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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5 - 고로쇠나무

새샘 2024. 4. 4. 14:57

'수액'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과 단풍나무속에 속하는 갈잎 큰키나무다.
나무 이름에 단풍이란 말이 들어있지 않은 고로쇠나무지만 손 모양으로 갈라진 잎사귀, 잠자리 날개 모양의 열매, 그리고 가을이면 황색 또는 황갈색 단풍잎으로 물드는 등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단풍나무의 특징을 보인다.
 
 

고로쇠나무 잎과 열매 (사진 출처-출처자료1)

 
고로쇠나무는 '고로쇠단풍나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나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나무가 단풍나무임을 알려줄 더 구체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단풍나무' 하면 잎이 여덟이나 아홉 또는 그 이상으로 깊이 갈라진 것을 생각하게 된다.
단풍나무는 그 종류가 많고 잎의 생김새도 다양한다.
고로쇠나무 계통의 잎은 대체로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데, 깊게 갈라지지 않고 비교적 얕다.
잎 모양이 흔히 그림으로 그리는 별 모양 같으며,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어서 무척 단순한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해 다른 단풍나무 잎들은 그 구도가 다소 복잡한 느낌이다.
 
 

고로쇠나무 꽃(사진 출처-https://enjoyaudio.kr/zbxe/index.php?mid=freeboard&document_srl=12924620)

 
5월에 피는 고로쇠나무의 연한 황록색 꽃은 편평꽃차례(산방화서繖房花序)를 이룬다. 


로쇠나무는 우리나라에 나는 단풍나무류 중 가장 높게 그리고 굵게 자라는 수종이다.
큰 나무는 높이가 20m, 줄기 지름은 50~60cm에 이른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 전역뿐 아니라 일본, 만주, 중국 온대 지방, 아무르 지방, 사할린 등 넓은 면적에 걸쳐 자라고 있다.
 
고로쇠나무는 비옥하고 깊은 땅을 좋아하고, 골짜기나 근처 산허리에 잘 보이며, 자라는 속도 또한 빠르다.
햇볕을 좋아하는 나무(양수陽樹)이며, 외관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어린 잎은 먹기도 하고 차의 원료로 쓰기도 한다.
수액은 약으로 쓰이는데,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수종으로는 캐나다 국기에 그려진 설탕단풍(사탕단풍, sugar maple) 다음으로 높은 당분을 함유하고 있다.
가구재, 기구재, 건축재 등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단풍나무 목재다.
 
고로쇠나무에는 몇 가지 변종이 있다.
잎 뒤에 갈색 털이 나 있는 것을 '털고로쇠'라 하고, 날개열매(시과翅果)의 벌어지는 각도가 넓어 수평에 가깝고 잎이 대체로 일곱 내지 아홉 갈래로 갈라지는 것을 '왕고로쇠'라고 한다.
 
고로쇠나무는 열매가 비교적 많이 달리고 씨의 발아율도 낮진 않지만 싹이 트는데 많은 날이 걸린다.
그래서인지 자연림에서 어린 고로쇠나무는 찾기 힘들고, 있다 하더라도 그 개체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고로쇠나무 숲 조림을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선암사 주변의 고로쇠나무 숲에는 지피식생地被植生(지표를 낮게 덮는 식물)인 조릿대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고로쇠나무의 번식에 크게 지장을 주고 있다. 
고로쇠 수액 생산과 그 문화를 유지한다는 면에서 고로쇠나무의 큰 묘목을 심고 경쟁관계에 있는 조릿대를 억제해주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나무 이름

 

고로쇠나무 숲 (사진 출처-출처자료1)

 
고로쇠나무라는 이름의 어원은 '뼈에 좋다는 나무'를 뜻하는 골리수骨利樹다.

중국어는 산단풍나무란 뜻의 산척수山樹, 영어는 mono maple(단일단풍) 또는 painted maple(유색단풍), 그리고 학명은 Acer pictum(아체르 픽툼) var. mono로 표기한다.

 
단풍나무를 한자로는 '단풍나무 풍楓'이나 '단풍나무 척槭'으로 쓰는데, 사전에 보면 이 두 단어는 같은 종류지만 그 모양이 다르다고 했다.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이 없어서 알 도리가 없으나, '풍楓'은 열매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단풍나무 종류는 열매에 날개가 붙어 있어서 바람을 타도록 되어 있으니 수긍이 간다.
 
