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1 - 매실나무 본문

동식물 사진과 이야기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1 - 매실나무

새샘 2025. 1. 29. 13:59
매실(출처-출처자료1)

 
호문목好文木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을 만큼, 옛 선비와 화가들이 무척 아끼고 사랑했던 꽃나무다.
수많은 시가詩歌와 그림이 전해지며, 몇백 년 묵은 나무도 곳곳에 있다.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하는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인 매실나무의 학명은 프루누스 무메 Prunus mume, 영어는 Chinese plum(중국자두) 또는 Japanese apricot(일본살구), 중국어 한자는 매梅 또는 매화梅花로 쓴다.
 
 

매화나무? 매실나무?

 
같은 나무를 두고 '매화나무'라고 하면 꽃을 생각하는 것 같고, 열매를 생각하면 '매실나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매화나무는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이름이고, 매실나무는 식욕을 돋우는 이름으로 그 뜻이나 맛이 서로 다른 느낌이다.
 
과실나무 이름은 거의 과실 이름 뒤에 나무를 붙이고, 과실나무의 꽃 이름은 과실 이름 뒤에 꽃을 붙인다.
예를 들면 감, 배, 사과 나무의 꽃들은 감꽃, 배꽃, 사과꽃이고, 그 열매들은 감, 배, 사과이며, 그 나무들은 모두 감나무, 배나무, 사과나무란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게 본다면 매화나무보다는 매실나무가 더 적합한 이름이다.
보통 생각하기론 매실이 과일(과실)인지 조금 애매한 면이 있기는 하다.
왜냐면 과일이라면 대개 단맛이 나는데 비해 매실은 단맛은 없고 신맛이 아주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과일을 '나무 따위를 가꾸어 얻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열매. 대개 수분이 많고 단맛 또는 신맛이 난다'라고 정의하고 있으므로, 매실은 확실히 과일(과실)인 것이다.
 
그럼 과실나무는 거의 과실 이름에 나무란 이름이 붙었는데 반해 매화는 왜 꽃 이름에 나무가 붙은 '매화나무'란 이름으로 많이 불리게 됐을까?
새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해본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어 표기가 매실梅實이 아닌 매화梅花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자로 된 책에는 모두 '매화'라고 표기되어 있었을 것이며, 매화 관련 책을 읽은 선비나 양반들은 기호나 취미로서 분재 등을 통해 집안에서 보고 가꾸면서 '매화'나 '매화나무'라 불렀을 것이다.
글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열매인 매실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꽃인 매화만 보면서 즐겼기 때무에 매화라는 이름이 입에 붙어 나무를 붙여 이름을 부를 때도 매화나무라고 했을 것이다.
 
반면 열매인 매실 수확을 주목적으로 나무를 키우는 서민들은 꽃에는 큰 관심 없이 나무에 많이 매달린 매실을 따면서 매실나무라고 불렀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매화나무란 이름보다는 매실나무란 이름이 우리말에 더 어울릴 뿐아니라 더욱 정겹게 들리지 않는가!
더욱이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된 정식 이름은 매실나무!!!
따라서 이 글에서는 시구詩句와 관련된 '매화'를 제외한 모든 이름은 '매실나무'로 통일할 것이다.

 
매실나무는 큰키나무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키가 낮은 나무로, 어린 가지는 초록색이고 꽃받침 조각은 둥글며 꽃자루가 거의 없다.
매실나무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세기 초 도코(동경東京)대학의 나카이(중정中井) 박사는 제주도에 야생종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수종이므로 우리나라 남쪽에 더 알맞고, 개성보다 더 북쪽으로 가면 심어키우기 어렵다고 한다.
 
 

명나라에서 가져왔다는 창덕궁 성정각의 고매古梅(출처-출처자료1)


필자는 1985년에 창덕궁 안 노지露地(지붕 따위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땅)에서 자라고 있는 매실나무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나무는 건강한 편이었다.

