌연변이체 mutant를 사용하였다.
이 늙은 효모세포 돌연변이체의 리보솜 DNA인 rDNA(ribosomal DNA)[리보솜을 구성하는 rRNA를 전사하는 DNA]를 확인해 본 결과 rDNA가 조각나고 꼬이고 비틀려서 형성된 'ERC'(염색체외 원형 rDNA, extrachromosomal rDNA circle)가 대량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효모세포 돌연변이체가 늙어감에 따라 많은 ERC들이 세포 안에 축적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싱클레어 박사 연구팀이 인위적으로 만든 효모세포 돌연변이체가 정말 늙은 세포였느냐 즉 노화가 일어났느냐 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적인 노화가 일어난 효모세포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효모세포 나이는 하나의 부모세포가 분열해 자손세포를 만든 횟수로 측정하는데, 대개 효모세포는 25번쯤 분열한 후 죽는다.
이렇게 25번쯤 분열한 부모세포를 찾아내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부모세포가 즉을 무렵이면 자손세포 수는 2의 25승 마리 즉 3300만 마리의 자손에 에워싸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일주일 동안 카페인 음료를 계속 들이키면서 숱하게 밤을 지샌 끝에 정상적인 늙은 세포를 충분할 만큼 모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이 늙은 효모세포들에 든 rDNA를 추출하여 확인해 보았더니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ERC가 세포에 가득 차 있었다.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ERC를 아주 젊은 효모세포에 집어넣는 실험을 시작했다.
우리의 예상이 옳다면 ERC를 주입한 젊은 효모세포는 ERC가 서투인 단백질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고, 그 결과 젊은 효모세포는 일찍 늙고, 불임이 되고, 일찍 죽게 될 것이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였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1997년 12월 저명 학술지 ≪셀 Cell≫에 게재하여 발표함으로써 전 세계 언론에 다음과 같은 소식이 실렸다.
"과학자들이 노화의 원인을 밝혀내다"
이어진 실험은 효모세포 유전체에 서투인 유전자 SIR2를 인위적으로 삽입하여 효모유전체를 안정시키고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SIR2를 넣자 효모세포에서는 ERC 생성이 억제되었고, 효소세포의 수명이 기대한 것처럼 30퍼센트가 늘어났다.
이렇게 우리의 가설은 엄밀한 검증을 견뎌 내는 듯했다.
효모에게서 불임과 노화의 최상위 근본 원인은 본질적으로 유전체의 불안정성이라는 가설이었다.
이 초기의 효모 연구 결과와 그 뒤로 10년에 걸쳐서 포유동물 세포를 탐구하고 조사한 결과들은 노화를 이해하는 방식을 완전히 혁신시켰다.
서로 별개인 양 보이는 노화의 아홉 가지 요인들을 하나의 보편적인 삶과 죽음의 통일된 모형으로 조화시킬 정보 이론이 그것이었다.
이 정보 이론은 다음과 모형으로 나타낼 수 있다.
"젊음 → 끊긴 DNA → 유전체 불안정 → DNA 포장과 유전자 조절 교란[후성유전체 교란] → 세포 정체성 상실 → 세포 노화 → 질병 → 죽음"
이 모형에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이 단계들 중 어느 한 곳에든 우리가 개입할 수 있다면 사람 수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계들 전부에 개입할 수 있다면 어떨까?
노화를 멈출 수 있을까?
이론은 검증되고 또 검증되어야 한다.
한 명이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을 통해서다.
그리고 그 목적에 비춰볼 때 나는 주변 사람들의 연구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은 특권을 계속 누렸다.
더욱이 나의 연구팀은 말 그대로 드림팀이었으며, 주변 사람들에 비해 내가 모자란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우리 실험에서 DNA가 끊김으로써 ERC가 불어나 유전체에 다시 끼워지고 서로 합쳐져 더 큰 ERC를 이루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수단백질 Sir2 단백질이 DNA 불안정성에 맞서기 위해 움직이면서 부풀어오른 늙은 효모세포는 불임이 된다.
이는 생존회로 작동의 첫 단계였다.
그리고 젊은 효모세포에 ERC를 집어넣으면 더 일찍 늙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ERC가 단지 늙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늙게 하는 원인이라는 중요한 증거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포 DNA를 인위적으로 끊은 뒤 세포 반응을 관찰한 결과 서투인이 DNA 수선을 돕기 위해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생존회로 작동의 두 번째 단계임이 드러났다.
ERC를 생성시키는 DNA 손상은 Sir2 단백질이 교배형 유전자를 떠나게 함으로써 효모를 불임으로 만들었다.
불임은 효모 노화의 한 징표였던 것이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후성유전적 잡음이었다.
효모에서 이루어진 이런 발견들이 효모보다 더 복잡한 생물들과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년이 지난 뒤였다.
초파리에게 서투인 유전자 사본을 인위적으로 집어넣자 후성유전적 잡음이 억제되면서 수명이 늘어났다.
그리고 생쥐와 사람 세포에서 끊긴 DNA 수선을 돕기 위해 서투인 단백질이 잠든(OFF) 유전자를 떠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생존회로가 사람에게도 작동한다는 사실은 2017년 서투인이 사람 rDNA를 안정시킨다는 연구결과로서 확인되었다.
2018년에는 서투인이 사람 rDNA를 안정시킴으로써 세포 노화를 막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20년 전 효모의 서투인에게서 발견한 것과 동일한 항노화 기능이다.
이런 결과들은 효모와 사람 사이에 10억 년이라는 세월이 놓여 있음에도 그 생존회로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결과들이 나올 무렵 싱클레어 박사는 후성유전적 잡음이 인간 노화의 촉매일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했다.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는 싱클레어 박사 연구팀을 이미 그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싱클레어 박사는 당분을 적게 먹인 효모세포가 더 오래 살 뿐 아니라 그런 효모의 rDNA가 유달리 압축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 결과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ERC 축적, 파국 수준으로 많아지는 DNA 끊김, 인 폭발, 불임, 사망이 현저히 늦추어졌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출처
1.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매슈 D. 러플랜트 지음, '노화의 종말', 부키, 2020.
2. 구글 관련 자료
2021. 5. 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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