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돌에 담긴 250만 년 인간의 역사 본문

인간의 역사는 석기石器 stone tools와 함께 시작되었다.
석기란 글자 그대로 돌을 쪼개서 만든 도구를 말한다.
그런데 그냥 깨진 돌과 석기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주 정교하게 만든 화살촉 같은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거칠게 쪼아낸 찍개와 같은 도구는 헷갈리기 쉽다.
인간의 인위적으로 돌을 때려서 깬 경우 깨진 각도가 자연적인 것과 다르며 특정한 형태를 띤다.
그렇게 만들어진 돌과 떼어낸 부스러기(격지라고 부른다)의 형태를 보고 고고학자는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물론 실제로 현장에서 돌을 보면 석기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워낙 차돌같이 단단한 재질이 많은 곳에서는 가공한 석기여도 자연석인 듯 거칠게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면서 돌을 깨고 가공하여 정교한 석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한다.
돌을 깬 사람은 사라지고 없지만 석기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고스란히 세월이 지나도 남아 있다.
그렇게 남아 있는 석기가 몇백만 년 인간의 역사를 증명하는 도구가 된다.
○돌과 함께 시작된 인류의 역사
인류의 진화에서 호모하빌리스(손쓴사람) Homo habilis라는 인류가 등장하는 것은 180만 년 전이다.
이 화석을 발견한 진화인류학자인 리키 Louis Leakey(1903~1972)는 이 고인류를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하빌리스'로 이름 붙였다.
바로 도구의 사용이 인간의 발달에서 중요한 순간이라는 뜻이다.
뒤이어 등장한 호모에렉투스(곧선사람) Homo erectus 단계에서 인류는 아프리카 Africa를 탈출해 전 세계로 퍼졌다.
이후 인류는 역사 매순간마다 인류는 새로운 환경과 고난을 만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애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왔다.
인류는 크게 세 차례에 걸쳐서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인류가 발달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고 한다(여기에서는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현재 학계의 정설에 기반해서 서술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호모사피엔스(슬기사람) Homo sapiens가 세계 다른 지역에서 기원하여 번성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연대도 학자 사이에 다른 의견이 많으니, 크게 세 가지 흐름이 있다는 정도만 이해하기 바란다).
그 첫 번째가 170만 년 전의 호모에렉투스이고, 두 번째는 네안데르탈인 Neanderthals(Homo neanderthalensis)과 데니소바인 Denisovans(Denisova hominins)으로 대표되는 초기 호모사피엔스 단계로, 이들은 약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나와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세 번째는 현생 호모사피엔스로 상당 기간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다가 경쟁에서 이겼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의 진화에는 그들과 함께한 도구가 있었다.
그런데 이 도구의 사용이라는 것은 바로 인간의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도구를 사용하려면 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손을 쓰기 위해서 직립(두발 걷기)을 택했고, 그 결과 인간의 삶은 더 취약해졌다.
반면에 그만큼 대가는 컸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었고, 편리한 도구는 다시 인간을 진화시켰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도구는 돌로 만든 석기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빠른 석기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 Olduvai Gorge in Tanzania에서 발견되었다.
그 연대는 얼마 전까지 약 180만 년 전이었는데, 최근에는 케냐 투르카나 호수 Lake Turkana in Kenya나 에디오피아 Ethiopia에서 250만 년 전후한 시기에 석기가 꽤 많이 발견되고 있다.
250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 일대에서 살던 호모속 Genus Homo이 만든 석기는 거칠게 돌을 깨서 만든 것으로 '올도완 Oldowan 석기'라고 한다.
그리고 180만 년 전 무렵부터는 여기에서 한 단계 발달하여 주먹도끼가 등장했으니, 이것은 '아슐리안 Acheulean 석기'라고 한다.
약 3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는 중기 구석기시대로 한 단계 발달한 거북등날식 석기를 사용했다.
현재의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약 5만 년 전부터 후기 구석기시대를 차지했으니, 이들은 작고 날카로운 좀돌날이라는 석기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그런데 좋은 석기를 만들수록 그것을 만든 인류의 지능이 높아진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일까?