나무 옆 안내판에는 "이 나무는 조선왕조 제14대 선조(재위 1567~1608) 때 중국 명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보내온 것이라고 전해지며, 나무 나이는 약 4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나무는 담장 모퉁이에 있어 겨울의 찬 바람은 피하고 따듯한 햇볕은 받을 수 있어 추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했다.
당시에 나무 심는 장소를 잘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옛그림에는 매화를 소재로 한 것이 많다.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의 <탐매도探梅圖>는 17세기 중엽에 비단에 채색한 그림으로, 대지팡이를 든 은사隱士가 매화꽃을 시자侍者(시중드는 사람)와 함께 완상玩賞(즐겨 구경함)하는 한적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창강滄江 조속趙涑의 <매작도梅鵲圖>(또는 <고매서작도古梅瑞鵲圖>)는 17세기 전반에 족자 종이에 수묵으로 그린 것으로, 늙은 매실나무 가지에 한 마리의 까치가 꼬리를 내린 채 앉아 있다.
강인한 매실나무의 늙은 줄기에 가시처럼 난 작은 가지 위에 매화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명품이다.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에 나타난 매실나무는 키가 크고 줄기가 굵으며 흰 꽃이 만발해 있다.
그래도 못 다해서 서재 꽃병에는 일지매一枝梅(줄기 한 개만 있는 매실나무)가 꽂혀 있다.
또 그는 대련對聯(그림이나 시문에서 대對가 되는 연聯)으로 <홍매도紅梅圖>를 그렸는데, 힘찬 줄기에 홍매가 만발하고 있어 화사한 느낌을 준다.
 큰 괴석怪石(괴상하게 생긴 돌)에 뿌리내린 노매老梅(늙은 매실나무)를 그린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의 <석매도石梅圖> 또한 볼만하다.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의 <매화쌍치도梅花雙雉圖>도 좋다.
 
'매화 옛 등걸(줄기를 잘라 낸 나무의 밑동)'이란 말처럼 매실나무의 줄기는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
동양화에 나오는 매화 그림을 보면 그 줄기가 몇십 년, 아니 몇백 년은 된 것으로 나온다.
늙은 나무 역시 노숙한 인간에게서 조용히 감상받기를 원할 것이다.
 
지금은 중국의 나라꽃(국화國花)이 없지만 1929년 법령으로 모란(목단牧丹)에서 매화로 나라꽃이 변경·지정되었으며, 이 사실은 문일평文一平의 ≪화하만필花下漫筆≫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987년 나라꽃 선정을 위해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매화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 사람에게 인기가 높다.
대만은 1964년 매화를 공식 나라꽃으로 선포했는데, 대만에서 발간된 책자에는 매화꽃이 삼타연지三朶連枝(가지에 꽃송이 3개가 연달아 달림)인 것은 쑨원(손문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매화 꽃잎 5장은 오권분립五權分立을 상징한다고 했다.
 
중국 양쯔강(장강長江) 하류 지역은 매실나무 재배지로 알려져 있고, 베이징(북경北京) 지역에서는 노지 재배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중국 기록에 보면 "귤나무는 화이허강[회하淮河: 양쯔강과 황허(황하黃河) 중간에 있는 큰 강]을 넘어서 북쪽으로 가면 탱자나무가 된다. 강 남쪽에서는 매실나무이지만 북쪽에서는 살구나무가 된다"고 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지만 자랄 수 있는 영역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매실나무와 살구나무는 서로 많이 닮았다.
명나라 리스전(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매梅의 옛 글자는 매呆(어리석을 매, 매화나무 매)였는데, 이 글자는 열매나 꽃이 나무 위에 있는 형상을 나타낸 것이다.
매실나무는 살구나무를 닮았으나 구별이 되어야 하므로 '杏(살구나무 행)'자를 거꾸로 해서 '呆'로 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매실나무는 동양적인 미가 있어서 인기 있는 꽃나무로, 역시 중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사람들은 매梅를 'むめ(무메)' 또는 'うめ(우메)'로 부른다.
매실이 익을 때 장맛비가 내리는데 이것을 일본 사람들은 '매우梅雨'로 쓰고 'つゆ(쓰유)'로 읽는다.
 
