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학산 윤제홍 '옥순봉도' 본문
"서툰 듯 큰 솜씨에 마음을 놓다"

어리숙하게 산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내실이 꽉 찬 사람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어도 설익은 처지에서는 어디 그럴 수 있는가.
빛의 본성이 밝기에 구름이 가린다고 '밝음'이 사라지지 않듯이, 내공이 튼실한 사람은 빛을 좇기보다는 오히려 감춘다.
화가에게 빛은 생명일 수 있다.
감상자에게 어떤 빛을 비출 수 있을까 고민한다.
필자는 어리숙한 듯 강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 좋다.
화가는 잘 그리기도 어렵지만 타고난 재능을 감추기도 쉽지 않다.
서툴지언정 순진한 그림, 필자도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화가에게도 자신이 사랑하는 화가가 있다.
흠모하는 화가의 작품을 임모臨摸(글씨나 그림 따위를 본을 보고 그대로 옮겨 쓰거나 그림)하거나 그의 행적을 추적하며 사상에 영향을 받는다.
필자가 좋아하는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1764~1840?)은 기교보다 문인정신文人精神(문인이 품은 뜻을 말하며,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즉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로 표현)이 빛나는 작품을 남긴 화가다.
그의 <옥순봉도玉筍峯圖>를 보면 마른 가슴에 번개가 친다.
'대교약졸大巧若拙', 큰 솜씨는 서툴러 보이는 모양이다.
그림의 기법과 작화作畵 태도가 특이하고 실험정신이 강하게 묻어난다.
빼어나게 아름답진 않으나 뭉근해서(세지 않은 불기운이 끊이지 않고 꾸준해서) 마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다재다능한 화가들이 넘쳤다.
경제의 활성화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그림을 소장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화가들의 위상이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또 여행 붐 boom(대유행)을 타고 명승지를 찾아서 절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첩이 유행하였다.
윤제홍의 작품 역시 여행을 하며 절경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윤제홍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794년 서른한 살에 문관으로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정3품을 역임하면서 파직과 유배를 당하거나 복직을 반복하면서 파란 많은 생을 살았다.
그는 시문詩文(시가詩歌 즉 시 문학과 산문散文)에 능하여 문장이 뛰어났고, 그림에도 능력을 발휘하였다.
당대에는 산수화와 사군자를 잘 그렸는데, 그림에는 문기文氣(문장의 기세)가 가득하였다.
능호관 이인상과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의 작품을 모사模寫(어떤 그림의 본을 떠서 똑같이 그림)하거나 중국의 화보집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을 보며 그림 실력을 쌓았다.
그렇게 해서 자기만의 기법과 개성을 발휘한 남종문인화를 계승하였다.
굴곡진 인생이었지만 한때는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며 명성을 높인 시절이 있었다.
1803년 안동김씨가 12폭의 병풍 <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를 제작하는데, 윤제홍을 비롯한 당대의 유명한 문인과 화가들이 참여하였다.
그중 윤제홍은 제4폭인 <송애도松崖圖>를 그려서 산수화의 위세를 더했다.
청풍부사 시절에는 단양을 여행하며 절경을 진경산수화로 남겼고, 문신이면서 화가인 자하 신위와 어울려 시회詩會를 가지며 시로 문답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남종화에 서양화법을 수용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한 이색화풍異色畵風을 창출한다.
담백淡白하고(빛깔이 진하지 않고 산뜻한) 청아淸雅한(속된 티가 없이 맑고 아름다운) 설채법設彩法(먹으로 바탕을 그린 다음 색을 칠하는 기법)과 묵법墨法(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의 구사로 참신한 화풍을 선보였다.
<옥순봉도>는 깎아지른 바위 세 개가 푸른 나무색 무늬의 머플러 muffler를 휘두르고 서 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붙어 있는 바위를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것처럼 그렸다.
1봉과 2봉 사이에 제발題跋(책의 첫머리에 그 책과 관계되는 노래나 시 따위를 적은 글인 '제사題辭'와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인 '발문跋文'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달아서 문기文氣를 발산한다.
제발에는 소석 김시랑, 천상 윤세마, 다불산인 권이와 함께하며, 학산구구옹鶴山九九翁이 그렸다고 썼다.
담백한 먹향이 바위 안을 투명하게 비추는 것만 같다.
기이하게도 윤제홍은 '지두화법指頭畵法'으로 그림을 그렸다.
지두화법은 붓 대신 손가락의 끝부분(지두)을 사용하여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신선한 감각이 물씬 풍긴다.
붓의 세밀하고 날카로운 선묘線描(선線으로만 그림) 대신 뭉게구름처럼 떠다니는 듯한 먹색 구사가 일품이다.
유람객들은 한벽루寒碧樓에서 강을 따라 유람을 하다가 절경인 옥순봉玉筍峯을 마주한다.
그중 한 사람은 물 밖으로 나가 3봉과 2봉 사이에서 피리를 불고 있다.
강물은 잠잠한데, 푸른 소나무는 굽어보고 대나무는 피리 소리에 박자를 맞추듯 바람소리를 낸다.
희고 푸른 옥순봉이 유람선을 따라 함께 흥에 젖는다.
미술사가 최순우는 "윤제홍의 작품이 필세가 거칠고 밀도가 모자라는 느낌이 있지만 화의畵意(그림 속에 나타난 뜻)가 맑기로는 이를 데가 없다"고 했다.
윤제홍은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이색적인 화풍을 선보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나, 그의 작품에 대한 평은 자하 신위가 ≪경수당집警修堂集≫에 언급한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또한 현존하는 작품도 많지 않아서 크게 조명 받지는 못했지만 석창 홍세섭 따위가 그의 청신한 화풍을 이어 받아 근대화풍을 열었다.
화가에게 소재는 생명이다.
재료를 최대한 살려서 소재에 피를 돌게 하고, 적절한 기법으로 기운을 불어넣는다.
윤제홍은 자신만의 기법으로 소재의 신비감을 극화했다.
그의 문인정신이 깃든 작품은 서툰 듯 구수하게 마음을 밝힌다.
새해 초다.
마음가짐을 단속한다.
좀 더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리숙한 그림에 매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출처
1. 김남희 지음, '옛 그림에 기대다',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3. 20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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