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고고학자의 유물 분류법 본문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유물 속에서 고고학자는 능숙하게 유물을 분류하고 정리한다.
도대체 파편으로 남은 것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할까.
고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삼시기법三時期法'(인류가 사용한 주요 연장으로 석기·청동기·철기의 세 시대로 구분하는 방법)이란 용어를 거의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라고 하면 쉽게 알아들을 것이다.
삼시기법은 이렇게 돌, 청동, 철이라고 하는 세 물질을 기반으로 과거의 시대를 나누는 방법을 말한다.
누구나 역사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용어 뒤에는 글자가 없는 시대의 유물을 나누고 인간의 역사를 연구해야 하는 고고학자의 고충이 숨어 있다.
역사책은 마치 일기장에 비유할 수 있다.
쉽게 알 수 없는 자신의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런데 자기 추억은 일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옛날 사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품, 그리고 몇십 년 전 가슴 설레며 받았던 이성친구의 선물까지 자기 삶의 순간순간에 물건이 보여주는 기억은 일기의 한 쪽(페이지 page)과는 다르다.
일기와 다락방 속의 물건이 개인의 역사라면, 인류의 역사는 훨씬 더 복잡하다.
몇백만 년에 이르는 다양한 맥락과 환경 속에서 땅속에 묻혀 있으니, 매번 새롭게 발견되는 유물들 뒤에는 언제나 다른 역사가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인류의 몇백만 년 역사에서 역사가 기록된 시대는 기껏해야 5,00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인간 역사 99.9퍼센트는 말 없는 유물 속에 숨어 있는 셈이다.
박물관에 가면 박물관의 학예사는 잡다하게 엉켜 있는 수많은 유물을 마치 솜뭉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물레처럼 솜씨 좋게 방마다 차례로 유물을 정리해서 전시한다.
그렇게 몇백만 년을 이어온 인류의 역사를 진열하는 비결은 바로 인류 진화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유물을 배열하기 때문이다.
비록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인간은 역사의 순간마다 자신을 지능을 동원해서 자연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왔다.
석기, 청동기, 철기에 따라 삼시기법으로 하는 분류도 결국은 우리가 각 시대의 지혜를 동원해서 만들어온 도구의 재질에 따른 분류이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라는 명칭을 잘 알고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이름이 등장한 것은 사실 20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근대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고고학이 시작되면서 고고학자는 수많은 도구를 어떻게 분류할까 고민해왔다.
그런데 이 놀라운 방법이 처음 도입된 나라는 그리스 Greece나 이탈리아 Italia(영어 Italy)같이 고전문명이 발달한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글자나 문명도 발달하지 않았던 덴마크 Denmark 지역이었다.
북유럽 일대는 글자 사용이 아주 늦었기 때문에 박물관에 들어온 수많은 유물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또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정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덴마크의 톰센 Christian Jürgensen Thomsen(1788~1865)이라는 사람이 19세기 초에 그 유물의 재질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즉 생성연대를 모르는 유물은 그것이 만들어진 재질(석기-청동기-철기)로 나눈 것이다.
이후 석기는 다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로 나누었다.
우리가 박물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분류법이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박물관의 분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몇백만 년 이어진 인간의 진화와 발달은 바로 그들이 남긴 도구에 남아있다는 뜻이다.
석기, 청동기, 철기로 이어지는 그 과정은 다른 어떠한 학문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도구로 보는 인류의 삶을 보여준다.
그런 뜻에서 도구의 역사는 고고학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인류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뼈에 새겨진 과거의 삶
몇백만 년 동안 인류는 대부분 석기를 이용했지만 인간생활에 극적인 변화를 이룬 것은 지난 1만 년 사이의 일이었다.
이 시기 동안 삶은 크게 바뀌었는데, 인류의 골격과 DNA는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물게 도구의 사용이 우리 몸에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을 쓰는 인류와 그렇지 않은 인류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얻는 생활의 수많은 이익과 편리는 셀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런 차이가 둘 사이에 진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차이(손가락 개수나 두뇌의 모양)를 만들지는 않는다.
굳이 찾아본다면 볼펜을 잡는 손가락의 굳은살 정도가 있을 것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일반화되기 전에 사람은 일일이 손으로 서류를 썼다.
평생 책상 위에서 일하는 사람은 펜대를 잡은 검지와 중지에 굳은살이 박이곤 했다.
그래도 이런 정도만 가지고 도구가 인간의 몸을 바꾸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신체를 변형시키는 변화도 있었다.
초원의 기마인은 허벅지의 뼈가 O자형으로 휘어져 있다.
어려서부터 말을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하루 종일 무릎을 꿇고 갈돌로 곡물의 씨를 갈아서 제분했다.
그러다 보면 무릎뼈에 변형이 온다.
현대의 경우 하이힐 high heeled shoes이나 전족纏足 같은 것이 심한 변형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아름다움을 위한 변형일 뿐 실제 도구를 통한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선호하고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체형과 몸의 구조에 사람은 적응해간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편리를 위하여 도구가 발명되면 또 자신의 몸과 생활습관을 도구에 맞춘다.
기마인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도구에 쉽게 적응하는 사람이 더욱 생존할 가능성이 높으니, 계속 사람은 도구에 맞추어서 변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변화가 우리가 사는 짧은 시간에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천 년이 지나면 인간의 삶은 많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한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몇천 년의 진화 과정을 지금도 밟고 있다.
○쓸모 없어진 도구가 말해주는 것
고고학자가 유물을 바라보는 방법은 일반인과 다르다.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작은 유물의 생김새와 보이지 않는 재질의 성분까지, 고고학자는 망각된 과거의 기술을 찾아서 더욱더 세부적으로(디테일하게) 연구한다.
더군다나 도구의 발달은 아주 민감하게 인간 삶의 변화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도구의 발달로 인간의 몸이 변화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능 또한 변화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또한 새로운 도구의 발달은 일방적으로 인간의 발달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에게 도구의 발달은 동시에 망각의 역사라는 점도 잊으면 안 된다.
예컨대 전자계산기의 등장 이후 40~50년 전까지 고등학생에게 필수였던 주판을 튕기는 기술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자동차의 발달로 능숙하게 말을 부리는 기술도 지금도 거의 사라지고 없다.
흔히 미디어나 인터넷상에서 '로스트 테크놀로지 Lost technology'라는 제목으로 춘추시대의 녹슬지 않는 청동검이나 그리스의 앞바다에서 발견된 안티키테라 Antikythera(서기전 1세기 초 고대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천문 위치 계산용 아날로그 컴퓨터) 같은 기술이 등장한다.
그것을 외계인의 기술이라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망각된 과거 기술자들의 비결(노하우 knowhow)을 집약한 기술일 뿐이다.
반대로 그렇게 뛰어난 기술도 지금은 사라졌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나치게 하나의 도구에만 의존하면 그 문명은 멸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도구는 발달했지만 인류의 문명은 멸망을 거듭했다.
도구의 발달과 개량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환경에 다양하게 적응하기 위한 지혜의 소산이었고, 살아남은 자만이 도구를 남겼다.
즉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수많은 유물은 바로 과거 환경을 이겨내고 생존했던 우리 선조의 흔적이다.
인류는 도구를 만들었고, 또 도구는 인류를 만든다.
과연 몇천 년 뒤 인류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한 것은 그 변화의 주체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인간 자신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3. 13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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