매실나무가 식물학적으로 인연이 가까운 것은 살구나무, 자두나무(이수李樹 즉 오얏나무), 복숭아나무, 벚나무 등이다.
살구나무와 자두나무의 어린 가지는 갈자색褐紫色(갈색을 띤 보라색) 또는 암자색暗紫色(어두운 자주색)이라서 푸른색인 매실나무 가지와 구별이 된다.
매실은 한쪽에 얕은 홈줄이 있고, 표면에 털이 있으며, 핵은 열매살(과육果肉)과 밀착하고, 핵 표면에 잔구멍이 많다.
살구꽃의 꽃받침 조각은 밖으로 굽는 것이 매화와 다르고, 열매가 익으면 핵과 열매살이 서로 잘 떨어진다.
자두나무는 꽃자루가 길어서 식별이 되고 열매인 자두 표면에 털이 없는 것이 매실이나 살구와 다른 점이다.
 
매화는 모든 꽃에 앞서서 피는 까닭에 '백화괴百花魁', '화괴花魁' 또는 '화형花兄'이란 이름을 얻고 있다.
먼저 피는 것이 형이 된다는 해석이다.
'괴魁'는 '먼저' 또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동지 이전에 피는 것은 '조매早梅'라 하고, 가지가 구부러지고 푸른 이끼가 끼며 비늘 같은 껍질이 생겨 파리하게 보이는 것을 '고매古梅'라 해서 귀중하게 여긴다.
열매가 일찍 맺는 것도 '조매早梅'라 부른다는 설명도 있다.
 
매실나무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강변에 나는 매실나무를 '강매江梅'라 한다 했으나, 책에 따라서는 매실 열매가 떨어져 들에 나서 단 한 번도 옮겨 심거나 접붙이를 하지 않은 야생의 것을 '강매'라고 한다는 설명도 있다.
 
 

연분홍빛이 도는 흰꽃이 피는 전형적인 매실나무 꽃(출처-출처자료1)

 

백매의 꽃(출처-출처자료1)

 

만첩홍매의 꽃(출처-출처자료1)

 
옛책에는 매실나무의 종류로서 쌍매雙梅, 수지매垂枝昧, 녹악매綠萼梅, 자매紫梅, 동심매同心梅, 추지매麤枝梅, 홍매紅梅, 청매靑梅, 주매朱梅, 백매白梅, 야매野梅, 춘고초春告草 등 여러 종류가 나와 있다.
 
 

나무의 성품

 
매실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달고 그윽한 향기를 내기에 옛적부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매화는 한겨울의 꽃이기에 흔히 새해의 희망을 기원하는 연하장의 그림에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예학의 효시가 되는 책인 조선 후기 유박柳璞의 ≪화암수록花庵隨錄≫을 보면, 꽃과 나무를 9등급으로 나누었다는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에서 높은 풍치風致(격에 맞는 멋)와 뛰어난 운치韻致(고상하고 우아한 멋)를 취한 것으로 매화, 국화, 연꽃, 그리고 대나무를 뽑고 있으며, 봄에 피는 매화를 '고우古友'라 하고 섣달에 피는 매화를 '기우奇友'라 한다고 했다.
소동파는 매화를 '얼음같이 맑은 혼'과 '구슬처럼 깨끗한 골격'이라고 표현했다.
대나무와 매화를 '이아二雅'라 하고, 매화와 국화를 '이우二友'라 하며, 매화·대나무·돌을 '삼청三淸' 또는 '삼익우三益友', 송죽매松竹梅를 '삼우三友' 또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사군자四君子'로, 매화·소나무·난초·대나무를 '사우四友'로, 사우에 연꽃을 더해서 '오우五友'로 한 것 등을 보면 얼마나 매화가 조상들의 숭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필자는 매화를 가까이에 두고 살아온 적이 없다.
그만큼 삶의 질이 높았다고는 할 수 없다.
옛 조상들은 대나무가 생활 주변에 있어야 사람답게 된다 했지만, 자라면서부터는 대나무도 필자 주변에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척 속된 삶은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이렇듯 매화를 상대한 적은 없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매화를 그려내 그 성품을 찾아볼 수 있다.
필자는 어릴 때 한학漢學을 하신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아버지의 매화 시詩는 지금도 소중한 유산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바탕이 되어 필자는 매화의 생태와 생리, 그리고 그 성정性情(타고난 본성)을 짐작할 수 있다.
 
