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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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는 또는 어디에나 있는

새샘 2025. 2. 5. 17:47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표지(출처-출처자료1)

 

"역사의 진실은 화려한 황금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토기 한 조각 한 조각에 숨어 있다."

 
                 -강인욱-
 

"우리는 왜 고고학을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필자가 처음 고고학과에 진학했을 때에 선배들에게서 들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수없이 되뇌는 질문입니다.
 
필자는 고고학이 있는 이유를 인간이 진화하며 이 세상에 살아남은 과정에서 생각해봅니다.
인간은 기억의 동물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과거에 겪어온 것을 통해서 학습을 하고 지식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지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죽음, 폐허, 비극과 같은, 흔히 인류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장면에서 가슴 설레합니다.
새롭게 밝혀낼 과거를 생각하기 때입니다.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 Vesuvio(영어 Vesuvius) volcano의 폭발로 잿더미에 묻힌 폼페이 Pompeii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고학 유적입니다.
절규하면서 아이를 끌어안고 그대로 굳어버린 어머니의 석고상부터 시작해서 막 타임캡슐 time capsule(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록이나 물건을 담아서 후세에 온전히 전할 목적으로 고안한 대개 땅속에 묻어 두는 용기)을 꺼내놓은 듯한 생생한 모습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아냅니다.
 
그런데 실제 고고학을 전공하면서 겪는 삶은 일반인들의 상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고고학의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괴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자들이라면 흔히 발굴을 해서 유물을 찾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유물을 찾아내는 것은 고고학 연구의 시작일 뿐입니다.

화려한 황금이나 깨진 토기 조각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을 밝혀내는 것이 고고학의 진정한 목적이기 때문입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고고학자로서의 또 다른 큰 역할은 고고학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고고학에 관심을 갖고 필자를 찾아오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필자가 처음 고고학의 문을 두드릴 때를 떠올립니다.
그 친구들은 제게 진정한 고고학이 무엇인지를 늘 돌아보게 합니다.
 
필자에게 고고학은 행복한 학문입니다.
하지만 이러저리 파괴되고 흩어진 과거의 기억 속에서 답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덤에 누워 있는 과거 사람들의 삶을 몇 가지 유물로 추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솔직히 가끔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고고학은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퍼즐 puzzle 맞추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파편을 맞추다가 한 부분이 맞는 순간의 짜릿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퍼즐과 달리 고고학에는 보고 참고할 정답 그림이 없습니다.
게다가 빠진 조각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맞추기가 불가능한 퍼즐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고고학이 과거 사람의 모습을 밝히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유물의 수량과 연대, 만드는 방법 등과 같은 유물 자체에 대한 분석에서 연구를 끝내기도 합니다.
유물과 유적을 볼 때 느껴지는 다양한 인사이트 insight(통찰력을 제공하는 능력이나 행동) 그리고 죽음을 기억하는 무덤에서 느껴지는 여러 느낌들은 필자의 개인적인 수첩에만 기록해둘 뿐이었습니다.
 
이 책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에 나온 이야기들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필자의 수첩 속에 적혀 있던 것들입니다.
이제 와 다시 읽어보니 약간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고학이 보물찾기가 아니라 유물을 통해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여러분께서도 알아주시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펴냅니다.

 
이 책을 쓰는 내내 기호학자이며 역사학자인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의 소설 ≪푸코의 진자≫가 떠올랐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푸코의 진자'는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하여 프랑스의 물리학자 장 베르나르 푸코 Jean Bernard Léon Foucault가 발명한 장치입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지구의 자전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죠.
우리는 지구의 자전을 느낄 수 없습니다.
대신에 천장에 추를 달아서 그 추가 회전하듯 움직이면서 진자振子(흔들이) 운동을 하는 것을 통해 지구가 돌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찾고자 하는 과거의 사실도 푸코의 진자와 같습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과거를 완벽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단편적인 자료들을 모아 해석을 하며 과거에 대한 접근을 계속 시도합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 고고학 자료를 정리해 나갈 때 비로소 진실의 한 자락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하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파편에 불과합니다.
이미 죽어버린 과거를 앞에 두고 우리는 과거의 단편들을 긁어모아 과거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또 무척 보람된 과정이기도 합니다.

과거 인간의 삶을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도 포함된 과거를 그리워할 후대의 고고학자에게 그 몫을 남겨두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글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고고학 책을 시도하려는 필자를 적극 후원하고 기획하신 흐름출판사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필자와 함께한 한국과 유라시아 일대에서 활동하시는 동료 고고학자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바쁜 와중에 추천의 글을 흔쾌히 써주신 선배 고고학 교수님과  국립박물관 관장님, 그리고 한국 고고학회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유물이나 뼈로 남아서 필자에게 많은 인사이트와 교훈을 주신 제 손을 거쳐 간 이름 모를 과거의 수많은 분들께도 마음 속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책은 이 세상을 사랑으로 살아오며 역사를 만들어온 그분들께 바치는 게 마땅할 것 같습니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흐름출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5. 2. 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