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북산 김수철 "송계한담도" "야정대운도" 본문
조선 말기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에게서 시작된 스케치와 같은 간단한 구도, 간략담백한 표현, 활달한 필묵,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담청과 담갈색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설채設彩(먹으로 바탕을 그린 다음 색을 칠함)로 표현되는솔이지법率易之法 화풍의 문인화(남종화)로 평가되는 학산파는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이 완성하면서 끝이 난다.
자가 사익士益, 사앙士盎, 호가 북산인 김수철은 조선 말기 화단을 주도한 중인 문인서화가들과의 교유 관계로 보아 중인 신분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화가로서, 산수와 화초花草(화훼花卉: 관상용 식물) 그림을 잘 그렸다.
산수는 직선 위주의 짧은 윤곽선으로 대상을 간략하게 묘사하고 담채와 발묵潑墨(먹물이 번져 퍼지게 그리는 기법)을 적극적으로 구사했는데, 이는 중국 원나라의 예찬倪瓚과 황공망黃公望의 화법을 이상으로 삼았던 당시 회화관과 상통한다.
북산의 그림 가운데 이런 솔이지법 화풍이 가장 뚜렷한 작품은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이다.
이 산수화는 바위가 있는 시냇가에 서 있는 몇 그루 안되는 소나무, 그리고 소나무 밑에서 한담을 즐기고 있는 선비들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송계한담도>를 앞글에서 소개한 학산파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학산 윤제홍의 <송하관수도>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유사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가늘고 춤추는 듯한 모습의 소나무, 간략하게 묘사된 인물 모습, 푸른색이 감도는 강한 설채設彩(먹으로 바탕을 그린 다음 색을 칠함), 여기저기 일정하지 않게 흩어져 화면에 엑센트를 주는 묵점墨點(먹으로 찍은 점), 수채화처럼 옅은 채색, 간략하고 담백한 표현과 구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그림의 소나무는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에서 절의節義(절개와 의리)나 지조의 상징물로 그린 소나무와는 전혀 달리, 자유분방한 필선을 구사해 묘사함으로써 참신한 회화적 멋이 깃들어 있다.
소나무 아래에서 서거나 앉은 자세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섯 선비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인간'이란 느낌을 주지 않는다.
흐르는 물과 같고, 소나무와도 같다.
사람도 소나무와 냇물과 같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다.
옛 화가들의 자연회귀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송계한담도>는 자연과 인간이 일체된 세계를 그린 것이며, 세속을 떠나 자연에 회귀한 은자隱者들의 세계를 그린 것이다.
마음을 같이 하는 벗들이 모여 소나무 숲이나 계곡 등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는 풍속은 조선시대 문인과 선비들 사이에서 흔히 있었던 일이다.
그들은 송림 사이를 스치는 솔바람 소리를 악보도 없고 곡조도 없는 무현금無絃琴 소리로 삼고, 세속의 일을 잊어버리고 화두話頭와 같은 한담으로 소일하는 것을 참다운 낙으로 여겼다.
소나무와 관계되는 말 중에는 문학적인 여운을 가진 단어들이 많다.
예를 들어 송간松間(솔 밭 사이), 송성松聲(소나무에서 이는 바람소리), 송영松影(솔 그림자), 송풍松風(솔바람), 송하松下(소나무 아래), 송단松壇(소나무가 서 있는 낮은 언덕) 등이 그것이다.
이 단어들은 주로 탈속과 풍류의 의미를 담은 말로 쓰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송계한담도> 는 바로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야정대운도野亭待雲圖>는 화면 오른쪽 위에 '들판 정자에서 구름을 기다린다'라는 뜻의 '야정대운'이란 그림 제목이 적힌 큰 폭의 산수화로서, 이 그림도 학산 윤제홍의 <월하우배적청도月下牛背笛聽圖>와 비슷한 그림이다.
구도는 화면 왼쪽에 높은 주산을, 오른쪽에 낮은 산을 배치하고 있다.
가까이 보이는 근경近景에서 중간의 중경中景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안개로 늘어선 나무숲을 감추었고, 오른쪽 아래는 안개와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비워두었다.
산의 모양을 둥글둥글하게 겹쳐 묵점을 찍어 활기를 주었으며, 산의 중첩된 부분은 약간의 음영만을 가함으로써 평면적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간결하고도 청신한 분위기의 북산풍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독특한 그림이다.
※출처
1. 이용희,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https://news.koreadaily.com/2004/07/20/society/opinion/302177.html (송계한담도)
3. 조미경 석사학위 논문, 북산 김수철의 회화 연구,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2004
(10000193.pdf (riss4u.net)) (송계한담도, 계산적적도)
4. 구글 관련 자료
2022. 11. 25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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