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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겸재 정선 "섬농" 본문
"새순 가득한 버드나무에 시를 짓다"
꽃이 유혹한다.
마침 '꽃구경 가자'는 친구의 문자가 왔다.
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꽃구경을 떠나본 적은 없다.
짧은 문자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혼자 웃었다.
설레는 마음이 소풍 가는 날을 받아놓은 아이처럼 즐거웠다.
약속한 날은 다가오는데 계절이 널뛰기를 한다.
꽃철인가 싶더니 성큼 더웠다가 앙칼진 비바람이 꽃샘추위를 데려왔다.
다행히 꽃구경 가는 날 아침,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쾌청하다.
미세먼지도 가라앉고 물기 머금은 새싹들의 표정도 나만큼 행복하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섬농纖穠>은 이 계절에 꼭 맞는 작품이다.
버드나무 줄기마다 새순이 송사리처럼 물려 있고, 주위에는 물안개가 피어 신령스럽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버드나무 둥치에 종이를 얹고 시를 짓는 중이다.
복사꽃은 주위를 밝히며 눈을 반짝인다.
친구는 강원도 원주에서, 필자는 대구에서 출발해 안동에서 만났다.
우리는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봉정사 숲길을 걸었다.
비 온 뒤라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찼다.
물안개가 옅게 깔리고,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 벚나무는 금방이라도 터질 기세다.
사찰 정원에는 새순이 영양크림을 바른 듯 반들거린다.
어제 내린 비에 나무들이 싱그럽다.
눈앞에 정선의 <섬농>이 펼쳐졌다.
<섬농>은 사공도司空圖(837~908)가 지은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에 나오는 시 가운데 봄을 노래한 시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찬미한다.
사공도는 당나라 말기의 시인이자 관료로서, 자가 표성表聖이고, 호는 지비자知非子다.
시대의 혼란기에 은둔생활을 하면서 시 창작에만 몰두했다.
<섬농>은 정선이 사공도의 시를 읽고 그린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정선의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이라는 서화첩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정선 이외에도 <이십사시품>은 그림의 주제로 많이 다루어졌다.
청나라 건륭제의 궁정화가 반시직潘是稷과 장부蔣溥가 그림을 그려서 화보로 제작했고, 청나라 말기의 제내방諸乃方도 <이십사시품>을 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예가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가 원문을 필사하고, 정선이 그림을 그려서 ≪사공도시품첩≫을 만들었다.
이처럼 조선의 문예에도 깊은 영향을 끼친 <이십사시품>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해온 동양 미학의 보고였다.
정선은 화첩의 마지막 작품인 <유동> 상단에 '1749년 11월 하순에 겸재가 그린 작품'이라 적어 놓았다.
정선이 일흔네 살 때다.
'1751년 윤 5월에 번천의 견일정에서 쓴 글'이란 구절로 봐서는 정선이 그림을 그린 지 3년째 되는 해에 이광사가 글씨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사공도의 <섬농>은 봄을 주제로 한 시다.
'찰랑찰랑 물 흐르고 봄은 멀리까지 가득한데
그윽하고 깊은 골짜기에서 때때로 미인을 보네
푸른 복사꽃 나무마다 활짝 피고 물가에는 바람 불고 햇살은 따사로워
버드나무 그늘 굽어진 길 위로 꾀꼬리는 이웃하여 끊임없이 날아드네
기분 따라 더욱 가면 더 참된 경치를 알게 되리
만약 없어지지 않게만 할 수 있다면 옛것과 더불어 새로워지리"
<섬농>이란 '가늘고 고운 비단에 꽃나무가 무성한 모양'(가늘 '섬纖' 번화할 '농穠")을 뜻한다.
버드나무 두 그루 사이에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봄기운은 잔잔하게 대지를 적신다.
수양버들은 바람결에 나부끼고 새순이 비단결처럼 반짝인다.
눈처럼 하얀 복사꽃은 여인을 밝게 비춘다.
안개는 오솔길을 돌아 수양버들 이파리를 감싸 안는다.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던 여인이 시심詩心이 일었는지 종이를 펼쳐 시를 짓는다.
청량한 봄바람도 숨을 죽인다.
정선의 그림에 여인이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박연폭포>나 <금강전도>가 상징하듯이 남성들의 세계다.
그래서 여인에게 더 눈길이 간다.
여인의 자태는 우아하면서도 정숙하다.
아름다고도 지성적이다.
정선은 이 여인을 통해 세밀하되 번잡하지 않고, 화사하되 생명력 넘치는 '섬농'의 의미를 기막히게 이미지화한다.
정선의 트레이드마크 trademark(으뜸상징)는 '진경산수'이지만 이 같은 시의도詩意圖(글과 그림이 함께하는 그림)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세상을 뜰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정선이 중년기에 섬세하고 치밀한 필치를 구사했다면, 노년기로 갈수록 정수만 묘사하고 색채도 밝은 것 몇 가지만 사용하는 원숙한 경지를 보였다.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화한 이 시의도의 경지도 그러하다.
친구와 필자는 안동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10여 년을 강의하면서 젊음을 함께했다.
오랜만에 친구와 꽃구경을 하며 <섬농>의 여인을 떠올려본다.
친구는 만나면 편안하고 힘이 되는 존재다.
세밀하되 번잡하지 않고 화사하되 생명력이 넘치는 봄꽃 같은 우정을 그려본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2019. 계명대학교 출판부
2. 구글 관련 자료
2025. 5. 18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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