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수술 전 외과의사의 소독을 시작한 리스터 본문
제멜바이스 Ignaz Semmelweis(1818~1865)는 출산 후 산모의 죽음에서 '감염感染 infection'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이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나쁜 공기 때문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염증을 일으키는 해로운 실체가 의사의 손에서 산모의 몸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멜바이스는 동료 의사들의 멸시와 비난 속에 상처받고 쓰러졌지만, 그가 사망한 해에 한 의학자가 감염에 대한 놀라운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주인공은 영국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 Joseph Lister(1827~1912)였다.
리스터를 포함한 1800년대 후반의 외과의사들은 수술 환자가 감염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고민했다.
당시 의사들은 수술 후 감염이 발생하는 이유가 산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주변 공기 속의 산소가 수술로 손상된 피부 조직을 곪게 만드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공기 중에 있는 산소가 상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리스터는 한 화학자가 발표한 논문을 일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파스퇴르의 미생물 연구 논문이었다.
파소퇴르의 주장은 두 가지였다.
1. 생명이 썩는 것(또는 발효되는 것)은 미생물에 의한 것이다.
2. 미생물은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오직 다른 미생물에 의해 번식한다.
파스퇴르의 주장은 리스터에 의해 다음과 같이 변환되었다.
1. 환자의 수술 부위가 곪는 것은 미생물의 의한 것이다.
2. 미생물은 자연발생하지 않으니, 외부 미생물을 차단해 수술 부위의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입증할 방법을 찾으려고 병원 기록을 검토하던 리스터는 골절 환자의 기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뼈만 부러진 경우를 단순골절, 부러진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오는 경우를 복합골절이라 하는데, 복합골절 수술 환자의 수술 후 사망 확률이 단순골절 환자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았다.
리스터는 이렇게 생각했다.
"복합골절 환자의 뼈가 뚫고 나온 피부 상처가 미생물에 의해 감염된 것이 아닐까?
수술 부위를 소독하면 어떨까?"
석탄을 고열로 가열하면 석탄가스와 끈적끈적한 찌꺼기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콜타르 coal-tar다.
콜타르는 처음에 석탄을 사용하고 나면 생기는 단순한 폐기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무궁무진한 탄소화합물의 보물창고였다.
콜타르를 끓여 증류를 통해 얻는 물질이 '석탄산石炭酸'으로 지금 페놀 phenol(화학식 C6H5OH)이라 불리는 화합물이다.
당시 사람들은 석탄산의 소독 효과를 이용해 하수구를 소독하고 악취를 제거했다.
리스터는 수술 부위의 소독을 위해 석탄산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석탄산을 상처에 뿌리고 수술에 사용할 도구에도 뿌렸으며, 세균이 상처 부위로 내려오지 않도록 공기 중에도 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술 부위도 석탄산에 적신 붕대로 감았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수술 환자 사망률이 50%에서 15%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리스터는 1년 동안의 수술 결과 자료를 1867년 유명 의학 잡지 ≪랜싯 The Lancet≫에 발표했다.
리스터의 소독법은 몇십 년에 걸쳐 서서히 받아들여졌다.
리스터 역시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소독하고 진료하면서 추가 자료를 모아나갔다.
다른 나라에서 먼저 좋은 결과들이 보고되기도 했고, 영국을 포함한 전 유럽에서 리스터의 소독법이 입증되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다.
유명한 구강 청결제 중 하나인 '리스테린 Listerine'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리스터는 자신의 새로운 소독법을 '미생물에 의한 부패를 방지하는 방법'이라 하여 '방부법防腐法 antisepsis'이라 이름 지었다.
리스터의 방부법은 의료기구, 상처, 의료진 등에 소독약을 뿌리는 방법이었다.
그 후 더 효율적인 소독법이 등장했다.
존재하는 미생물을 소독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균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방법이었는데, 이를 '무균법無菌法 antisepsis'이라 한다.
집에 있는 귀중품이 자꾸 사라져 창문과 대문을 튼튼한 것으로 바꿨더니 더는 귀중품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만으로 도둑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도둑을 직접 잡아야 하는 것이다.
리스터는 수술 부위를 소독함으로써 세균 감염을 막는데 성공했지만 세균과 감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밝혀낸 것은 아니었다.
직접 증거는 없고 정황 증거만 제시한 셈이다.
미생물에 의해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특정 미생물이 특정 질병을 유발한다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이제 그 증거를 찾아내어 '세균 미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의학자를 만날 차례가 되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5. 2. 6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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