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인류의 진화 이끈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본문
3년 가까이 끌어온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우리는 다시 여행을 꿈꾼다.
인류 탄생 이래 인간은 끊임없이 여행을 해왔기 때문에 이런 꿈은 어쩌면 당연하다.
여행을 떠나려는 욕망은 태곳적 인류가 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있어 왔던 가장 원초적 본능이다.
○아프리카 떠나 세계로 간 인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이 네안데르탈인(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Homo neanderthalensis)을 연구한 스웨덴의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 Svante Erik Pääbo(1955~ )에게 돌아갈 정도로 인류의 기원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연구가 쏟아지는 고인류학계에서 한 가지 공통된 의견은 바로 인류는 몇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를 떠나는 장대한 여행을 거쳐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고 보는 것이다.
가장 먼저 180만 년 전 곧선 사람(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넘어 근동을 거쳐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두 번째, 6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조상인 하이델베르크인(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Homo heidelbergensis)들이 아프리카를 나와 유럽과 아시아로 퍼졌다.
마지막으로 현생 인류인 슬기 사람(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이 10만 년 전(20만 년 전이란 주장도 있다)에 아프리카를 나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인류인 슬기슬기 사람(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Homo sapiens sapiens)은 마지막 남은 미개척지인 신대륙 아메리카마저도 1만 7천 년 전에 베링해를 건너 정착하여 지금의 인류세를 이루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새 연구로 복잡하고 말도 많은 인류의 기원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끊임없어 이동하면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 Gabriel Marcel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인간(걷는 사람)'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류의 기원은 바로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목숨을 걸고 이동한 사람들의 여정이다.
그렇게 새롭게 자신의 터전을 찾아서 정착한 인류만이 생존했다.
'역마살驛馬煞(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이라는 단어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을 안 좋게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빙하기가 끝나고 농사를 짓는 마을이 발달하면서 생긴 관습이다.
목숨을 걸고 떠날 수 있었던 인류의 용기가 우리의 진화를 선도했다.
○신라에 온 카자흐 왕의 보검
근대 이후 관광이 발달하면서 여행은 낭만과 힐링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여행은 목숨을 건 도전이었다.
그것은 국가가 파견하는 사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역사에서도 발해가 일본으로 파견하는 사신은 험난한 동해를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가 부지기수였다.
발해는 8세기에 100년간 16회의 사신을 보냈는데 그중 절반인 8회는 표류하거나 난파를 당했다.
배가 전복되어 40여 명이 수장되거나 심지어 잘못 기착해서 일본 선주민이던 아이누인 アイヌ Ainu들에게 사절단 전체가 살해당할 정도였다.
어디 그뿐인가. 실크로드를 개척하던 한나라의 장건張騫(?~서기전 114)도 흉노에게 잡혀 10년 넘게 묶여있었다.
그리스 최초의 서사문학인 오디세이나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모험으로 가득 찬 이야기처럼 여행은 곧바로 기약 없는 길이었다.
국가 사절단이 이럴 정도인데 하물며 이름 없는 수많은 여행가들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인간의 여행에 대한 욕망은 죽음의 공포를 넘었으니, 우리는 끊임없이 이동했고 또 교류했다.
당나라 현장玄奘(602~664), 이탈리아 마르코 폴로 Marco Polo(1254?~1324), 신라 혜초慧超/惠超(704~787)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행가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은 이름 대신 그들이 전해준 유물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유라시아 전역에서는 머나먼 지역에서 온 유물들이 뜬금없이 발견되곤 한다.
얼마 전 크림반도에서는 3천 년 전 중국 주나라 전사가 쓰던 칼과 창이 나왔다.
또한 트로이 유적에서는 만주 일대에서 사용된 것과 똑같은 말의 재갈과 청동무기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름이 남아있지 않았을 뿐 몇 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끊임없이 여행했고 새로운 물건을 전해주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신라 고분에서는 멀리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왕들만 쓸 수 있었던 황금보검이 나왔다.
직접 사람이 다녀오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유물이다.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보이지 않게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다.
○죽음은 영원을 위한 여행의 시작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Sumer 문화에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길가메시 Gilgamesh'가 전해진다.
실제로 4800년 전에 수메르의 도시 중 하나인 우루크 Uruk를 다스리던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아 떠난 이야기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누리던 길가메시는 절친인 엔키두 Enkidu의 죽음을 목도하고 영생을 얻고자 여행을 떠났다.
물론 그의 노력은 여행 중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
흥미롭게도 길가메시뿐만 아니라 그의 이야기가 새겨진 설형문자 점토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1991년 이라크 걸프전 과정에서 이라크 박물관이 소장하던 길가메시의 점토판이 도난 당해 수많은 나라를 거친 끝에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거쳐 이라크로 반환되었다.
고향을 떠난 지 30년 만으로, 이 점토판은 길가메시 못지않은 역정을 거친 셈이다.
영생을 찾아가는 여행은 몇 천 년 동안 인간의 머릿속에 함께 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는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주인공이 메텔이라는 여성의 도움을 받아 영생을 찾아 떠나는 내용이다.
그 원작은 미야자와 겐지(궁택현치宮沢賢治)(1896~1933)의 소설 '은하철도의 밤'으로, 사랑하는 동생의 요절이 동기가 되었다.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공포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지혜가 바로 영생을 찾아떠나는 여행이었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하는 수많은 무덤들은 궁극적으로 죽은 사람이 영원을 위한 여행을 떠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쉽게 지나치는 우리 주변의 유물에도 영원으로 떠나는 여행의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각화 울산 울주대 반구대에도 영원을 향해 배를 타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가장 높은 곳, 태양이 있을 법한 위치에 배를 탄 사람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렇게 태양을 향해 배를 타고 떠나는 암각화는 북유럽과 시베리아의 바닷가 암각화에서 흔히 발견된다.
고래잡이를 하던 사람들답게 저승으로 떠나는 길을 머나먼 바다 끝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묘사한 것이다.
유목민은 사람이 죽으면 특이하게 옆으로 구부린 채 묻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옆에 함께 묻힌 말의 뼈를 통해 밝혀졌다.
같이 묻은 말은 머리에 뿔을 단 하늘의 말 즉 천마天馬이다.
망자는 기마 자세로 묻혔는데, 이는 죽어서 천마를 타고 저승으로 떠나라는 바램인 것이다.
인류는 죽음을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으로 생각하며 그 공포심을 달래 왔으니, 여행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받은 셈이다.
인류 진화 과정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났기에 지금 인류가 살아남은 것이다.
여행의 본능은 우리 DNA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셈이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은 여행에 대한 인간의 진화를 선도했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자신의 영생과 낙원을 꿈꾸어왔다.
여행을 꿈꾸는 것, 그것은 인간의 특권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의 공포를 넘어서 다시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
여행에 대한 갈망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출처
1. 동아일보 2022. 10. 28 기사, '인류의 진화 이끈 인간의 여행 본능[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1027/116194225/1
2. 새샘 TSTORY 2020. 10. 6 글,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https://micropsjj.tistory.com/17039978
3. 구글 관련자료
2022. 11. 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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