매화는 돈 많은 사람이나 높은 벼슬자리에 올라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가난하고 올바른 길을 걸어온 이름 없는 선비에게 어울리는 꽃이다.
벽돌과 유리로 번쩍이는 고층집이나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보다는 시골의 목조주택과 조화를 이루는 나무이다.
매화는 분재盆栽(화분에 심어 기르는 꽃이나 나무)로 기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분재는 휘황찬란한 형광등의 거실보다는 촛불이나 달빛 아래가 더 잘 어울린다.
유리창가보다는 창호지를 바른 나무창살 문짝 옆이 더 어울린다.
복잡한 도시 속 높은 건물 옆에 매실나무를 심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심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실나무의 변절을 바라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매화는 청빈의 한사寒士(어렵사리 사는 선비)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옳다.
매화는 특히 돈에 욕심 많은 사람을 싫어한다.
그래서 매화를 옆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무척 부럽게 느껴진다.
이러한 사람이 지금 우리 시대에 얼마나 될까?
 
옛사람들은 매화의 네 가지 귀한 점(사귀四貴)을 관상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기준은 첫째, 꽃이 번성하지 않고 드물게 피어남(희稀), 둘째, 어리지 않고 늙은 자태(노老), 셋째, 파리한 생김새(수瘦), 넷째, 활짝 피지 않고 방긋 피어나는 모습(뇌雷)이다.
여기서도 충분히 매화의 생리와 생태를 짐작할 수 있다.
 
떠들썩한 분위기, 화려한 것보다는 약간은 고적한 분위기가 좋다.

매실나무는 늙을수록 그 운치가 돋보인다.

몇백 년을 자라서 용틀임하고, 빈 구멍(공동空洞)이 생겨 있으며, 가느다란 껍질 조각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어울린다.
그런 매실나무의 꽃과 줄기가 선보이는 자태를 완상하게 된다.
어린 매실나무는 품격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 조화를 이루지, 피부에 기름이 번지르르 흐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매화는 피기 전 꽃봉오리의 아름다움이 피어난 꽃을 능가한다.
우리는 그 모습을 더 완상하는 것이다.
 
 

매화와 시가

 
매화를 호문목好文木으로 부르는 것은 매화가 시객詩客(시 짓는 풍류객)들의 친구로서 잘 지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매실나무는 많은 시가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몇 개를 들어 감상해보자.
 
"종일토록 봄을 찾았건만 봄을 보지 못하고 (종일심춘불견춘 終日尋春不見春)
 구름 깊은 곳 청려장 짚고 서서                   (장려답파기중운 杖藜踏破幾重雲)
 돌아와 매화나무 가지 끝 보니                    (귀래시파매초간 歸來試把梅梢看)
 봄은 이미 이곳에 와 있더라                       (춘재지두이십분 春在枝頭已十分)"
 
남송시대 대익戴益의 작품으로, 그는 이 시 한수만을 남겼다.
청려 지팡이 즉 청려장靑藜杖 짚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은사의 기상을 느끼게 한다.
청려靑藜는 '명아주'라는 1년생 풀로서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하며, 줄기가 곧게 자라서 가을이 되면 가벼운 지팡이 하나가 얻어진다.
청려장은 가난한 선비나 도를 닦는 선인들이 즐겨 사용했다고 하고, 통일신라시대부터 장수하는 노인에게 왕이 직접 하사했다고 전해지며, 지금은 보건복지부에서도 매년 10월 2일 노인의 날이면 100세를 맞이한 전국 노인들에게 대통령 이름으로 청려장을 선물하고 있다.
명아주의 잎은 먹기도 한다.
 
