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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8 - 떡갈나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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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28 - 떡갈나무

새샘 2024. 12. 24. 21:45

전북 순창 옥산리의 400년 묵은 떡갈나무 보호수(출처-출처자료1)

 

떡갈나무는 한반도에 자생하는 대표적인 참나무과 참나무속 여섯 종—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가운데 잎이 가장 크고 두꺼우며 뒷면에 갈색의 짧은 털이 융단처럼 깔려 있고, 도토리 열매가 딜린다.

잎에 떡을 싸서 쪄 먹는 쓰임새 때문에 '떡갈이나무'라 하다가 떡갈나무가 되었다.

한반도 전역의 해발 800미터 이하의 산기슭 양지쪽에서 자생하는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

 

학명은 쿠에르쿠스 덴타타 Quercus dentata, 영어는 Korean oak(한국참나무), 중국어 한자는 곡, 작, 대엽력大葉, 포목袍木 등으로 쓴다.

 

 

○갈잎나무

 

떡갈나무 고목의 몸통줄기(출처-출처자료1)


줄기와 가지에서 성큼성큼 생략이 많지만 잎과 열매에는 섬세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떡갈나무.

산속에서 조용히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기품 있는 나무.

잔재주가 없고 금선琴線(잎맥)이 가늘지 않으며 번화한 것을 피하고 잡다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으로, 운든해서 한적한 세월을 보내는 깨끗한 자세다.

 

떡갈나무는 잘 뛰어다니는 산토끼도 아니고, 배고픈 이리도 아니며, 무서운 호랑이도 아니다.

지혜로운 곰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떡갈나무는 날씬한 장도리가 아니고, 대장간에서 땀 흘리는 쇠망치도 아니며, 무게 있는 나무 떡메로 보는 것이 좋다.

떡갈나무는 오래 못 가는 짚신이 아니고, 배 타고 건너온 고무신도 아니며, 더벅더벅 걸어가는 나막신으로 보면 좋다.

종이로 말하면 닥나무 섬유 뭉치가 몰려서 드문드문 박혀 있는 창호지에 어울린다.

이러한 말들로 떡갈나무의 성품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떡갈나무를 볼 때마다 치장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느낀다.

자질구레한 걱정일랑 해서 무엇하겠는가?

시끄럽고 화사한 것이 그렇게도 좋을까?

떡갈나무가 던지는 표정은 '그렇게도 분주하게 설쳐야 하나, 그렇게도 방정맞게 주둥이를 놀려대야 하나' 하는 것이다.

 

떡갈나무 잎과 깍정이(출처-출처자료1)


떡갈나무는 우리나라 참나무 종류 가운데서 가장 큰 잎을 달고 있다.

어느 해, 초여름 경기도 여주의 숲을 조사하다가 큰 떡갈나무 잎 한 장을 채취했는데, 잎이 너무 커서 가지고 오는 도중에 잎의 끝쪽이 좀 떨어져나갔다.

성장이 왕성한 움가지(새로 돋아나온 가지)에서 얻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충남 옥천 평계리 떡갈나무의 여름과 겨울(출처-출처자료1)


떡갈나무를 갈잎나무
라고도 부른다.

누구나 알고 있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라는 시에서 갈잎나무가 나온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은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 나무에는 봄의 신록新綠(새로 나온 잎의 푸르름)보다도, 여름의 성록盛綠(한창 때 잎의 푸르름)보다도, 가을의 단풍보다도, 가지에 붙어서 찬 바람에 노래하는 겨울 갈잎이 더 어울리고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떡갈나무에 정을 느끼게 된다.

갈잎의 우수수 하는 소리는 생의 철학을 다시 한번 표백해 내면의 색깔을 들여다보게 된다.

 

 

○참나무 열매 도토리

 

떡갈나무 깍정이와 도토리(출처-출처자료1)

 

표준국어대사전에 갈참나무·떡갈나무 따위의 열매는 '도토리'이고, 상수리나무의 열매는 '상수리'이며, 졸참나무의 열매는 '굴밤'이라고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뚜렷이 구별하여 쓰지는 않고 일반적으로 '도토리'로 통용되고 있다.

참나무에 속하는 다른 종류는 열매는 어떻게 불러야 할지 하는 문제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도토리를 '동구리 どんぐり'라고 한다.

