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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서울에서 발굴된 유적들 15: 강서구 지역

새샘 2022. 11. 5. 16:18

 

<2000년 이후 발굴조사 목록-강서구 지역>

 

 

강서구 지역에서는 먼저, 2012년과 2013년에 남부순환로-오정대로간 도로 개설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외발산동 유적 발굴조사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2년에는 강서구 외발산동과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경계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으며, 이곳은 해발 21~29m의 나지막한 구릉지역인데 밭 일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연산림지역으로서 원래 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유적은 해발 75m의 수명산壽命山(밥주발周鉢을 엎어놓은 모습이라서 발산鉢山이라고도 한다)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산능선의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석영으로 만든 몸돌·격지(몸돌에서 떼어 낸 돌 조각)·찍개·긁개·밀개 등이 출토된 2개의 구석기 유물층이 조사되었고, 신석기시대의 구덩이 유구 2기, 조선시대 널무덤 1기, 회곽묘灰槨墓[무덤구덩이(묘광墓壙) 안에 관과 곽을 보호하기 위한 석회층을 만들어 관과 곽을 안치한 묘] 1기 및 시대를 알 수 없는 구덩이 유구 등 모두 12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특히 발굴단은 확인된 구석기 유물층이 주변 파주 운정지구와 김포 장기지구 등 한강 하류에 분포하는 구석기 유적과 퇴적층 및 유적의 형성시기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이고, 신석기시대 구덩이 유구는 이 지역의 신석기시대 문화상을 이해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았다.

 

 

(위)발굴 당시 양천고성 터 성벽 모습과 (아래)지금의 양천고성 내부 모습(사진 출처-출처자료1)

2013년과 2014년에는 가양동에 있는 양천고성陽川古城 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양천고성 터는 현재 궁산宮山근린공원 안에 위치한다.

1992년 이미 사적 제372호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굴 당시에는 여러 시설물이 들어서고 주민들이 근린공원으로 이용하면서 얼마 남지 않는 형태마저 보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양천고성은 궁산의 정상 부분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산 정상부에 띠(테)를 두르듯이 축조된 산성)이다.

산성 북쪽에는 한강과 올림픽대로가 남동에서 북서로 이어져있고, 정상부를 중심으로 올림픽대로와 접해 있는 북동쪽과 동쪽 일부 구간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다른 곳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다.

양천고성의 길이는 약 380m, 면적은 약 6,775평방미터로 추정된다.

 

고성古城에 대한 조사는 동-남 구간 약 110m와 남-서 구간 약 77m에서 성벽의 잔존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제1차 발굴조사에서는 남벽 구간에서 성벽의 체성부體城部(성벽의 몸체 부분)와 성城가퀴(치성부雉城部: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수축 및 개축했던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2차 발굴조사에서는 성가퀴의 규모, 평면 형태, 축조방법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제3차 발굴조사에서는 서벽의 잔존 형태와 성벽의 수축 및 개축 부분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사지역의 남쪽에서 길이 2.3m, 너비 7.7m, 면적 17.71평방미터의 성가퀴가 확인되었는데, 축조와 관련된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 명확한 축조시기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발굴단은 이번 발굴조사가 성벽의 잔존 유무 및 성가퀴의 대략적인 형태와 축조 양상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번 자료만을 가지고 양천고성의 전체 구조와 성격, 특성 등을 논의하기에는 아직 이른 단계로 보았다.

아울러 성벽은 4세기부터 9세기에 이르는 광범위한 시기에 축조된 성곽들과 비슷하고, 성가퀴는 6세기 후반부터 8세기 후반에 축조된 성가퀴와 비슷한 것으로 추측하였다.

보다 명확한 성곽 축조시기는 앞으로 추가 발굴을 통해야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출처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의 발굴현장'(역사공간,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2. 11. 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