중국에서는 풍향楓香나무의 수지樹脂를 백교향白膠香 또는 풍향지楓香脂라고 해서 귀중한 약재로 쓰고 있는데, 이때 풍향나무란 '스위트 검 sweet gum'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간혹 심고 있는 '중국풍나무'다.
미국의 일반 수종 '스위트 검'은 학명이 리퀴담바 Liquidambar인 귀중한 목재 자원이며,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아주 잘 자라서 주목을 받고 있는 '미국단풍나무'가 되었다. 
이들 나무 이름에 든 '풍'자가 한자로 楓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거의 틀림없을 것으로 보인다.
 
≪훈몽자회訓夢字會≫를 보면 '신나무 풍楓'이라 했고, 일본어를 풀이한 ≪왜어유해倭語類解≫에도 신나무 풍과 단풍丹楓을 '모미지'로 나타내고 있으니, 단풍나무에 楓 자를 적용해도 무방할 것 같다.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楓이 단풍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했고, 또 "≪본초本草≫와 ≪화경花鏡≫ 등 여러 책을 살펴보았더니 향기가 나는 나무이고 그 열매는 크기가 오리알만 하다. 이 열매를 태워서 향을 만드는데 그 기름을 백교향이라 한다"라고 했다.
정약용의 이 기록은 자가 분명히 '스위트 검'임을 말해준다.
그는 "우리나라의 단풍나무楓는 키가 작고 기름도 간직하지 않는다. 다만 강진에 귀양살할 때 어떤 산장에서 몇 그루의 단풍나무를 보니, 높이와 크기가 구름에 닿아 가히 기둥이나 들보를 만들 만한 것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생각컨대 고로쇠나무라고 추측된다.
요컨대 '楓' 자는 단풍나무를 뜻하기도 하고 스위트 검을 뜻하기도 하므로 우리는 조심해서 의 뜻을 살펴서 해석해야겠다.
 
한편 단풍나무에 '뉴杻' 자를 쓰기도 한다.
껍질이 질겨서 우근자牛筋子라고도 하는 '뉴'가 단풍나무를 뜻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단풍나무를 나타내는 한자를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단풍나무 종류를 '카에데かえで(와수蛙手, 풍楓)'와 '모미지(홍엽紅葉, 척槭)'로 구별하고 있다.
하지만 식물학적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잎 모양으로 구분해서 부르는 것일 뿐이다.
'카에데'는 잎이 얕게 갈라지는 고로쇠나무 등에 적용되는 이름으로, 잎 모양의 개구리 손(개구리 와蛙, 손 수手)과 닮았다고 해서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카에데는 '개구리 손'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따라서 고로쇠나무에는 카에데를 뜻하는 풍 자가 적용될 수 있다.
모미지라는 것은 가을에 드는 단풍이 아름답고 잎이 여러 갈래로 깊게 갈라지는 나무를 말한다.
흔히 공원이나 뜰에 심은 것들이 모미지 종류로서 척 자가 적용되고 있다.
들은 홍엽을 그대로 단풍나무라는 뜻의 '모미지'라 읽는다.
따라서 카에데는 모미지만큼 가을 단풍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뜻이 은근히 담겨 있다.
 
 

수액 채취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사진 출처-출처자료1)

 

고로쇠나무의 수액 채취는 경칩 전후로 약 일주일이 가장 좋고, 그 사이에 얻어진 것이 약효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이 기간 동안에만 수액을 채취했으나, 지금은 2월 20일쯤부터 3월 15일까지 약 한 달 동안에 걸쳐 채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이라도 날마다 수액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후 조건에 따라 수액 유출이 안 되는 날이 많고 실제로 수액이 나오는 날은 불과 5~6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고로쇠나무 수액을 약수藥水 또는 골리수骨利水(骨理水)라고도 부르는데, 특히 골격을 튼튼하게 하는 효험이 있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허약 체질, 신경통, 수술한 뒤, 위장병, 치질 등에도 좋고, 말하자면 만병통치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구름이 많이 낀 날, 눈 또는 비가 오는 날, 바람이 부는 날, 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거나 영상이라 하더라도 1~2℃쯤 되는 날에는 수액이 흘러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수액이 흘러내리기 알맞은 조건은 밤 기온이 -2~-5℃, 낮 기온이 5~8℃쯤 되며 바람이 없고 청명한 날씨이다.

