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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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복 - 불안을 잠재워주고 미래를 꿈꾸게 하다

새샘 2025. 5. 20. 10:42

한 해의 시작을 앞두고 우리는 종종 신년 운세를 본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힘들 때 누군가가 '용한 집'이 있다고 말해주면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귀가 솔깃해진다.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 궁금해하며 점을 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구석기시대부터 인간은 하늘의 대리인인 샤먼 shaman을 통해 하늘의 뜻을 알고자 했다.
지금은 점을 치는 일이 암암리에 하는 일로 다소 그 위상이 격하되었지만, 과거에 점을 치던 이들은 신의 대리자로 여겨지면서 지배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옛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앞날을 점쳤을까?
점복占卜(복점卜占 : 점치는 일)과 관련해 오늘날 전해지는 유물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점복과 함께 발전한 인류의 역사

 
오래전 샤먼은 오늘날 무당 정도로 생각하면 그 역할을 이해하기 쉽다.
무당 또는 무속인에 사용되는 한자 '무巫'를 파자破字(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눔)하면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의 하늘과 땅(二)을 잇는다(ㅣ)는 뜻이다.
인간은 중간자적인 존재로 인격은 있으되 하늘에 닿을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하늘의 뜻을 읽어내는 중개인이 필요했다.

그들이 바로 무인巫人(무당巫堂)이었다.

고대사회는 대체로 제정일치祭政一致(제사와 정치가 일치하는 정치 형태)의 사회였으므로 하늘에 제의를 올리고 신과 소통하는 자가 곧 부족을 다스리는 우두머리 역할을 담당했다.
일기예보를 비롯해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샤먼의 예지력은 곧 부족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수단이었다.

점복은 인류가 자연재해나 전쟁처럼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불가항력적인 위협을 최대한 막고자 했던 노력의 일환이었다.

 
점을 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별자리와 행성의 움직임을 토대로 한 점성술占星術, 생년월일시를 바탕으로 보는 사주四柱, 꿈을 푸는 해몽解夢, 나뭇가지를 뽑아 보는 산통算筒, 관상觀相, 타로 tarot 등 지구상에는 각 문화권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점치는 법이 존재한다.
점복은 인류의 지성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령, 행성 운동의 법칙을 발견한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유명한 천문학자들은 훌륭한 점성술사이기도 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자연과 환경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한 결과는 과학의 발전으로도 이어졌던 셈이다.
 
사실 옛사람들이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점을 쳤는지 따위를 증명할 수 있는 유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나마 점복의 흔적으로 가장 많이 발굴되는 것은 점뼈(복골卜骨)다.

점뼈는 짐승의 뼈로 만들어진, 점을 치는데 쓰던 도구로서 짐승의 어깨뼈(견갑골肩胛骨)를 불로 지진 다음 거기에 새겨진 금을 보고 점괘를 보는 방법 따위가 있었다.
뼈 가운데서도 어깨뼈가 선호된 이유는 가장 얇은 뼈라서 잘 갈라졌기 때문이다.
 
 

○강릉에서 발견된 말뼈 점뼈의 비밀

 

(왼)전남 해남군 군곡리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2,000년 전 점뼈, (오른)강원 강릉시 강문동에서 출토된 말의 어깨뼈 점뼈(출처-출처자료1)

 
점뼈의 풍습은 한반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다만, 상나라와 달리 글자를 새기지 않았을 뿐이다.
그밖에 점을 치는 방식이나 도구 따위는 상나라의 그것과 모두 똑같다.
소나 돼지의 어깨뼈에 구멍을 일정하게 뚫어서 불 위에서 그을린 뒤 갈라지게 한 점뼈가 약 2,000년 전의 마한과 가야 사람들이 살던 서해안과 남해안의 조개무지에서 여럿 발견되기도 했다.
요즘에도 유독 어촌에서 점집이 많은 편인데, 바다만큼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자연환경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점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강릉 바닷가에 위치한 강문동의 늪지대에서 말뼈로 만들어진 점뼈가 발굴된 것이다.

말뼈로 만들어진 점뼈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강문동에서 발견된 점뼈가 유일하다.