매화가 눈 속에서 피고 일찍이 봄을 알린다는 내용의 시는 많이 볼 수 있다.
중국 당나라 말기의 시인 정곡鄭谷은 많은 승려들과 어울렸는데, 어느 날 시승詩僧으로 유명한 제기齊己가 시집을 들고 찾아와서 자신의 <조매早梅>란 시를 소개하기를 "마음 깊은 눈 속에 어젯밤 몇 가지 피었노라"했더니, 정곡이 대꾸하기를 "몇 가지면 이미 철이 늦다. 몇 가지로 하지 말고 한 가지로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이 말에 탄복한 제기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그대는 내 한 글자의 스승이오"라고 했다고 한다.
매화는 한 송이 꽃으로도 봄을 알리고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데 충분하다는 것이다.
 
여러 송이가 피었다면 그것은 진하게 익어가는 봄일 것이다.
음력 정월에 대문에 써 붙이는 글을 '춘련春聯'이라 하는데, 다음은 춘련 글귀의 하나다.
 
"폭죽 소리에 사람의 나이는 하나 더해가고    (폭죽이삼성인간개세 爆竹二三聲人間改歲)
 매화 사오 점에 온 세상은 바야흐로 봄이라   (매화사오점천하개춘 梅花四五點天下皆春)"
 
이처럼 매화는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아름답게 펼쳐질 계절의 상징이었다.
 
다음은 필자의 가친이 지은 것으로 필자가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때의 작품이다.
눈이 많이 왔던 시골 마을을 생각하니, 가친의 걸음걸이마저 생생하게 떠오른다.
 
"찬 구름 갑자기 모여 검은 바람이 찬데                           (동운사합흑풍한 凍雲乍合黑風寒)
 빽빽이 가로로 가로로 나부끼는 눈송이가 장관이라           (밀밀사사극목간 密密斜斜極目看)
 눈을 밟으니 눈은 시인의 나막신 아래서 울고                   (답파저명시사극 踏破低鳴時士屐)
 집으로 향하는 야인의 관에 눈이 쌓여 무겁구나                (귀래중압야인관 歸來重壓野人冠)
 눈송이는 지친 나비처럼 느리게 느리게 팔랑거리며 떨어져  (표여권접반선구 飄如倦蝶盤旋久)
 매화나무에 앉으니 꽃과 눈을 분간하기 어렵더라              (교착향매인식난 巧着香梅認識難)
 빈 창에 달은 밝고 산마저 비어 있는 고요한 이 밤에          (허창백월공산야 虛窓白月空山夜)
 베개에 엎디어 시 짓기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하노라    (복침파타수미안 伏枕破陀睡未安)"
 
또한 남송 때의 시인 촌거村居가 쓴 시가 있다.
이 시에서는 매화나무가 서 있을 만한 격에 맞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현대적이고 요란한 깡통 음료수는 매화에 어울리지 않고, 얼근한 몇 잔의 순이 등장한다.
 
