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7 - 왕버들 본문

버들 가운데 가장 굵고 크게 자라며 장수하기 때문에 왕버들이다.
물가에 잘 자라므로 고목은 가운데가 잘 썩는다.
목재 속에 포함된 인燐이 밤에 파랗게 보이므로 여름날 도깨비불(인燐)의 근원지가 되기도 해 '귀류鬼柳'라고도 부른다.
한반도가 원산지로서 중부 이남에서 자라고, 일본·중국·타이완에도 서식하는 키 10~20미터, 굵기 1미터의 버드나무과 버드나무속의 암수딴그루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다.
학명은 살릭스 차에노멜로이데스 Salix chaenomeloides, 영어는 Giant pussy willow(거대버들 즉 왕버들), 한자는 귀류鬼柳 또는 하류河柳로 쓴다.
○도깨비불


버드나무에는 가지가 늘어지는 것과 위로 곧게 서는 종류가 있으며, 우리나라 곳곳에서 크게 자라는 왕버들은 가지가 위로 서고 흔히 정자나무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왕버들은 줄기가 굵고 몸집이 커서 웅장한 맛을 풍긴다.
비교적 오래 사는 나무로, 오래 살다 보면 줄기의 일부분이 썩어서 큰 공동空洞(물체 속에 아무 것도 없이 빈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옛날 도깨비에게 혹을 도둑맞은 노인이 나무줄기의 공동 안에서 밝은 달을 쳐다보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동화가 있는데, 우리나라 상황으로 보아서는 그 나무가 왕버들이었다고 생각된다.
높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날이 저물어 나무 공동 속에 들어갔다면 그 높은 산에 왕버들이 있었겠는가 싶지만, 옛이야기를 놓고 굳이 과학성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도깨비는 고목古木에 살고있는 나무의 요정 또는 나무의 신이라 할 수 있다.
왕버들은 한자로는 '귀류鬼柳' 또는 '하류河柳'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왕버들의 새 순이 붉은색을 띠고 있어서 적아류赤芽柳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왕버들의 공동에는 어두운 밤에 종종 불이 비치는데, 비오는 밤에 나무가 비에 젖으면 불빛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목재 안에 들어 있는 인燐 성분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인화燐火라고도 하고 우리 조상들은 귀신불(귀화鬼火)로 불렀다.
비오는 밤 왕버들 주변에는 도깨비들이 모여든다고 해서 '귀신 버드나무(귀류鬼柳)'라는 한자 이름을 얻었고, 시냇가에 잘 난다고 해서 '하류河柳'라는 이름을 얻었다.
옛 어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서울 청량리 일대는 왕버들과 오리나무 벌판이었다고 한다.
그 숲이 사라지고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거목 왕버들

왕버들은 군자君子의 나무이다.
'유단사장柳短莎長'이란 군자가 불우한 처지에 있고 소인배가 잡초처럼 무성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길어야 할 버드나무 가지는 짧고 짧아야 할 사초莎草(벼과식물의 여러해살이풀)가 길게 되었으니, 세상이 말이 아니란 것일까?
왕버들은 지난날 우리나라 곳곳에서 큰 나무로 자라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경주에 있는 천경림天鏡林이란 숲에는 원래 왕버들이 뒤덮고 있었고, 신라 법흥왕 때 이 천경림의 나무를 베어 정사精舍(절, 사찰寺刹)를 세웠다는 것이다.
기둥감, 큰 동량棟梁(마룻대와 들보를 아울러 이르는 말)감의 나무가 모두 이 숲에서 얻어졌다고 한다.
이때 정사라 하면 흥륜사興輪寺가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로 10여 년이란 긴 세월이 걸려 건립한 대가람大伽藍(가치가 높거나 규모가 큰 절)인데, 건축재는 천경림을 비롯한 주변의 숲에서 얻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땅이 낮고 습기가 알맞아 왕버들도 그곳에 무성한 자람을 보였을 것이다.
경주에는 왕가王家(왕의 집안) 숲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 숲은 왕버들, 소나무, 팽나무 따위로 구성되었다고 전한다.
왕가 숲에는 귀신과 얽힌 전설이 있다.
즉 신라 26대 진평왕의 집사인 비형鼻荊은 많은 귀신을 통솔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하룻밤 동안에 귀신들을 모아 큰 돌다리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 돌다리를 귀교鬼橋라 불렀다.
비형은 길달吉達이라는 귀신을 추천해서 정치를 잘 할 수 있도록 했으나, 어느 날 길달이 도망을 치자 비형은 다른 귀신을 보내 길달을 잡아 죽였고, 그 뒤부터 모든 귀신들은 비형을 매우 무서워했다는 것이다.
이후 비형을 가사歌辭(조선 초기에 나타난, 시가와 산문 중간 형태의 문학)로 한 것을 써서 대문에 붙여 두면 좋지 못한 귀신을 물리친다는 향속鄕俗(시골의 풍속)이 생겨났으며, 이를 목랑木郞 또는 두두리豆豆里라고 했다.
왕가 숲은 목랑을 모시고 제사 드리는 곳으로 되었다.
인간이 재앙을 면하려면 뭇 귀신을 통솔하는 지배자 격인 귀신에게 부탁하는 것이 옳고, 그러한 신을 모시는 곳으로는 하늘에 가까운 산이 합당하나 산이 없는 평지에서는 높게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모인 숲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랑을 거목들이 자라는 왕가 숲에 모시고 제사 지낸 것이다.
소나무나 왕버들이나 팽나무는 거목으로 자라며 오래 살고 보기에도 위풍당당하다.
또한 왕버들의 줄기에는 큼직한 공동이 있어 귀신이 거처하기에 적당했다고 생각되었다.
경주에는 이 밖에도 왕버들로 된 숲이 더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제방에 왕버들을 심어 하천과 불길을 보호하고 다스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남 김해 수로왕릉 주변에도 왕버들, 오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따위가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문헌에 등장하는 왕버들