한국과 동아시아 East Asia의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1970년대 후반에 한국의 연천 전곡리에서 발견된 유적은 세계 고고학계에 충격을 주었는데,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는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전기와 중기 구석기시대의 석기류는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서 주먹도끼보다 더 거친 찍개류만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 때문에 하버드대학교 Harvard University교수였던 모비우스 Hallam L. Movius(1907~1987)라는 고고학자는 20세기 중반에 '모비우스의 이론 Mobius Line'을 제시했다.
동아시아의 인류는 서구 Western의 구석기시대 인류와 달리 열등해서 발달된 석기를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인종차별주의로 큰일 날 소리겠지만 당시에는 그의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당시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에서는 제대로 된 석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연천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나와서 오래된 고고학계의 편견을 깰 수 있게 되었으니, 세계 고고학계가 놀란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바로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주먹도끼의 연대가 너무 늦다는 것이다.
전곡리 유적은 약 2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
반면에 아프리카의 호모에렉투스가 만든 주먹도끼는 180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너무나 연대 차이가 크다.
그리고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발견되는 석기는 전반적으로 발달이 안 된 형태이다.
제대로 된 중기 구석기(거북등떼기 기법)의 석기도 거의 없다.
또한 연천 전곡리에서 주먹도끼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먹도끼의 수는 너무나 적고 만드는 방법도 유럽 Europe이나 아프리카에 비해서 너무 거칠다.
전반적으로 아시아의 석기가 매우 조악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왜 아시아는 이렇게 석기가 늦게 발달했을까?
고고학자는 다른 가능성에 주목을 하게 되었다.
바로 인간의 지능이 아니라 환경과 석재 문제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한국은 예전부터 차돌이 풍부한데, 차돌은 잘 깨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석기를 제대로 가공할 수 없으니, 그냥 거칠게 만든 찍개를 더 선호했다.
도구의 역사는 단순한 기술의 발달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술은 각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도구의 유무만으로 사람 사이의 우열을 판단하는 것은 지난 시절의 인종주의적 시각의 연장일 뿐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시베리아의 도구
동아시아가 전기와 중기 구석기시대에 다른 나라보다 부족해 보이는 거친 석기를 더 선호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약 5만 년 전에 시작된 후기 구석기시대가 되면서 완전히 돌변했다.
이때부터 사람은 나무나 뼈로 만든 손잡이에 작고 날카로운 돌날을 끼워서 쓰기 시작했다.
요즘으로 비유하면 면도날을 끼워 쓰는 면도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들은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매머드 mammoth를 사냥하는 노련한 사냥꾼으로 변했다.
사실 이런 석창石槍(돌로 만든 창)은 훨씬 전부터 사용되었다.
독일의 쇠빙겐 Schöbingen in Germany에서는 약 30만 년 전의 하이델베르크인(호모헤이델베르겐시스 Homo heidelbergensis)(네안데르탈인 이전에 존재했던 인류)이 남긴 유적에서 180~250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소나무와 가문비나무로 만든 창의 손잡이가 발견되었다.
여기에 석창을 끼워서 실험해보니 약 70미터를 날아가는 훌륭한 도구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하기 전에 사용되었던 도구는 그들의 멸종과 함께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발달된 후기 구석기시대가 큰 효과를 발휘한 곳은 추운 시베리아 Siberia였다.
추운 곳이라 살기 어려울 수 있었지만, 대신에 추운 지방에서 사는 매머드라는 훌륭한 사냥감이 있었고, 그러한 이점을 최대한 살렸던 매머드 사냥꾼은 돌날을 사용한 사냥도구로 이 지역 곳곳에서 적응하고 살았다.
그리고 이들은 바다 건너 신대륙으로까지 확산되었다.
197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유명한 동부 시베리아의 야쿠티야 Yakutia in Eastern Siberia에서 약 2만 년 전 사람이 살았던 듁타이 D'uktai라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돌날으로 만든 창을 이용해서 매머드를 사냥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만든 도구는 아메리카 대륙 American continent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든 것과 똑같았다.
바로 1만 7,000년 전에 베링해 Bering Sea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간 매머드 사냥꾼의 기원지가 밝혀진 것이다.
