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불에 깃든 황홀과 허무 본문
"만일 네가 먼저 잿더미로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니체 Nietzsche,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가운데서-
○불의 사용과 인류의 진화
1991년 11월, 록스타 rockstar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사망 이후 그의 집안은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를 믿는 파르시 Parsi(인도에 거주하는 조로아스터교 신도를 가리키는 말로, 페르시아 사람이란 뜻)라는 것이 알려졌다.
전통적인 조로아스터교의 경우 조장鳥葬이 원칙이다.
시신을 잘게 해체해서 독수리가 쪼아 먹은 뒤 남은 뼈를 항아리에 담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영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고 교회에서 조로아스터교 사제가 주재하는 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 사제는 머큐리의 장례식 전 과정을 고대 아베스타어 Avestan(조로아스터교 경전 아베스타에 사용된 언어)로 진행했다고 한다.
장례식 후에 그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유골은 지금도 어딘가에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은 에이즈 AIDS라는 질병과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에 대한 관심도 증폭시켰다.
서기전 8세기 무렵 조로아스터 Zoroaster(본명은 스피타마 자라투스트라 Spitama Zarathushtra)에 의해 페르시아 Persia에서 널리 퍼진 이 종교는 불을 믿는 종교라는 뜻의 배화교拜火敎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조로아스터교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페르시아 제국 때인 서기전 7세기 무렵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세상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설명하고 불을 세상을 정화시키는 주요한 요소로 여긴다.
지금도 조로아스터교는 프레디 머큐리의 가족이 속한 인도의 파르시들을 중심으로 남아 있다.
사실 조로아스터교는 추운 밤을 불에 의지해서 지내야 하는 초원의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종교였다.
불을 숭배하는 흔적은 유목문화의 등장과 함께 초원 곳곳에 흔히 보인다.
실제로 조로아스터교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인 서기전 3000년 무렵부터 불을 숭배한 흔적이 투르크메니스탄 Turkmenistan의 고누르-테페 Gonur-Tepe 유적(투르크메니스탄에서 발견된 고대인들의 도시로서, 최초의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 사원이 발견된 것으로 유명)에서 발견되었다.
고누르-테페의 신전 한가운데에서 제단을 설치하고 불씨를 담았던 그릇이 출토된 것이다.
추운 초원의 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불이 필수였고, 타오르는 불 속에서 사람들은 절대자를 생각했던 것이다.
고누르-테페를 발견한 소련의 고고학자 사리아니디 Victor Sarianidi는 기존에 알려진 조로아스터교보다 훨씬 앞서는 흔적이 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다.
서방의 고고학자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최근 사리아니디의 주장을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가 중국 신장(신강新疆) 타슈쿠르간(타쉬쿠르간) Tashkurgan에서 발굴되었다.
서기전 2500년에 만들어진 타슈쿠르간의 무덤에서도 시신의 바로 옆에 불씨를 담은 그릇이 출토된 것이다.
조로아스터교가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에서 기원했다는 사리아니디의 통찰력이 증명된 것이다.
실크로드의 3대 종교―조로아스터교, 마니교摩尼敎 Manichaeism, 네스토리우스교 Nestorianism(경교景敎)― 가운데 불을 숭배하던 조로아스터교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불을 숭배하는 오랜 전통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조로아스터교가 가지고 있는 고고학적 의미 그리고 거기에 담긴 불의 상징은 이제까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조로아스터교의 교주 자라투스트라를 세상이 널리 알려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때문이다.
실제로 니체의 이 책은 조로아스터교나 자라투스트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니체가 뜬금없이 자라투스트라에 대한 책을 썼을까.
니체가 이 책을 구상할 무렵, 기독교로 대표되는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대표되는 게르만들은 프로이센 공국으로 나뉘어서 분열을 거듭하고 있었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를 통해 유럽의 기독교 중심 철학관을 비판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자화상이 투영된 '초인'의 이미지를 자라투스트라에 빗대어 저술했다.
하지만 니체의 철학은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악용되었다.
그들은 초인을 히틀러에 대입했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인종청소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사용하고자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신비주의적 요소를 자신들의 의식에 활용함으로써 위대한 아리안 Arian(유라시아에서 서기전 20세기에 등장한, 전차를 사용하던 사람들. 히틀러는 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독일 민족의 선조라고 왜곡했다)의 이미지를 실현하고자 했다.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함을 강조하고 반유태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장엄한 바그너의 음악을 그들의 의식에 활용했다.
그리고 새로운 에소테릭 Esoteric(신비주의)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의식을 도입했고, 스와스티카 Swastika(종교적 상징물인 '만卍')를 자신들의 심벌로 사용하기도 했다.
히틀러와 나치는 횃불을 자신들의 의식에 적극적으로 사용했는데, 최근 네오나치 Neo-Nazis(신나치주의: 2차 대전 이후 나치즘을 재수용하는 사상이나 움직임)들의 의식에 횃불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조로아스터교는 널리 알려진 이름과는 정반대로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조로아스터교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불이다.
