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토기의 깨진 조각이 보여주는 역사의 퍼즐 본문

고고학을 꿈꾸는 대부분의 사람은 화려한 금관을 생각한다.
하지만 구석기 전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고학자는 토기를 만지며 일생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으로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발굴장을 찾아갔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고무장갑을 끼고 갓 발굴해 온 토기를 칫솔로 문질러 닦는 일이었다.
흙을 뒤집어 쓰고 허리도 제대로 못 펴면서 흙 구정물 속에서 솔질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참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좀 적응이 되니 재미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리저리 솔질을 하면서 흙속에서 잘 안 보이던 토기의 무늬가 드러나는 광경은 때로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닦아낸 토기는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잘 말린다.
유물 정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토기 조각에는 일일이 잘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출토지 일련번호를 적어야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조각 이어 붙인 토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토기 조각 하나하나에 깨알같이 일련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귀한 유물에 뾰족한 펜촉으로 긁어서 번호를 적는다는 것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별도의 종이에 적거나 스티커를 붙였다가 나중에 떨어지거나 하면 유물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그러니 보기 흉하더라고 직접 유물 위에 적어야 한다.
단 , 이러한 일련번호는 토기의 뒷면같이 실제 유물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부분에 쓴다.
이후 실습실로 가져온 유물은 넓은 탁자 위에 펼쳐 놓는다.
고고학자를 위한 퍼즐 맞추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벌여놓은 토기를 접착제로 다시 붙이는 지루한 작업을 해야 한다.
지금은 록타이트 loctite라는 접착제를 주로 쓰지만, 예전에는 일반 본드 bond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복원된 토기는 실측이라고 하는 일종의 설계도를 그리고 사진 촬영을 거치면서 많은 시간에 걸쳐 정리한다.
○흔해 빠진 토기의 가치

토기는 고고학의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고 양도 많다.
그 이유는 당연하지만 흙을 구워서 만들었기에 썩지 않아서 그 양이 많기 때문이다.
토기의 기본적인 기능은 음식물의 저장이다.
물론 가마니나 풀, 목제 그릇도 그런 기능을 하지만 이런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고고학 자료로서 토기가 가진 장점은 즉시성에 있다.
토기는 금방 깨지기 때문에 여러 번 구워야 한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살면서 엄청나게 많은 토기를 만들고 또 깨서 버린다.
게다가 토기 표면에는 다양한 무늬를 그리거나 새겨 넣는다.
마치 몇 년을 주기로 자주 바꾸는 휴대폰처럼 토기는 시간에 따른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그리고 각 문화의 사람은 자신만의 독특한 그릇을 만들어낸다.
만약 현대를 미래에 발굴한다고 가정해보자.
식당가를 발굴하면 중국집, 파스타집, 한정식집은 비록 요리 재료는 남아 있지 않더라도 출토된 그릇은 서로 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 지역의 사람은 자신만의 독특한 그릇을 사용한다.
토기는 지역 끼리의 교류를 증명하기도 한다.
보통 토기는 선사시대에 여성이 주로 만들었다.
그리고 각 주민은 자신만의 독특한 무늬를 토기에 새겨 넣고, 그 작업을 습득한다.
어머니에게서 기술을 전수한 딸은 결혼을 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인간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배우자는 최대한 먼 곳에 선택했고, 그러한 결혼을 매개로 사람들은 이동했다.
새로운 곳으로 시집간 여성은 자신이 배운 기술로 토기를 만들기 때문에 두 집안의 토기 기술과 무늬가 혼합된다.
실제 고고학 현장에서 토기를 분석하면 정말 다양한 무늬와 형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쨌거나 수많은 교류의 흔적이 그들의 토기에 반영되는 셈이다.
현장에서 작은 토기 조각 하나를 들어 이거는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고구려시대, 신라시대, 백제시대라고 고고학자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승 이러한 토기의 특성 때문이다.
○왜 빗살무늬토기는 뾰족하고 무늬가 새겨졌을까