중국 상나라에서는 남방 바닷가에서 잡아온 귀한 거북의 등딱지를 짐승의 어깨뼈 대신 쓰기도 했지만, 말뼈는 사용한 적이 없다.
말의 사육과 이용이 가장 활발했던 초원 지역에서도 말뼈로 만들어진 점뼈는 거의 없다.
이들에게 말은 귀하게 돌보며 타는 동물이지 잡아먹고 남은 뼈로 점을 쳐도 되는 동물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볼 때, 강문동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점뼈용 뼈로 말뼈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말을 탈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소나 돼지 같은 가축으로 인식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강문동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 가운데는 말타기와 관련된 도구는 없으니 이들이 말을 타지 않았다는 짐작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말뼈로 만든 점뼈는 어떻게 출토된 것일까?
유물의 존재만으로 정확한 해석이 불가능할 때, 해당 유물의 쓰임과 유래를 이해하는데 역사 자료가 큰 도움이 된다.
사료에 따르면, 1세기 초에 함경남도와 강원도 북부 일대 지역(동해안 지역)에 동예라는 부족국가가 존재했다.
동예는 풍속과 언어가 고구려와 비슷했는데, 광개토대왕 시절 고구려에 복속된다.
그런데 동예인들 사이에서 조랑말인 '과하마果下馬(사람을 태우고서 과실나무 밑으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말)'가 유명했다고 한다.
대관령을 비롯해 강릉 주변의 산악지대는 종마장으로 삼기에 아주 탁월한 지역이다.
즉, 강문동에서 발견된 말뼈로 만들어진 점뼈는 가축처럼 말을 키웠던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면서 말을 잡아 점을 쳤던 증거다.
 
이처럼 지역에 따라 점뼈의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가령, 초원지대에서는 양뼈로 점을 쳤다.
그밖에도 목축 동물의 내장을 갈라서 그 형태를 살펴보거나 발굽을 불에 구워서 형태가 변하는 것을 보고 점을 치기도 했다.
역사 기록을 보아도 부여에서는 짐승의 발굽을 가지고 점을 쳤다고 쓰여 있다.
이는 북방 초원지대 유목민들은 짐승의 내장을 갈라서 그 위치를 보거나 발굽을 보고 점을 친다.
 
 

2,000년 전 몽골의 흉노 무덤에서 발견된 샤가이(출처-출처자료1)

 
몽골에서는 '샤가이 Shagai'라고 불리는, 양의 발가락뼈로 만든 주사위로 점을 치기도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점집에서 쌀이나 동전을 뿌리며 점을 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대 흉노의 무덤을 발굴하면 거의 빠짐없이 이 샤가이가 발견되는데, 샤가이 겉에는 특이한 부호가 새겨져 있다.
고대 흉노인들은 놀이를 하듯 이 샤가이를 던지면서 자신들의 앞날을 점쳤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점복

 

점을 치는 바이칼 지역 부리야트족 샤먼. 점을 치는 풍습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출처-출처자료1)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점을 보러 다닌다.
삶의 많은 부분이 인간의 통제 범위 안에 들어왔다고 해도 여전히 손쓸 수 없는 운명의 장난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관계나 생사의 문제는 기술의 발달에 의지할 수 없는 아주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문제다.
세계적(글로벌 global) 자본주의가 확대됨에 따라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된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이는 인간이 구축한 시스템의 문제다.

먼 훗날에도 점을 치는 인간의 행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은 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의 DNA에 새겨진 아주 강력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본능을 거꾸로 뒤집어 생각하면 다른 관점이 열린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불안감의 이면에는 미래에 희망을 거는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다.
지금은 내가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다가올 미래에는 괜찮을 거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 우리는 점을 본다.
나의 미래를 미리 알아 대비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다가올 시간을 잘 살아내고자 하는 바람과 욕망이 담겨 있다.

그러고 보면 점복은 인류가 생존을 갈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지금까지 어어질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삶은 무릇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곳에 존재하기 마련이기 말이다.
 
1. 강인욱 지음,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흐름출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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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5. 20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