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백신의 원리를 깨닫다 - 파스퇴르와 탄저균 백신 공개 검증 본문
1865년 파스퇴르 Pasteur(1822~1895)에게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인들은 누에의 병 때문에 고생하는 양잠업자들이었다.
그들은 누에의 알이 부화하지 못하고 부화해도 금방 죽어나가자 파스퇴르를 찾아온 것이었다.
파스퇴르는 일단 건강한 애벌레를 A와 B의 두 무리로 나누어 대조 실험을 시작했다.
A 무리에게는 병들어 죽은 애벌레로 문지를 뽕잎을 먹이고, B 무리에게는 건강한 애벌레로 문지를 뽕잎을 먹였다.
그러자 A 무리의 애벌레에게만 병이 나타났다.
파스퇴르는 병든 A 무리 애벌레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작은 미생물을 발견했다(파스퇴르는 이 미생물을 자신의 이름을 붙인 '파스퇴우렐라 뮬토치다 Pasteurella multocida'라고 명명했다).
곧바로 미생물에 감염된 누에들을 구분해 분리시키자 더 이상 누에의 병이 나타나지 않았다.
파스퇴르는 이처럼 와인과 누에를 통해 미생물 감염 원리를 서서히 깨달아갔다.
그런데 그가 백신 vaccine의 원리를 깨닫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1749~1823)와 파스퇴르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닭 콜레라(가금콜레라 fowl cholera 또는 조류콜레라 avian cholera)가 유행해 프랑스 농장의 닭이 10% 가까이 죽어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현장으로 달려간 파스퇴르는 질병에 걸린 닭의 혈액에서만 발견되는 미생물을 확인하고 그것을 배양해 다시 건강한 닭에게 주사했다.
주사를 맞은 닭들이 예상대로 콜레라 증상을 보이며 죽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질병을 유발하는 미생물을 확인한 파스퇴르는 여름 휴가를 떠나기 전 조수에게 배양한 미생물을 다른 닭들에게도 주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휴가를 다녀왔는데도 미생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조수가 착오를 일으킨 것이다.
파스퇴르는 1주일 동안 방치한 미생물들을 늦게나마 새로운 닭들에게 주사했지만 닭들에게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방치한 미생물이 독성을 잃고 변질되었다고 생각한 파스퇴르는 새로운 미생물을 배양해 닭들에게 다시 주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변질되었다고 생각했던 미생물을 접종했던 닭들만 무사히 살아남은 것이다.
이때 파스퇴르의 머릿속에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상온에 방치해 독성을 약하게 만들었던 인두법과, 증상이 가벼운 우두를 미리 접종해 천연두를 예방했던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법이 떠올랐다.
파스퇴르는 자신이 닭 콜레라균을 상온에 방치함으로써 예방 백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닭 콜레라를 통해 백신을 만드는 원리에 눈뜬 파스퇴르는 탄저병炭疽病 anthrax(환자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검은 딱지가 앉기 때문에 붙은 이름) 백신 개발에 도전했다.
먼저 고온으로 탄저균을 가열해 '독성이 약해진 탄저균'을 만들었다.
그때 한 잡지사에서 파스퇴르의 연구를 의심해 탄저병 백신에 대한 공개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다.
파스퇴르는 흔쾌히 동의했다.
파스퇴르는 이번 기회에 매스컴 masscom(매스 커뮤니케이션 mass communication의 준말이며, 우리말은 대중전달)을 통해 자신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1881년 5월 5일, 파스퇴르는 자신이 개발한 탄저병 백신을 양 24마리에게 접종했고, 2주 뒤 같은 양들에게 백신을 한 번 더 접종했다.
그는 최종 실험 결과를 확인하는 5월 31일 정치가들과 기자, 과학자들을 여럿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탄저균 예방접종을 받은 양 24마리와 받지 않은 양 24마리에게 동시에 탄저균을 주입했다.
실험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과 파스퇴르 연구진에게 매우 초조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극적이었다.
백신을 접종한 양들은 전혀 문제가 없었던 반면 접종하지 않은 양들은 모두 죽어갔던 것이다!
모든 언론이 이 놀라운 결과를 대서특필해 파스퇴르는 영웅이 되었다.
덕분에 '파스퇴르연구소 Institut Pasteur'가 설립되어 그의 뒤를 잇는 위대한 학자들이 줄줄이 배출되었다.
닭 콜레라 백신과 탄저병 백신을 완성해 스타 화학자가 된 파스퇴르는 또 한 번의 위대한 도전에 나섰다.
광견병狂犬病 rabies을 연구한 것이다.
파스퇴르는 아직 몰랐지만 광견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세균 bacteria가 아닌 바이러스 virus다.
바이러스는 당시 현미경으로도 발견할 수 없었고 세균처럼 배양할 수도 없어 연구자의 아이디어가 매우 중요했다.
광견병에 걸린 환자의 증상이 물을 무서워하거나(공수병恐水病 hydrophobia) 흥분, 마비, 정신이상 등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파스퇴르는 병원체가 생물의 중추신경계(뇌와 척수)에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파스퇴르는 광견병에 걸린 토끼의 척수를 2주 동안 공기 중에서 말린 뒤 갈아서 척수 분말을 만든 다음 식염수에 섞고 몇 가지 화학적 과정을 거쳐 백신을 만들었다.
문제는 광견병 백신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이다.
의사가 아닌 화학자였던 파스퇴르에게 인체 실험은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조제프 마이스터 Joseph Meister라는 소년이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심하게 물려 어머니와 함께 파스퇴르를 방문한 것이다.
파스퇴르 연구소 동료 가운데 접종을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파스퇴르는 긴 고민 끝에 자신이 만든 광견병 백신을 소년에게 주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총 13회에 걸친 접종 끝에 광견병에 걸린 소년 마이스터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마이스터는 파스퇴르연구소의 정문 수위로 일하면서 평생을 파스퇴르와 함께 했다고 한다.
해피엔딩이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5. 2. 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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