왕버들을 비롯해서 버드나무나 포플러 종류는 모두 늦봄이 되면 흰 솜털을 단 가는 열매(종모種毛, 씨털)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많이 날아다닐 때에는 눈이 날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흰 솜털은 씨(종자種子)에 붙어 바람을 타고 먼 곳까지 옮겨가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옛 사람들은 이것을 유서柳絮, 양화楊花 또는 유화柳花라고 불렀다.
유서는 버들솜으로, 양화는 양버들의 솜으로, 유화는 버들꽃(버들개지)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버들꽃이라 흔히 부른다.
≪동의보감≫에서는 유화(버들꽃, 버들개지)는 약으로 쓰고, 이것이 마르면 유서(버들솜)로 된다고 했다.
버들꽃이 나오는 작품을 보면, 이백의 시에 "버들꽃 떨어지니 두견새 운다(양화낙진자규제 楊花落盡子規啼)"라는 것이 있고, 두보의 시에도 "복사꽃 한 송이 한 송이 버들꽃 따라 떨어진다(도화세축양화락 桃花細逐楊花落)"라는 대목이 있는가 하면,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시에 "길 가는 나그네들아 둑에 올라 바라보지 말라(행인막상장제망 行人莫上長堤望), 바람 불어 버들꽃 지면 수심이 더하리라(풍기양화수살인 風起楊花愁殺人)"라고 했고, 또 당시唐詩 ≪양류지사楊柳枝詞≫에 "몇 그루 버드나무가 봄을 이겨내지 못하고(수주양류불승춘 數株楊柳不勝春), 늦게 부는 바람에 버들꽃 눈처럼 날린다(만래풍기화여설 晩來風起花如雪)"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버들꽃 질 때 강 건너간 사람 (양류화시도강객 楊柳花時渡江客), 복사꽃 피고 져도 돌아오지 않는다(산도개진미환가 山桃開盡未還家)"라는 시도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버들꽃은 실상은 꽃이 아니지만 꽃으로 표현하여 오히려 흥취가 더해진다.
왕버들이나 다른 버드나무 종류의 버들꽃(유서柳絮)은 소양제消陽劑(양기가 사그라지는 약제)로서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성욕을 억제하고 감퇴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버들꽃은 버드나무 종류의 암나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우리 주변에서 암나무는 되도록 없애고 수나무를 심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나무가 암나무보다 그 모습도 더 아름답다.
※출처
1. 임경빈 저, 이경준·박상진 편,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3(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9).
2. 구글 관련 자료
2026. 3. 27 새샘
'동식물 이야기와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9 - 은행나무 (1) | 2026.04.07 |
|---|---|
|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8 - 위성류 (0) | 2026.04.01 |
|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6 - 옻나무 (0) | 2026.03.24 |
|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5 - 오동나무 (0) | 2026.03.19 |
| 이야기가 있는 나무백과 74 - 아까시나무(아카시아) (1) | 2026.03.15 |