"새로 지붕을 덮은 몇몇 집 시냇가에 서 있고            (수사모자족수애 數舍茅茨簇水涯)         
 처마 끝 매화나무 빨리도 꽃을 달았다                      (방첨일수조매화 傍簷一樹早梅花)
 세월 좋아 문득 생각하길 시골에 살아 마음 편하고  (연풍편각촌거호 年豊便覺村居好)
 새로운 술집에는 대나무 숲이 있구나                       (죽이신첨매주가 竹裏新添賣酒家)"
 
매화와 관련된 한시에는 버드나무가 흔히 등장한다.
겨울에 또는 이른 봄에 매화는 신록으로서 가장 먼저 봄을 전하는 버드나무와 생리적 동시성이 있다.
버드나무는 넓은잎나무 중에서 가장 먼저 잎을 피우고, 또 늦가을 가장 나중에 낙엽이 진다.
매화와 버드나무가 갖는 늦겨울부터의 예민한 온도 반응이 시에 함께 잘 나타나 생물기후生物氣候(기후가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 생물기후학)의 배경을 이룬 듯한 느낌이다.
 
"구름과 노을이 바다에서 오르니 새벽이 오고 있고     (운하출해서 雲霞出海曙)
 매화나무와 버드나무가 강을 건너 봄을 알리고 있다  (해류도강춘 梅柳渡江春)"
라는 두보杜甫의 할아버지 두심언杜審言의 시구는, 웅혼雄渾(글이나 글씨 또는 기운 따위가 웅장하고 막힘이 없음)에 차고 광막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백거이白居易의
"매화나무의 흰 꽃잎은 산골짜기 물에 떠서 흐르고 (백편락매부간수 白片落梅浮澗水)
 버드나무는 성벽을 넘어 노란 새 가지를 보인다     (황초신류출성장 黃梢新柳出城墻)"
라는 시구에도 매화와 버드나무가 같이 나오고 있다.
매화는 기후적으로 그 생리가 버드나무보다 앞서고 있음을 이 시에서 알 수 있다.
 
한편 두보는 매화나무와 대나무를 대조시켜 시로 읊고 있다.
"푸르게 드리운 것은 바람에 꺾인 죽순이요                   (녹수풍절순 綠垂風折荀)
 붉게 터지고 있는 것은 비가 매화를 살찌게 한 탓이다  (홍탄우비매 紅綻雨肥梅)"
 
초록색과 붉은색, 드리우고 터지고, 바람에 비, 꺾이고 살찌고, 죽순과 매화, 그 대조가 하나하나 모두 너무나도 뛰어나다.
 
매화를 소재로 한 시는 이 밖에도 무척 많다.
마지막으로 당나라 왕인王仁이 섣달 그믐 밤에 지은 시를 소개한다.
 
"올해는 오늘밤으로 다하고                  (금세금소진 今歲今宵盡)
 내일이 내년을 재촉하는데                  (명년명일최 明年明日催)
 추위는 하룻밤으로 가고                      (한수일야거 寒隨一夜巨)
 봄은 새벽을 쫓아오고 있다                  (춘축오경래 春逐五更來)
 기운과 색깔을 변해가고 있는데           (기색공중개 氣色空中改)
 나의 용모는 어두어지고 있다               (용안암리회 容顔暗裏回)
 사람이 풍광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풍광인불각 風光人不覺)
 이미  뒤뜰의 매화는 꽃을 달았구나      (이저후원매 已著後園梅)"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고 있는 찰나에 세월의 빠름에 놀란 한 인간이 스스로의 초라함과 오히려 새로워지고 있는 우주의 전환을 대조해보고 있다.
이제 몇 시간이 지나면 새해가 되는 시간의 언저리에서, 그래도 매화의 자연을 내다보면서 한 줄기 희망 같은 것이 아직 남아 있음을 엿본다.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자연은 은밀하게 그의 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봉유설≫ 속 매화나무

 
1614년에 간행된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정몽주의 시가 남아 있다.
정몽주는 고려의 사신으로 일본에 가서 그곳 각처에 매실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창문 옆에 핀 매화꽃은 봄 빠름을 알리고  (매창춘색조 梅窓春色早)
 판잣집에 내리는 빗소리가 요란하다         (판옥우성다 板屋雨聲多)"
 
