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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불기심란도" "증번상촌장묵란도" 본문

글과 그림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불기심란도" "증번상촌장묵란도"

새샘 2022. 9. 28. 21:14

김정희, 불이선란도, 1853~1855년 추정, 종이에 수묵, 55.0x31.1cm, 개인(사진 출처-출처자료1)

 

완당의 좋은 그림은 뭐니뭐니해도 난초 그림이며, 그 중에서도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으뜸으로 여긴다.

흔히들 이 난초 그림을 신품神品(가장 신성한 품위)이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난초만 있다고 해서 신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완당의 화제畫題(그림의 이름 또는 제목), 글씨, 도서圖書(인신印信: 도장)—완당 도서가 또한 유명하다—, 그림이 합해져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정취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에 <불이선란도>가 유명한 것이다.

그냥 그림 하나만 달랑 있어서 유명한 것이 아니고 그 도서까지도 감상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난초 그림에 <불이선란도> 또는 <부작란도不作蘭圖>라고 붙여진 것은 김정희가 화면 왼쪽 윗부분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줄을 바꾸며 추사체로 써 내려간 제시題詩(제목으로 붙인 시)에서 연유된 것이다.

 

"난초를 안 그린 지 스무 해인데 (부작란화이십년 不作蘭畵二十年)
  우연히 그렸더니 참모습이 드러났네 (우연사출성중천 偶然寫出性中天)

  문 닫고 찾고 또 찾은 곳 (폐문멱멱심심처 閉門覓覓尋尋處)

  이게 바로 유마거사의 불이선이라네 (차시유마불이선 此是維摩不二禪)

 

  만약 누군가 강요한다면  또 구실을 만들고 (약유인강요위구실 若有人强要爲口實 )

  또한 마땅히 비야리성에 살던 유마거사의 무언으로 사양하겠네 (우당이비야무언사지 又當以毘耶無言謝之)

  만향曼香(김정희의 마지막 호)"

 

이 시와 글은 석가모니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인도의 현인 유마힐과 보살들 간의 대화를 기록한 ≪유마힐경維摩詰經≫ 중 '불이법문품不二法門品'에서 따온 것이다.

선禪을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하는 보살에게 오직 묵언默言으로 대항하여 '둘이 될 수 없는 선 즉 불이선不二禪'의 참뜻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다.

 

그 아래 오른쪽 화제는 오른쪽에 왼쪽으로 다음과 같이 써 내려갔다.

 

"초서와 예서를 기자의 법으로 그렸으니 (이초예기자지법위지 以草隸奇字之法爲之)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으며 어찌 좋아하겠는가(세인나득지 나득호지야 世人那得知 那得好之也)
  구경(김정희의 호)이 또 쓰다 (구경 우제 謳竟 又題)"

 

왼쪽 아래 화제는 그 위에 있는 화제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내려갔다.

 

"애초 달준에게 주려고 그린 것이다 (시위달준방필 始爲達俊放筆)

  이런 그림은 다만 하나가 있을 뿐이지 둘은 있을 수 없다 (지가유일 불가유이 只可有一 不可有二)

  선객노인仙客老仁(김정희의 호)"

 

"오소산이 이 그림을 보고 얼른 뺏어가려 하는 것을 보니 우습도다 (오소산견이 호탈가소 吳小山見而 豪奪可笑)"

 

<불이선란도>에는 무려 15개의 도서가 찍혀있으며, 그 중 추사秋史, 고연재古硏齋, 김정희인金正喜印, 묵장墨莊, 낙문유사樂文儒士 등 5개는 김정희가 직접 찍은 것이며, 나머지 10개는 소장자와 관람자 등 세 사람이 찍은 것이다.

장택상의 도서는 신품神品, 물락속안勿落俗眼, 다항서옥서화금석진상茶航書屋書畵金石珍賞, 그리고 불이선실不二禪室 등 4개, 손재형은 연경제硏經濟, 소전감상서화素荃鑑藏書畵, 봉래제일선관蓬萊第一僊觀, 소도원선관주인인小挑源僊錧主人印 등 4개, 김석준은 소당小棠과 석준사인奭準私印 등 2개다.

 

 

김정희, 불기심란도, 1830년대 후반, 종이에 수묵, 22.8x85.0cm, 개인(사진 출처-출처자료1)

 

완당이 노년의 과천생활 중 아들 수산須山 김상우金商佑에게 그려준 그림인  <불기심란도不欺心蘭圖>예술을 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림도 좋지만 그림 옆의 글씨와 글이 삼위일체가 되어서 좋다. 