일본어 사전에 보면 동구리란 "물참나무, 떡갈나무, 가시나무 등 너도밤나무과 식물 가운데 종지 모양의 껍데기 즉 깍정이(각殼) 안에 들어 있는 열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때 각殼이란 우리말로는 도토리 깍정이 또는 도토리 종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일본 사람들은 참나무 열매를 나무 종류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영어로는 '에이콘 acorn'이라 쓰는데 나무 종류에 따라 이를 구별하는 말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흉년이 들면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는 배고픈 사람들을 살리는 소중한 식품이었다.

 

어느 해 늦겨울 계룡산 동학사를 찾았을 때, 계곡 곳곳이 얼음장을 덮어쓰고 있고 높은 산마루는 흰 눈을 그대로 남기고 있었는데, 길가에 도토리묵집이 이어졌다.

차가운 도토리묵에 싸늘한 막걸리,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는 눈 씻은 바람이 계룡산의 겨울 풍속을 실감케 했다.

아주머니는 반죽된 도토리의 앙금을 프라이팬에 알맞게 부어 도토리 빈대떡을 부쳐내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도는 찰기 있는 갈색의 도토리 빈대떡을 양념간장에 찍어 입속에 넣고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킨다.

수려하고 장엄한 산에는 도토리 식품과 막걸리가 제격이었다.

 

 

○도토리 식용의 역사

 

떡갈나무 도토리(출처-출처자료1)

도토리는 선사시대부터 식용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참나무가 자라는 북반구 온대 지방에서는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1455)에도 도토리를 모아서 흉년에 대비해야 한다는 상소 내용이 있고, 또 선조 26년(1593)에는 정책적으로 기민飢民(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데 도토리가 항상 소중한 것으로 등장하고 있다.

 

구황청救荒廳운 조선 시대 흉년에 백성들을 구제하던 관청으로, 이후 이름이 진휼청賑恤廳으로 바뀌었다.

구황 방법을 서술한 ≪구황촬요救荒撮要≫는 조선시대 때(1554) 간행되었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도토리의 식용 방법이 연구되고 그 경험이 전파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에서도 16세기 말 무렵 우리나라에서 발달된 도토리 식품 가공 기술이 고치현(고지현高知縣) 일대에 전해져, 우리나라의 도토리 가공 기술은 오래전부터 발달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약 200년 전의 책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도 마떡, 마죽, 밤죽, 밤떡 만드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는데, 그러한 가공 과정은 도토리를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요즈음 사용되고 있는 방법도 그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에서는 1794년 갑인흉년甲寅凶年 때 물참나무의 열매가 구황에 큰 도움이 되었기에, 한라산 중턱에 있는 큰 물참나무에 해마다 감사제를 올리고 있다.

이것을 보더라도 제주도에서도 오래전부터 도토리를 식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옛적부터 "도토리나무는 들판을 내다보고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이 전해져온다.

흉년이라 생각하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어서 백성을 살린다는 말이다.

우리 민족이 흉년을 넘기는데 도토리에 의지한 바가 얼마나 크면 이러한 말이 남았을까?

 

흉년에 도토리나무가 일제히 다량의 결실을 보여 백성의 굶주림을 구제하는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은 충분한 일사량과 광합성으로 아직 익지 않은 열매가 떨어지는 일이 방지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벼논을 말리는 가뭄일지라도 도토리나무의 결실에는 오히려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도토리묵 만드는 방법

 

필자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동네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았다.

그때 우리는 '상수리'라는 말은 전혀 몰랐고 꿀밤나무라고만 알고 있었다.

초겨울이 되면 우물가에는 도토리가루를 넣은 시루 몇 개가 Y자형으로 된 쳇다리나무 위에 얹혀져 있었다.

그래서 '꿀밤묵' 맛을 톡톡히 보았다.

 

지역에 따라서 그 과정에 조금 차이가 있지만, 필자가 알고 있는 도토리묵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다.

 

 ① 도토리 채집하기

먼저 도토리를 채집해야 하는데, 나무(주로 상수리나무) 줄기를 돌이나 떡메로 쳐서 익은 열매를 떨어지게 한다.