일본 사람들은 집을 판자 쪽으로 잘 지으며 지붕과 벽의 두께가 얇은데, 이는 지진에 대처한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집 구조는 빗줄기를 받으면 더 큰 소리를 내곤 한다.
때로는 빗소리가 황홀한 음악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일본인들의 집 구조는 비가 잦은 기후조건에 어울려 장단이 맞아들어가는 맛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낙숫물 소리를 차분한 음악소리로 듣는 빗소리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민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빗소리를 감상하는 취미는 비슷한 것 같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라는 책에는 매화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뒤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위 정몽주의 시로 당시 이미 일본에 매화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왕인王仁은 일본으로 건너가 ≪논어≫ 열 권, ≪천자문 한 권을 전달하였는데, 매화나무를  '차화此花'로 칭했다.
이는 대나무를 '차군此君'으로 부른 것과 대를 이룬다.
또한 ≪지봉유설≫에서는 항간의 소설에 나오는 어느 여승의 시라 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소개하고 있다.
도는 먼 곳에 있지 않고가까운 곳에 있음을 뜻하는 시이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았으나 봄을 보지 못하고            (진일심춘불견춘 盡日尋春不見春)
 짚신 발로 농산의 구름을 고루 밟고 다녔는데         (망혜답편롱두운 芒鞋踏遍壟頭雲)
 돌아와 웃으며 매화 가지를 휘잡아 냄새를 맡으니  (귀래소연매화후 歸來笑撚梅花嗅)
 봄은 이미 가지 끝에 완연히 와 있더라                    (춘재지두이십분 春在枝頭已十分)"
 
이처럼 매화는 초봄보다 더 일찍 봄을 알리는 꽃이다.
"뜰에 매화나무를 옮겨 심어놓았더니 봄을 빨리 얻을 수 있더라(정원이매조득춘 庭院移梅早得春)"라고 한 것도 좋다.
그러나 떨어져가는 매화는 세월의 무상 같은 것을 담기도 한다.
"새 대나무는 시골 아주머니 같아서(신죽사촌고 新竹似村姑)  시절을 만나면 얇은 분칠을 해보고(우절락시부분 遇節施簿粉), 떨어지는 매화는 늙은 기생 같아서(낙매여노기 落梅如老妓)  나뭇가지를 내려오면서도 남은 향기를 띠고 있다(하초유작대여향 下梢猶作帶餘香)"라는 시구가 있다.
자라나는 대나무 줄기의 표면에는 한때 분가루가 묻어 있는 법인데 이것을 시골 여자의 화장에 비유하고, 매화꽃 향기는 꽃이 떨어질 때까지 간직하고 있음을 시구에 담아 문채文彩(문장의 멋)를 얻고자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매화

 
필자는 매실나무를 따로 연구한 것도 아니고, 또 이 나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답사한 적은 없지만, 그동안 보아온 매실나무 몇 그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981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국제식물학회가 열려 논문 발표차 참석하게 되었다.
필자는 회의장 건물 한 모퉁이에서 겹으로 된 만첩홍매를 보고는, 8월인데 이곳 매화는 철도 없이 피어나는가 했다.
아름다운 한 그루의 매화였다.
호주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라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1987년 3월 초 필자는 정읍 내장사를 찾은 일이 있다.
내장사 대웅전 앞 넓은 뜰 한 모퉁이에서 만발한 홍매 몇 그루를 보았다.
뿌리목 줄기둘레도 작지 않고 줄기가 갈라져서 아담한 나무모양을 만들면서 지천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절간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이 매실나무 옆에 키 작은 굴거리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매실나무나 굴거리나무나,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땅이 굳어지고 사람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매실나무는 한적한 곳에서 고고한 품격을 보여야 하는데 이곳 매실나무는 이미 복잡한 세상에 나와 있는 느낌이었다.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출처-출처자료1)

 
절간의 매실나무로는 순천 선암사 것이 최고다.
선암사 구내 돌담을 따라 늙은 매실나무가 여러 그루 줄지어 서 있다.
1987년 3월에 필자는 선암사를 찾았다.
필자가 선암사를 찾을 수 있었던 인연은 여러 번 있었다.
그곳에는 고로쇠나무 숲이 있고 나무물(수액樹液)을 초봄에 채집하기 때문에, 채집하는 것을 보러 가면 그곳의 매실나무는 꽃을 달고 있다.
봄에 눈이 내리고 그 눈이 흰 매화꽃과 함께 해서 화백花白인지 설백雪白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밤이 오면 월백月白마저 함께해서 삼백三白의 조화가 고아한 운치의 극을 연출해낼 것으로 보였다.
 