이렇게 완당의 정말 좋은 작품들은 그림, 글씨, 글이 삼위일체가 되어 있다.

 

선 몇 개로 그려낸 난과 독특한 붓놀림으로 써낸 글씨는 파격적이면서 개성 넘치는 추사체의 마지막 단계임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추사의 완숙미를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화면 오른쪽 화제에서는 예술인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난초를 그릴 때에는 마땅히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사란역당자 불기심시 寫蘭亦當自 不欺心始)

  잎 하나 꽃술 하나를 그릴 때도 마음속으로 반성하여 (일별엽일점판 내성불구 一撇葉一點瓣 內省不疚)

  부끄러움이 없게 된 후에 남에게 보여야 한다 (가이시인 可以示人)

  수많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있고 수많은 사람이 손으로 지적하고 있으니 (십목소시 십수소지 十目所視 十手所指) 

  이 또한 두렵지 아니한가 (기엄호 其嚴乎)

  난초를 그리는 작은 재주라도 (수차소예 雖此小藝)

  반드시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서 시작해야 (필자성의 정심중래 必自誠意 正心中來)

  비로소 손을 댈 수 있는 기본을 알게 될 것이다 (시득위 하수종지 始得爲下手宗旨)

  상우에게, 찬제(김정희의 호)가 그리고 쓰다 (서시우아(찬제) 병제 書示佑兒(羼提)並題)"

 

이 화제를 통해 완당은 아들에게 '불기심란'이란 난초를 그릴 때는 먼저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데서 출발해야 하며,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마음속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로 그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김정희, 증번상촌장묵란도, 1848년, 종이에 수묵, 32.2x41.8cm, 개인(사진 출처-출처자료7)

 

<증번상촌장묵란도贈樊上村庄墨蘭圖>는 완당이 번상촌장樊上村庄[번리樊里에 있던 권돈인의 별서別墅(농사 짓기 위한 지은 별장)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에서 1848년 절친 권돈인權敦仁에게 그려준 난초 그림이다.

 

완당이 권돈인에게 그려준 그림에는 원래 난초와 양쪽 아래에 찍힌 낙관이 전부였는데, 이 그림을 받아든 권돈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신의 흥취에 겨워 왼쪽 여백에다 아랫글을 써 넣었고,  '이계彛谿'라는 주문방형朱文方形(붉은글씨로 찍히는 네모 도장)의 두인頭印과 성명인姓名印 '권돈인인權敦仁印'을 찍었다.

 

"난초꽃과 난초잎이 산중 서재에 있는데 (난화난엽재산방 蘭花蘭葉在山房)
  어디에선가 부는 가을바람이 사람의 애를 태우네 (하처추풍인단복 何處秋風人斷腹
  바람과 서리에 쉽사리 꺾인다면 (약도풍상이최절 若道風霜易摧折)

  어찌 오래도록 산중 서재에 향기를 남기겠는가 (산방나득장유향 山房那得長留香

  1848년 한가위날 번상촌장 제(무신 중추 번상제 戊申 仲秋 樊上題)"

 

한편 이 그림이 완당의 작품이 아닌 모방품이란 의견도 있는데, 그 근거로 다음 이유를 들고 있다.

 

1. 난초 잎과 난초 꽃 모두가 많이 그려진 다엽다화란多葉多花蘭의 구도는 완당의 난초 그림에서 볼 수 없다는 점.

2. 완당이 그려서 권돈인에게 진정 주었다면 자신의 추사체로 시를 써 주었지, 이 그림에서처럼 한쪽 맨 구석 난초 잎 끝 아래 추사체 아닌 글씨체로 '번상촌장 균공 樊上邨庄 勻共(번상촌장 주인 권돈인에게 공손하게 바침)'이라 써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

3. '번상촌장 균공' 옆에 찍힌 '正喜' 인이 <완당인보阮堂印譜>에 수록된 '正喜' 인이 아닌 가짜 인장일 가능성.

 

※출처

1. 이용희,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작란도(불이선란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4528

3. https://sck1130.tistory.com/1703 (불이선란도)

4.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1002 (불기심란도)

5.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wh765&logNo=221781265027  

(불기심란도)

6.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donodonsu&logNo=100006465251(증번상촌장묵란도)

7. https://m.cafe.daum.net/kjcultureteacher/5r3Q/942? (증번상촌장묵란도)

8. 구글 관련 자료

 

2022. 9. 28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