고고학 강연을 하면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질문하는 문제는 왜 신석기시대에 빗살문을 새겼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토기를 빚고 그 위에 일일이 선을 그어서 무늬를 만드는 것은 무척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게다가 각 지역은 자신만의 독특한 무늬를 만들었으니 큰 의미가 숨어 있음은 분명하다.
자연현상(태양, 번개, 구름)을 묘사했다는 설도 있고 고대의 세계관을 표시했다는 견해도 있다.
아쉽게도 고고학이 그 숨겨진 뜻을 밝히기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빗살문은 한국뿐 아니라 유라시아 북반구 전체에서 모두 유행한 풍습이다.
약 8,000년 전부터 300년 전 러시아인 Russian이 시베리아 Siberia로 밀려오기 전까지도 핀란드 Finland와 오스트리아 Austria같은 유럽 Europe에서 한반도와 시베리아 Siberia, 나아가 아메리카 Amecica 신대륙에도 빗살문이 등장한다.
특정한 나라의 유산이 아닌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편 왜 뾰족하게 만들었는지도 재미있는 질문이다.
신석기시대에는 주로 바다와 해안가에서 살았기 때문에 모래땅에서 사용하기 좋게 만들었다는 주장, 불 위에서 요리를 하면 열기가 골고루 퍼지기 때문에 타원형으로 만들었다는 주장 따위의 여러 가지 가설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비슷한 환경에서 밑이 뾰족한 토기가 나와야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유라시아 Eurasia 전역에서 밑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서남부 지역을 제외하면 바이칼 호수 Lake Baikal 일대와 우랄산맥 Ural Mountains 지역에서 나올 뿐이다.
나머지 지역은 다 밑바닥이 평평하다.

토기 형태를 무조건 실용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밑이 뾰족하다는 것은 어쨌거나 실제로 사용하려면 분명 불편한 것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진 전통인지도 모른다.
실용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풍습이 문화의 일부가 되면 불편함을 잘 못 느끼거나 그냥 참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주변에도 실용적인 기능은 전혀 하지 않지만 오히려 목을 죄는 답답함을 주는 넥타이, 그리고 뼈의 변형은 물론 골절의 위험이 높은 하이힐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뾰족한 바닥의 토기는 아마 그 토기를 세울 때는 땅을 파서 반쯤 묻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당시 사람은 그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고고학자의 답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이 고고학의 본질이다.
물질을 통해 연구하기 때문에 분명한 논리와 수치를 통해 제시할 수 없다면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러한 질문 자체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꾸준히 토기의 용도와 기능에 대해서 토론과 연구가 이루어진다.
또한 지금도 선사시대의 생활을 지속하면서 토기를 직접 만들어 굽는 사람에 대한 비교연구도 이어진다.
당분간은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그 답을 기다려보는 것이 어떨가?
봄과 가읊에 필자가 속해 있는 사학과는 학과 답사를 다닌다.
유적지에 내리면 다른 역사 전공 선생님들은 주변의 풍광을 보는 데에 반해 고고학 전공인 필자는 버릇처럼 땅바닥을 눈으로 훑으며 지나간다.
습관적으로 토기를 찾는 것이다.
영화 속 고고학자는 신나게 모험을 하지만, 실제 고고학은 사소한 유물 속에서 끈기 있게 과거의 조각을 찾아내는, 모험심보다는 과거에 대한 탐구와 끈기가 필요한 직업이다.
토기 한 점 한 점은 지금은 사라져 버린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물이다.
토기는 출토 양도 많고 지역마다 다양한 차이가 있다.
자그마한 유물에서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찾고, 또 그 속에서 과거의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고고학의 진정한 기쁨이다.
※출처
1. 강인욱 지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김영사, 2024)
2. 구글 관련 자료
2026. 3. 24 새샘
'글과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탄은 이정 '설죽' (0) | 2026.03.26 |
|---|---|
|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21장 국가란 무엇인가? 영토, 국가, 그리고 시민(1848~1871) 2: 내셔널리즘과 1848년 혁명 2-오스트리아 제국 (0) | 2026.03.24 |
| 뇌과학의 역사 5 - 뇌의 운동 영역과 감각 영역의 발견 (0) | 2026.03.21 |
| 학산 윤제홍 '옥순봉도' (1) | 2026.03.20 |
| 코핀과 스테이시의 '새로운 서양문명의 역사' – 6부 혁명의 시대 - 21장 국가란 무엇인가? 영토, 국가, 그리고 시민(1848~1871) 1: 서론 및 내셔널리즘과 1848년 혁명 1-1848년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와 독일 국민 (1) | 2026.03.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