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추사 김정희 '세한도' 본문
"<세한도>를 품고 추위를 녹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변화를 꿈꾼다.
'유행 선도자(트렌드세터 trend setter)'들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
새로운 유행을 만들며 시대를 선도한다.
그림에도 유행이 있다.
시대마다 계보를 형성하며 큰 맥을 이어왔다.
'파派'를 주도하는 선각자에 의해 문화는 다양해지고 역사는 발전한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한글문학과 판소리,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와 같은 우리 것을 노래하고 표현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꽃은 피면 지듯이 진경시대는 조선 말기가 되면 새로운 문화의 기류로 인해 서서히 막을 내린다.
변화가 창조를 만들듯이 그 정점에 '문화의 왕' 정조가 있었다.
정조는 순수정통 학문과 예술을 정립하는 차원에서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선포한다.
학문과 예술의 정체성을 '중국의 고전에서 찾자'는 취지였다.
미술에서도 당연히 청나라의 회화를 받아들여 관념적인 문인화가 유행하였다.
조선시대 말기 문인화 유행의 중심에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있었다.
추사의 문인화 가운데 <불이선란不二禪蘭> 외에 <세한도歲寒圖>가 명품으로 꼽힌다.
추사의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1804~1865)에게 그려준 <세한도>는 엄혹한 세한歲寒(설 전후의 추위라는 뜻으로, 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를 이르는 말)의 계절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추사 김정희는 서예가이자 화가로서 청나라의 금석학金石學(금속과 석재에 새겨진 글을 대상으로 언어와 문자를 연구하는 학문)과 고증학考證學(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일정한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혀 나가는 학문)을 조선에 정립한 국제적인 학자이기도 했다.
명석한 두뇌와 명망 높은 가문, 천부적인 소질로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았다.
실학자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추사가 여섯 살 때 쓴 '입춘대길'을 보고 그가 신동임을 알았다.
박제가는 자청해 추사의 스승이 된다.
김정희는 '금수저' 출신이었다.
출세가 보장된 그의 곁에는 세력가와 문자가들이 모여들었다.
신분이 높아 신문물을 접하는 기회가 많았다.
1809년에는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燕京(청나라 수도 베이징을 가리키는 별명)에 간다.
그곳에서 체험한 청의 문화와 예술에 충격을 받는다.
특히 연경에서 만난 금석학의 대학자 옹방강翁方綱(1733~1818)과 완원阮元(1764~1849)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들에게서 금석학과 고증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귀국한 뒤 김정희는 청의 예술과 문화, 학문을 도입해 국제정세에 맞는 조선 말기의 문화를 이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다.
제주도 유배를 시작으로 김정희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걸린 대가는 컸다.
1840년부터 1849년까지 9연 동안의 제주도 유배생활은 고통스러웠다.
본성이 부지런하고 학문을 즐긴 그는 실의에 빠져 있기보다 제주도에서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한다.
주어진 고난을 예술세계 연마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불교학자 김약슬金約瑟(1913~1971)은 "추사는 해동海東(발해渤海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예전에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의 유마거사維摩居士(비말라키르티: 석가모니 부처의 출가하지 않은 재가在家 제자)라 불릴 정도로 불교 교리에 박식했고, 저술과 예술에는 불교의 정신이 매우 깊게 서려 있다"고 했다.
당대의 대선사인 백파白坡(1767~1852)와 논쟁을 벌였고,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와는 제주도에서 6개월 동안 함께할 정도로 우정을 나눴다.
김정희가 제주도로 떠나던 날, 사람들은 그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적은 달랐다.
그는 역관으로, 연경에 갈 때마다 김정희가 부탁한 책들을 구해서 제주도로 보냈다.
많은 문하생이 김정희에게 등을 돌렸지만 이상적만은 스승에 대한 태도가 한결같았다.
그런 제자에게 1844년 제주도에 유배온 지 5년째 되던 해 여름에 김정희는 <세한도>를 그려준다.
그림은 꼭 유배지에서 사는 자신의 풍경을 그려놓은 것 같다.
그림 옆에는 ≪논어論語≫ 한 구절인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세한연후歲寒年後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凋)'는 글로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황량하고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정적이 감돌 만큼 고졸古拙(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음)하지만 정갈하다(깨끗하고 깔끔하다).
집 한 채와 잣나무 세 그루, 노송 한 그루가 소재의 전부다.
그림은 물기 없는 갈필渴筆(그림을 그릴 때 쓰는, 빳빳한 털로 만든 붓)로 그렸다.
집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모진 풍파를 견딘, 휘어진 노송이 서 있다.
그 곁에는 노송을 부축이라도 하듯 잣나무가 곧게 뻗어 있다.
자신과 제자를 상징하는 것 같다.
집 왼쪽에는 두 그루의 잣나무가 직립해 있다.
집에는 둥근 창을 내서 세상을 향한 마음을 전한다.
오른쪽 화면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완당阮堂'의 호가 보인다.
나무는 쓸쓸하지만 꿋꿋하게 집을 지키고 있다.
날마다 좋은 날은 없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날 때가 있다.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이가 김정희였다.
그는 문인화를 심화시키며 한 세기를 풍미風靡(바람에 초목이 쓰러진다는 말로,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사조 따위가 널리 사회에 퍼짐)했다.
녹음이 짙은 여름에는 나무의 본모습을 알지 못한다.
낙엽이 진 뒤 나무는 바로소 고난과 역경을 견뎌낸 흔적을 드러낸다.
인간도 권세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지만 힘을 잃으면 추풍낙엽 신세다.
그것도 세상 이치가 아닌가.
그래도 사람이 눈꽃보다 아름답다.
12월에 <세한도>를 품고 고마운 이들을 그려본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3. 17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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