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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수술의 발달

새샘 2025. 5. 15. 21:51

대동맥의 한 가지를 폐동맥에 연결하는 블랠록-타우시그 수술(출처-출처자료1)

 

어린아이의 선천성 심장 질환인 팔로 네증후의 수술 치료에 대한 아이디어 idea(참신한 생각)을 제시한 의사가 있다.

미국의 심장 전문의 헬렌 타우시그 Helen Taussig(1898~1986)다.

타우시그는 심장 구조를 곰곰이 살펴본 뒤 대동맥과 폐동맥이 매우 가깝게 지나는 점을 착안해 폐동맥과 대동맥을 연결해줄 수 있다는 참신한 생각을 해냈다.

대동맥과 폐동맥을 연결하면 산소가 부족한 채 흘러나가는 대동맥의 피가 폐동맥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고, 폐에서 산소를 공급받고서 좌심방과 좌심실을 거쳐 온몸에 공급될 것이 아닌가!

타우시그는 동료 외과의사인 알프레드 블랙록 Alfred Blalock(1899~1964)과 상의해 "블랙록-타우시그 수술'을 완성했다.

그들이 첫 번째 수술은 1944년 시행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블랠록-타우시그 수술을 통해 심장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면 환자가 호전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외과의사들은 심장 수술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블랠록-타우시그 수술은 심장 내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심장 외부의 혈관들을 서로 연결하여 혈액 흐름을 부분적으로 교정했을 뿐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심장 외과 의사들은 심장 문제를 '직접적인' 심장 수술로 해결하고자 했다.

 

직접적인 심장 수술은 영국의 두 의사 러셀 브록 Russell Brock과 홈스 셀러스 Holmes Sellors가 시도했다.

1940년대 후반, 그들은 심장 앞부분의 심실벽을 절개하고서 심장 안으로 손가락이나 수술용 칼을 집어넣어 좁아진 폐동맥을 넓혀주었다.

심장 안의 문제가 된 부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진행하는 수술은 아니었지만, 심장 내부의 문제에 근본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블랠록-타우시그 수술보다 한 단계 발전한 수술이었다.

하지만 심장 밖에서 혈관을 연결하는 수술도, 심장 안으로 수술 기구만 넣어 촉감에 의존해 시행하는 수술도 결국 질병을 부분적으로만 치료한다는 한계에 부딪쳤다.

팔로 네증후를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폐동맥관막을 넓혀주고 심실 사이의 구멍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액 공급이 5분만 중단돼도 뇌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아무리 손이 빠른 외과의사라도 쉽게 시도하지 못했다.

 

 

심장-폐 장치 원리. 심장에 도착한 피를 빼내 깨끗하게 만든 뒤 대동맥으로 보낸다.(출처-출처자료1)

 

1931년 어느 날, 28세의 젊은 미국 외과의사 존 기번 John Heysham Gibbon(1903~1973)이 지켜보던 환자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다리 혈관에서 떨어진 응고된 피딱지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 폐혈관을 막은 것이다.

존 기번의 환자는 폐색전증으로 곧 사망했지만 기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정맥의 혈액을 외부로 뽑아 깨끗하게 만든 뒤 다시 동맥으로 넣어줄 외부장치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는 폐의 역할을 대신할 기계를 만들고자 했다.

존 기번은 의사였지만 실험실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장치를 밤낮으로 연구했다.

연구실에서 아내 될 사람도 만났다.

그녀도 연구 기술자여서 부부는 쉬지않고 장치를 개발했다.

그렇게 최초의 심장-폐 장치 Heart-Lung machine가 만들어졌다.

 

존 기번이 처음 심장-폐 장치를 고안한 지 17년이 지나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그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보았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많은 실험동물들이 수술 뒤 살아남지 못했다.

그런데도 수술을 받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죽을 운명에 놓인 환자들은 완전하지 않은 심장-폐 장치를 이용해서라도 마지막 행운을 잡으려 했다.

1952년 사람을 대상으로 존 기번의 심장-폐 장치를 이용한 심장 수술이 세 건 시행되었다.

첫 번째 15개월 된 유아는 사망했고, 두 번째 18세 여성은 성공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세 번째 수술에서 18개월 된 유아가 수술 도중 사망하자 존 기번은 자신의 기계에 크게 절망했다.

정신적으로 완전히 흔들린 것이다.

그는 53세에 모든 연구를 포기했다.

연구를 시작한 지 3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존 기번의 실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장-폐 장치의 문제였는지, 수술 자체의 문제였는지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원인과 상관없이 계속된 수술의 실패로 심한 좌절감에 빠진 존 기번은 다시는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외과의사 월턴 릴리하이 Walton Lillehei(1918~1999)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심장 수술을 받는 환자의 혈액을 몸에서 빼내 기계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몸을 순환하도록 한 것이다.

릴리하이는 아버지와 아기의 혈관을 연결해 아버지의 심장이 아기의 혈액을 대신 순환시키도록 하는 '교차순환법'을 개발해 수술에 성공했다.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이 주어지자, 팔로 네증후 같은 복잡한 선천성 심장병의 수술이 성공으로 이어지고, 심장 수술에 대한 희망이 급격히 살아났다.

릴리하이 같은 심장 외과의사가 교차순환법을 이용해 생사가 달린 환자들을 수술하는 동안 존 기번이 고안했던 심장-폐 장치는 기술적으로 점점 더 완성도를 높혀갔다.

어느 순간부터 팔로 네증후의 수술 교정은 일상적인 수술이 되었으며, 1960년대에 이르면 어린이들의 선천성 심장 질환은 모두 수술로 치유가 가능해졌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성인의 심장 기형 수술도 점점 좋은 결과가 보고되었다.

심장 수술의 발달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실패와 좌절과 정신적 고통을 무릅쓰고 인생을 바쳤던 많은 심장 외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술 기법이 발달하면서 이제 외과의사들은 고장 난 장기를 다른 사람의 장기로 바꿔주는 장기 이식 수술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장기 이식 수술은 이식할 장기의 혈관과 새로운 주인의 혈관을 잇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5. 5. 1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