이후 시베리아, 특히 바이칼 호수 Lake Baikal 일대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많이 나왔고, 빙하기에 최적화된 도구는 동북아시아와 멀리는 신대륙까지 사람이 이동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이 사람들은 매머드만 잡은 것은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매머드 뼈는 거의 발견된 적이 없다.
가장 추운 함경북도 일대에서 매머드 뼈가 발견되었지만 남한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사람이 매머드를 사냥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면도칼 같은 잘 갈아낸 돌칼을 세심하게 만들어낸 사람은 자신이 사냥할 수 있는 동물에 적합한 무기와 도구를 다양하게 창조했다.
후기 구석기시대 빙하기의 사람이 그 험난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도구의 사용이 아니라 그 도구로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적응력 덕분이었다.
○석기와 휴대폰의 '그립감'
신석기시대라고 하면 우리는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를 떠올린다.
단순하게 돌을 간다고 간석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간석기와 뗀석기(타제석기打製石器)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석재의 선택과 효율성의 문제이다.
잘 갈 수 있는 석재는 따로 있고, 또 만드는 과정과 드는 시간과 비용도 차이가 크다.
사실 돌을 갈아서 석기는 만드는 방법은 구석기시대부터 존재했다.
한국에서도 전남 장흥군의 신북 유적에서 약 2만 2,000년 전의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굴되었고, 여기에서 간석기도 함께 발견되었다.
석기는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도 계속 쓰였다.
고인돌로 대표되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비파형동검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비파형동검은 별로 쓰이지 않았고, 고인돌을 만든 인간은 대부분 돌을 갈아서 만든 돌검劍(석검石劍)을 썼다.
심지어 김해 진동리의 고인돌에서 발굴된 비파형동검은 그 날을 갈아서 돌검처럼 만들기까지 했다.
아마 당시 족장은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도구로 청동기보다는 그동안 오랫동안 써왔던 간돌검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석기는 이후 철기시대에도 여전히 쓰였다.
두만강 유역 일대의 옥저인은 철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하는 한편 여전히 거칠게 돌을 쪼아서 만든 곰배괭이(흙을 파거나 씨를 뿌리기 위해 골을 켤 때, 그리고 덩어리진 흙을 잘게 부수거나 땅을 판판하게 고를 때 쓰는 농사도구 가운데 하나)를 만들어 사용했다.
석기는 단순한 원시적인 도구라고 볼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주변의 환경을 최대한 활용했고, 적절한 도구를 선택해서 가장 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했다.
도구는 이렇듯 인간 지능의 발달과 다양한 환경에 적응했던 인간의 능력을 보여준다.
흔히 석기라고 하면 미개한 이미지 image(심상心象/心像)의 털복숭이 원시인이 거칠게 돌을 깨는 모습을 생각한다.
하지만 고고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석기를 만드는 조상의 감각이 지금도 이어지는 것 같다.
엉뚱하게 들이겠지만, 최첨단 스마트폰 smartphone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보통 스마트폰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직접 손에 집고 흔히 말하는 '그립감感 feeling of grabbing'을 느낀다.
무겁지 않은지, 손에 착 감기는지 오감으로 그 기계를 느낀다.
과거 고인류도 현재 우리가 느끼는 오감으로 돌을 들고 이러저리 깨고 손으로 몇십 번 잡으면서 그 감으로 석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필자는 구석기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구석기를 직접 만지고 연구할 일은 많지 않다.
다만 러시아 알타이 지역 Altai region of Russia을 조사할 때는 노벨상 Nobel Prize의 산실이었던 데니소바 동굴 Denisova Cave 근처에 설치된 연구 기지를 중간 기착지로 삼는다.
데니소바 동굴에서는 1년에 6개월 가까이 사람들이 상주하면서 발굴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가면 오랜 친구인 발굴단장 미하일 슌코프 Michael V. Shunkov(1953~ )는 동굴 옆의 현장 정리실에서 갓 발견된 유물을 들고 설명하고 우리는 토론한다.
유물이 정리된 탁자 위에서 하나하나 집으며 설명을 듣다 보면 몇십만 년을 건너서 손에 잡고 고민하며 돌을 깨던 고대인의 감각이 느껴지는 듯하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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