어느 해인가 한번 선암사 절방에서 하룻밤을 지낸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매화 시기가 아니어서 삼백의 묘경을 볼 수 없었다.
매화에 눈이 내려앉은 상황은 그 풍경을 표현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공기도 싸늘하고 돌담도 싸늘하고 나무줄기도 싸늘한, 그 온도의 분위기가 매화의 운치를 살리고 있었다.
시절이 시절이라 매화꽃을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상황도 필자의 매화 완상을 값지게 해주고 있었다.
선암사 주변의 우거진 숲 아래에는 많은 차나무가 한겨울에도 푸르고 눈을 덮어쓰고 있어서 서로 좋은 이웃들이라고 생각되었다.

선암사의 매실나무는 우리나라 매실나무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이 매실나무는 현재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역시 매화는 따뜻한 곳을 즐기고, 따뜻한 곳에서 가치를 발휘한다.
 
격언 가운데 "벚나무 끊어주는 바보, 매실나무 끊어주지 않는 바보"라는 말이 있다.
벚나무는 가지에 손이 닿아서는 안 되며, 매실나무는 가지를 잘라서 모양을 다듬어줄수록 좋다는 말이다.
매실나무는 강한 가지치기(전정剪定)로 원줄기가 굽고 다시 굽어 용틀임하는 천년의 고목을 상징하고, 그 등걸에서 힘찬 가지고 나와 꽃을 다는 것이 볼만하다고들 한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천연기념물 제484호)(출처-출처자료1)

 
아름다운 홍매는 강릉 오죽헌에서 볼 수 있다.
나무모양이 아담한 데다 몇천 몇만의 꽃을 단 황홀한 자태가 홍매의 일품이라고 볼 수 있다.
진한 붉음은 아니고 오히려 분홍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봄날 오죽헌에서 율곡 선생의 인생관을 찾아보면서 이 홍매도 한번 볼만하다.
이 매실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호)(출처-출처자료1)

 
호남 지역의 토종 매실나무 다섯 곳을 골라 '호남 5매梅'라고 부르고 있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溪堂梅, 광주 전남대의 대명매大明梅, 고흥 소록도의 수양매垂楊梅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고불매와 선암매는 각각 천연기념물 제486호와 제48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때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자랐던 동매冬梅는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이백강李白江이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인조 23년(1645)에 귀화할 때 가져와 이곳에 심었다고 한다.
이 동매는 오엽단화五葉單花(꽃잎이 다섯인 홑꽃)로 엄동설한에 고고히 꽃이 피며, 암영소향暗影素香의 선비정신과 충의와 절개를 상징하는 군자의 기품을 뜻하기도 한다.
이때 '암영소향'이란 '암향부동월황혼 暗香浮動月黃昏', 즉 '그윽한 향기는 달빛 서린 황혼에 떠돈다'는 지난날의 시구를 떠오르게 한다.
 
정약용도 매화를 평한 바 있는데, 겹꽃은 홑꽃만 못하고 홍매는 백매만 못하다고 했다.
그래서 꽃잎이 큰 홑꽃 백매가 상품이라고 평했다.
이것은 현대인의 눈에도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원칙은 언제 어디에서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새샘 블로그 2020. 4. 21 글 '매화와 매실나무',
https://micropsjj.tistory.com/17039800
3. 구글 관련 자료
 
2025. 1. 29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