이렇게 하면 나무 줄기에 상처가 나 그 부분 목재의 이용가치가 떨어지지만 도토리 결실과 채집에는 도움이 된다.

 

 ②도토리 건조하기

다음은 도토리를 말려야 한다.

멍석에 널어서 2~3일 동안 햇볕에 쪼이면 된다.

도토리는 바깥쪽 단단한 껍질이 열매껍질(과피果皮) pericarp이고, 그 안쪽에 있는 갈색의 얇은 막이 씨껍질(종피種皮) seed coat이며, 그 안에 있는 것이 살바탕(육질부肉質部)인 떡잎 부분과 씨눈 부분이다.

늦게 성숙하는 도토리일수록 묵이 많이 나고 맛도 좋다고 한다.

 

 ③열매껍질 벗기기

다음은 열매껍질을 벗기는 일이다.

절구에 넣어 힘을 주지 않고 실근실근 찧으면 열매껍질이 떨어져나간다.

열매껍질이 벗겨진 알맹이를 '도토리살'이라고 부르는 지역도 있다.

 

 ④물속에 담가두기

다음은 열매껍질이 벗겨진 도토리살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하루 이틀 동안 물속에 담가둔다(침수연화沈水軟化).

 

 ⑤찧기

다음이 찧기 과정인데, 물속에 담가 부드럽게 된 도토리살을 절구나 디딜방아에 넣어 찧는다.

어레미(바닥의 쳇불 구멍이 가장 넓은 체)와 도드미(쳇불 구멍이 어레미보다 좁은 체)로 치면서 되도록 곱게 찧는다.

쌀알은 어레미를 지나가지만 도드미는 쌀알을 통과시키지 않고 좁쌀만 통과시키는 크기의 눈을 가지고 있다.

 

 ⑥우려내기

다음은 우려내는(탈삽脫澁) 과정이다.

도토리살에는 타닌 tannin 성분이 많아서 그대로 먹을 수 없다.

따라서 시루 안에 도토리살을 넣고 물을 부어 2~3일 동안 놓아두어야 한다.

 

 ⑦맷돌로 갈기

다음은 맷돌로 가는 일인데, 우려낸 도토리살을 맷돌로 간다.

 

 ⑧삼베자루로 짜내기

멧돌에서 갈려나오는 도토리즙을 삼베자루 속에 넣고 물을 쳐가면서 손으로 주물러 앙금을 짜낸다.

 

 ⑨묵 쑤기

마지막 과정으로 묵 만드는 작업이다.

묵을 쑬 때는 물을 적당히 잡아 알맞게 끓이고 나서 그릇에 부어 모양을 만든다.

도토리살 소두小斗(닷 되들이 말) 한 말에 보통의 국그릇으로 묵 40~50그릇쯤 나온다.

 

이상 설명한 과정은 기본적인 것으로 다소의 변법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의 메리엄 박사 Hart Merriam에 따르면, 미국 서부산 도토리는 지방과 탄수화물의 함량이 높고 단백질 함량이 비교적 낮은데, 구체적으로 탄수화물 62퍼센트, 지방 19.8퍼센트, 단백질 4.5퍼센트, 정유 2.1퍼센트로 옥수수와 밀에 버금가는 수치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경우 한때 빈민의 약 20퍼센트가 스위트 에이콘 sweet acorn을 식량으로 해서 흉년을 넘겼다고 한다.

이 스위트 에이콘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발로타참나무 Quercus ballota의 열매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도토리로 엿, 묵, 떡, 빈대떡, 국수 등 못 만들어 먹는 것이 없었다.

떡갈나무 열매가 우리 민족의 삶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

예전에는 떡갈나무 잎을 따서 증기로 찌고 말려서 포장한 뒤 일본으로 수출해 돈을 꽤 벌기도 했다.

일본 사람들은 단옷날 떡갈나무 잎에 싼 떡을 즐기는 습속이 있다.

떡갈나무 줄기껍질은 적룡피赤龍皮라 해서 염료를 얻는 소중한 자원이기도 했다.

이처럼 떡갈나무는 우리의 삶과 큰 인연을 맺어왔으니 고마울 뿐이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1,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http://www.nature.go.kr/kbi/plant/pilbk/selectPlantPilbkDtl.do?plantPilbkNo=3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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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2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