불은 인류의 진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인간이 불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하지만 대체로 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곧선사람)가 등장했을 때에 불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적어도 네안데르탈인 Neanderthals부터는 우연히 산불이 난 곳에서 불씨를 얻어오는 정도가 아니라 필요한 때에 불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를 기점으로 호모속屬(사람속: 현생인류와 그 직계 조상으로서 약 250만년 전에 등장)의 인류는 동굴에서 주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불로 요리를 해먹었고, 구강 구조에도 변화가 왔다.
이빨과 아래턱뼈(하악골下顎骨)에 미치는 스트레스가 줄어 구강 구조가 더 유연해지면서 발달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다.
또한 불은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이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주었다.
인류학자인 로빈 던바 Robin Dunbar는 요리를 통해서 인간에게 필요한 사회적인 시간을 충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을 통한 요리의 사용은 이렇게 복합적으로 인간의 진화에 작용하고, 인간의 사회성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희망은 타고 남은 재에서 피어오른다
시베리아 숲속에서 발굴을 하던 유학 시절 필자에게 모닥불은 고마운 존재이면서 고된 일의 상징이기도 했다.
발굴단원은 돌아가면서 식사당번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참 고되었다.
특히 술 먹은 다음 날은 더 심했다.
발굴현장에서 누가 생일이라도 맞이하면 모닥불에 모여 앉아 밤이 영원하기라도 할 것처럼 보드카를 마신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하얀 재만이 남아 있다.
불을 다시 피우려면 근처를 돌며 자작나무 껍질을 긁어모아야 한다.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종이처럼 불이 잘 붙는다.
차가운 서리가 내린 재투성이에 다시 모닥불이 타오르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경외로울 때가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불은 언제나 숭배의 대상이었고, 타고 남은 재는 부활의 상징이었다.
봉황이나 피닉스에 해당하는 슬라브인들의 신화 속 불새 '차르-프팃카 Zhar-Ptitca'는 다 타고난 재에서 부활했다.
지금은 동화가 된 신데렐라의 이야기도 사실은 '재투성이 아가씨'라는 고대 전설에서 유래했다.
어떠한 파티도 끝나고 나면 다 타버린 재처럼 허무하다.
그 타버린 재에서 다시 불을 피울 희망을 찾는 것은 단순한 위로나 위안을 위한 것이 아니다.
불을 피우는 그 소소한 즐거움은 힘든 삶을 지탱하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재를 보면서 불을 느낀다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고고학자가 발굴하는 유적은 마치 타고 남은 재와 같다.
발굴을 하다 보면 과거의 불을 피웠던 자리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특히 집자리에서는 주변에 돌을 두르고 그 가운데에 불을 피운 흔적이 반드시 나온다.
또 고대 유목민들의 무덤에서도 군데군데 불을 피운 흔적과 그 위에서 요리를 한 듯한 동물뼈들도 발견된다.
지금 남은 것은 불을 태운 흔적과 재뿐이다.
하지만 그 불의 흔적을 가진 흙들을 발굴하다 보면 그 위에서 벌어진 수많은 의식, 요리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고고학자들이 타고 남은 재에서 불타오르는 불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유물도 있다.
중국 랴오닝성(요령성辽宁省/遼寧省) 선양시(심양시沈阳市/瀋陽市)에는 6000년 전 빗살무늬토기를 만든 사람들의 마을 유적인 신러(심락新樂) 유적이 있다.
여기에서는 불에 타고 숯으로 남은 새 모양의 지팡이가 발견되었다.
아마 불새나 봉황과 같은 토템 totem을 상징하는 지팡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600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 나무로 만든 대부분의 물건은 남아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신러유적의 불새는 어떻게 그런 세월을 버티고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바로 과거에 불에 타서 숯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무는 그 원형을 유지한 채 땅속에 묻히면 서서히 사라진다.
하지만 숯은 그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
6000년 전 빗살무늬토기의 불새는 불에 탐으로써 지금 다시 고고학자들에 의해 부활할 수 있었다.
타고 남은 재에서 다시 타오를 불에 대한 희망을 찾듯 고고학자들도 과거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유물을 찾아 고군분투한다는 점에서 뭔가 동질감이 느껴진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면 삶의 목표라든가 이정표 같은 것들이 더는 의미 없게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화려한 삶을 꿈꿨지만 실패하고, 꿈은 꿈인 채로 남아버린 것만 같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삶에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규정지어 버린다.
이제 내 생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자기 안의 뜨거운 열기를 꺼뜨리지 않는 것이다.
불과 재는 둘 다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다.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다.
내 안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겨질 때, 재 속을 헤집듯 자기 안을 천천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될 때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흐름출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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