 
수액이 흘러내리는 이유는 고로쇠나무 줄기 안의 압력(수간압樹幹壓) 변화 때문이다.
밤중에 기온이 내려가면 몸통줄기(수체樹體) 안쪽에 수축이 일어나 마이너스 압력이 생기고, 나무뿌리는 땅속에 있는 수분을 흡수해서 줄기 안으로 보내려고 하는 힘을 받게 된다.
밤중에 물을 빨아 줄기 속을 채우고, 그 뒤 낮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고 나무줄기가 햇볕을 받아 나무의 체온이 올라가면, 줄기 안에 있는 수분과 공기(이산화탄소)가 팽창해서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때 줄기껍질에 상처를 받으면 상처를 통해서 수액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나무줄기의 지름이 30cm만 넘으면 수액 채취 대상이 되며, 한 나무에서 약 7리터의 수액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무에 따라 그 차이는 심하다.

수액은 색깔이 거의 없고 맛이 담담하지만, 주성분이 설탕(1~1.5%)이어서 미약한 감미가 있고 약간의 향기가 난닌다.
산도 7 정도의 알칼리성 음료인 수액에 만병통치의 효험이 있다는 말에 사람들이 다투어 구입해 마시게 되면서 요즘은 이를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수액을 채취하여 마실 수 나무는 고로쇠나무를 비롯하여 거제수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삼나무, 대나무, 박달나무, 층층나무, 헛개나무, 노각나무, 서어나무, 피나무, 머루덩굴, 다래덩굴, 으름덩굴 등이다.
 
 

한시漢詩 속의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단풍(사진 출처- https://tnknam.tistory.com/874?category=1269667 )

 
단풍나무 잎은 가을 서리를 맞고 아름다워진다.
그래서 서리 맞은 잎이라는 뜻의 상엽霜葉은 곧 단풍을 가리킨다.
"설악산 가는 길에 개골산 중을 만나 (설악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금강산에서 온 중을 만났기에)
중에게 물은 말이 풍악이 어떻더니 (중에게 금강산이 어떠하더냐고 물었더니)
이 사이 연連하여 서리 치니  때 맞았다 하더라 (요즈음 잇따라 서리가 내려 한창 단풍이 아름다운 좋은 때를 만났다고 하더라)"
는 시에서도 서리를 맞은 잎이 강조되고 있다.
'상엽이 봄꽃보다도 더 붉더라'는 한시의 구절도 그러하다.
또 "서리 맞은 단풍을 한없이 바라보고 (포간상후풍飽看霜後楓)"라든가, "붉은 단풍잎이 진달래와 같더라 (홍엽여척촉紅葉如躑躅)"는 한시도 단풍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리 맞은 단풍에 길 가는 나그네의 수심을 담아 부른 시로는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가 쓴 <풍교야박楓橋夜泊 (풍교에서의 하룻밤)>이 유명하다.
 
"월락오제상만천月落烏啼霜滿天 (달이 지고 까마귀 울어 서리는 온 천지에 가득한데)
강풍어화대수면江楓漁火對愁眠 (강가의 단풍과 고깃배의 불에 나그네 수심이 더해지네)
고소성외한산사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 밖에 있는 한산사에서 울리는)
야반종성도객선夜半鐘聲到客船 (밤중 종소리가 나그네가 탄 배에 이르는구나)"
 
서리가 천지를 메운 가운데 단풍이 아름답다는 이 시처럼, 서리와 단풍은 시와 노래에 함께 나타나곤 한다.
이곳에서 말하는 풍楓 자가 꼭 단풍나무겠는가 하는 의문도 있다.
중국 풍향수(스위트 검)도 서리를 맞으면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기 때문이다.
 

단풍은 가을의 상징이다.

그 화려한 아름다움 속에는 흘러가는 계절에 따른 쓸쓸함도 간직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욕불자문영원객欲拂紫門迎遠客 (사립문을 열고 뜰을 쓸어 먼 곳에서 오는 손님을 맞이하려는데)
청태황엽만빈가靑苔黃葉滿貧家 (푸른 이끼와 단풍잎이 가난한 집안에 가득하다)"
 
단풍을 가난한 선비의 아름다운 동반자로 보아 낙엽이 뜰을 채웠는데 그 붉음을 쓸어내지 않는다는 백거이白居易의 시 <낙엽만계홍불소落葉滿階紅不掃>는 자연을 몹시 사랑하는 품위 있는 인간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시 <비파행琵琶行>에서 "일야임상엽진홍一夜林霜葉盡紅 (한밤 숲이 서리를 맞아 잎이 모조리 단풍으로 변한다)"하고는 이어서 황홀한 거문고의 음률을 묘사한 것은 인간의 심정을 울리고도 남는다.

이처럼 단풍은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을 길러주었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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