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공재 윤두서 '자화상' 본문

글과 그림

공재 윤두서 '자화상'

새샘 2026. 3. 14. 20:01

"천 개의 눈을 가진 자화상"

 

윤두서, 자화상, 18세기 초, 종이에 담채, 38.5x20.5cm, 해남 녹우당(출처-출처자료1)

 

오후 6시, 필자가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raido program에서 신호 음악(시그널 음악 signal music)이 울려 퍼진다.

화가에게 음악은 동반자나 다름없다.

음악은 공기처럼 떠다니며 휴식과 영감을 준다.

이러저리 쌓여 있는 작품들 사이를 돌아 내 자화상 앞에 멈추었다가 탁자 위의 커피 잔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붓을 쥔 손끝을 툭 치는가 하면 흩어져 있는 책들 사이를 맴돈다.

음악이 공존하는 필자 작업실의 정경이다.

 

화가는 저마다 자화상自畫像을 남긴다.

자화상 작업은 모델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미술대학에서 인물화 수업시간의 필수과정이 자화상 그리기였다.

졸업한 뒤에는, 자화상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왠지 쑥쓰러워서다.

그러던 중 작심하고 '천 개의 눈을 가진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가진 적이 있다.

삼십대 후반의 풋풋한 시절, 용기와 열정으로 작업에 몰두한 시기였다.

 

화가라면 자화상을 하나쯤은 남기는데, 자화상이 더 유명한 경우도 있다.

카메라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초상화와 자화상이 유행했다.

그중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자화상>은 내면세계를 섬뜩하게 표현한 걸작이다.

 

자화상은 우선 자신의 내면세계와 진솔하게 마주해야 한다.

살아온 내력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전해져 얼굴로 나타난다.

얼굴에는 한 사람의 일생이 담겨 있다.

그러하기에 삶이 진실하게 표현된 얼굴은 화가의 전신傳神(초상화에서, 그려진 사람의 얼과 마음을 느끼도록 그리는 일)이 된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자화상이 있다.

현실은 혼란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변화를 갈구한다.

그림 세계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공을 세운 이들에게는 신분을 격상시켜 주었다.

사회에는 실생활을 직시하는 실학사상이 나타났다.

회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700년을 전후로 등장한 사실화寫實畵(속화俗畵, 풍속화風俗畵)는 사대부가 아닌 서민이 주인공이었다.

사실화는 사대부 화가들이 먼저 그리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화가로 윤두서를 꼽을 수 있다.

 

윤두서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증손자이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외증조 할아버지다.

가계를 봐도 실학사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당시 노론이 전권을 행사한 시대여서 남인은 출사出仕(벼슬을 하여 관청에 출근함)에서 배제되었다.

남인인 윤두서는 진사 벼슬로 일생을 마쳤다.

박학다식했던 윤두서는 그림에 두각을 보여, 사실화라는 새로운 갈래(장르 genre)를 개척했다.

그림은 중국에서 건너온 남종화풍의 목판본 화보畵譜(그림을 모아서 만든 책)를 보고 스스로 익혔다.

또 마구간에서 하루 종일 말을 보면서 스케치 sketch를 하거나 나무 그림자의 변화를 탐구하고, 머슴을 모델로 미세한 표정까지 스케치하며 기량을 닦았다.

 

윤두서의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화상>이다.

<자화상>으로 그의 성격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

학자의 기운이 감상자의 마음을 압도한다.

무서우리만큼 돋찍기된(클로즈업된 closed-up) 얼굴에서는 카리스마 charisma(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가 작렬한다.
얼굴만 두드러진 것은 화가의 의도가 아니라, 후대에 작품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옷 주름이 없어진 탓이다.

이런 점이 작품의 특징이 되어, 초상화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었다.

 

<자화상>은 파란 많았던 윤두서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팔자 눈썹이 부드럽게 올라가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이 강렬하다 못해 서늘함마저 감돈다.

복스럽게 생긴 콧방울에서 해남 윤씨의 재력을 감지할 수 있다.

단정하게 다문 입은 오히려 부드러워 보인다.

화가의 고집스러움이 한 올 한 올 수염으로 표현되어 강건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보지 못한 아쉬움을 수염 묘사로 달랜 듯, 수염이 표정에 생동감을 준다.

 

윤두서는 서민의 일상생활과 생산적인 활동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주위에서 흔히 보는 동물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남종화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기법으로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

봄에 나물 캐는 여인이나 목기 깎기, 과일을 담은 정물, 밭 가는 그림, 말 그림, 짚신 삼는 그림 따위의 서민의 현실 생활이 그림이 되었다.

그것은 서민의 노동력에 대한 고마움과 그들의 역할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었다.

 

화가는 자화상으로 자신을 되돌아본다.

문인은 '자서전'으로 인생을 정리한다.

위대한 인물은 회고록 집필로 인생의 교훈을 선사하다.

선승禪僧은 열반에 들기 전 임종게송臨終偈頌(죽음을 맞아 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탄하는 노래)으로 도道의 참뜻을 설파한다.

훌륭한 이들은 각자의 행적을 남겨 삶의 길을 보여준다.

 

여전히 나라가 혼란스럽다.

정치가들은 자서전 출판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다지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대중은 안다.

미화하거나 부풀린 자서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자서전은 자화상이다.

자화상을 제대로 그릴 줄 아는 이가 나라의 안정을 이끌 것이다.

윤두서는 사대부이면서 화가로 서민의 일상을 어루만져 주었다.

우리 풍속화의 선구자였던 윤두서의 애민愛民사상이 그립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3. 1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