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십장생도 본문
"장생은 어디에나 있지만 십장생은 조선에만 있다"
십장생十長生이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하는 열 가지 경물景物(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과 동식물을 말하는데, 자연에서 해(일日), 달(월月), 산山, 내(천川)의 네 가지, 식물로는 대나무(죽竹), 소나무(송松), 영지靈芝(불로초)의 세 가지, 그리고 동물로는 거북(구龜), 학鶴, 사슴(녹鹿)의 세 가지를 일컫는다.
때로는 돌(석石), 물(수水), 구름(운雲)을 꼽기도 하고 신선이 먹는다는 천도天桃를 그려 넣기도 한다.
십장생 그림은 조선시대 궁중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아주 널리 사랑을 받았다.
십장생은 우리 조상들이 신선 사상과 민간신앙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독특한 도상이며 관념체계다.
중국과 일본에는 십장생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장생은 있어도 십장생이라는 개념은 없었던 듯하다.
아직까지 중국 문헌에서 십장생이라는 단어를 확인하지 못했다.
십장생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우리 집에는 십장생 세화歲畵(설맞이 그림)가 있는데 10월인데도 아직 새 그림 같다"고 노래한 것이다.
또 조선 초 성현成俔(1439∼1504)은 연초에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십장생에 대해 시를 남겼다.
십장생 도상의 기본은 궁중에서 사용된 십장생도 병풍이었다.
8곡이나 10곡 병풍을 대폭大幅(큰 폭)의 화면으로 삼아 험준하면서도 환상적인 산자락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아래쪽에는 소나무, 천도복숭아가 줄지어 펼쳐지며 그 사이에 냇물과 사슴, 거북, 영지가 점점이 배치된다.
화면 위에는 해와 달이 떠 있고 학이 무리지어 나르고 있다.
불로장생의 현장 같기도 하고 신선 세계의 풍광 같기도 하다.
진채眞彩(진하고 강한 채색)로 그려진 장엄한 청록산수화이다.
비록 화가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고 주어진 도상圖像(종교나 신화적 주제를 표현한 미술 작품)에 나타난 인물 또는 형상 을 그린 것이지만 그와 관계없이 강렬한 예술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고려시대에 고려불화가 있고 그중에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있었다면(새샘 티스토리 2020. 11. 19 '고려 불화 혜허 양류관음도' 참조, https://micropsjj.tistory.com/17040032) 조선시대에는 궁중 장식화가 있고 그중엔 십장생도가 있었다는 찬사를 보낼 만하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십장생도 병풍을 많이 제작하였다.
왕과 왕비의 내전을 장식했던 실내 장식용도 있고, 불발기창(문 가운데에 채광이 되도록 여러 문양의 살을 짜서 창호지를 안쪽에 바른 붙박이 광창)이 있는 것도 있다.
옥외 행사를 위해 항시 여러 틀이 상비되어 있었다.
왕실의 혼례나 환갑 같은 큰 잔치 때는 별도의 십장생도 병풍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십장생도 병풍들은 거의 똑같은 도상의 청록진채화靑綠眞彩畵로 대개 19세기 작품이고 시대가 오래된 것이 없다.
실제로 사용하다가 장식 병풍이 낡으면 새로 제작하여 계속 교체했기 때문에 왕조 말기에 남아 있던 것만 전한다.
그래서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30점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
본래 궁중의 십장생도 병풍은 민간에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일제강점기에 와서 '이왕가李王家 유물'로 전락하고 관리가 허술한 틈에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십장생도는 한동안 장식 그림이라고 해서 본격적인 회화 작품보다 예술성이 낮게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일찍부터 한국적 특색이 강한 이 왕실 유물에 주목하였고 미국의 박물관에 전하는 것이 많다.
한 예로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박물관의 <십장생도> 10곡 병풍은 1924년에 서울에 있던 테일러 무역상회에서 구입한 것이다.
이 병풍은 특이하게도 8폭의 십장생도에 별도로 영중추부사 이유원 등 13명의 좌목座目(자리의 차례를 적은 목록)이 2폭 붙어 있다.
이 인물들은 1879년(고종 16), 여섯 살의 왕세자(순종)가 천연두에 걸렸을 때 치료를 맡았던 의약청의 관리임이 ≪승정원 일기≫에서 확인됐다.
왕세자의 병이 완치되자 이를 경하하면서 세자의 장수를 기원하며 그린 기념화였던 것이다.
※출처
1. 유홍준 지음, '명작 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주)눌와, 2013
2. 구글 관련 자료
2025. 2. 3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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